#24

스르르 민석의 눈꺼풀이 일어났다. 반질거리는 눈동자가 몽롱하게 존재했다. 사물을 인식하기 전 눈을 깜빡였다. 여러 번 깜빡이니 뿌옇던 눈앞 무언가는 형태를 이뤄갔다. 사람의 얼굴이었다. 자고 일어났을 때 바로 보인 것이 얼굴인 건 제대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거짓이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 뻗었던 손을 물리고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렸다. 부지런히 깜빡이며 성실하게 응시했다. 감긴 눈의 선을 보았다가 부동의 코를 보았다가 움찔거리는 턱을 보았다. 실컷 보았는데도 성이 차지 않아서 눈을 감아버렸다. 이러다 또 손을 뻗을지 몰라서.

그러나 눈을 감으니 그려지는 얼굴은 민석을 다시 눈뜨도록 만들었다.

‘아침 준비나 해야겠다.’

할 일이 있으면 그리움이 생각에서 가시지 싶었다. 눈앞에 잠든 사람이 그리워 어쩔 줄 모르겠는 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민석은 최대한 조용하게 움직이려 노력했다. 그러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키니 손목이 붙잡혔다. 놀란 민석이 뒤돌아보았다.

“어디 가….”

잠긴 목소리로 물어오는 말에 민석이 용기 내 손을 뻗었다. 뺨을 만지지는 못하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배고프지 않아요?”

“안 고파요…… 가지 마.”

또. 낯선 수현이다. 단호한 수현의 말에 민석은 다시 제자리에 정자세로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는 천장. 몇 달 전에도 이렇게 천장을 바라봤는데 지금은 혼자가 아니라니. 맙소사. 숨이 막히는 것 같고….

가슴 안이 부풀어 올라서 민석은 푸우우 숨을 내쉬었다. 수현이 작은 소리로 킬킬거렸다.

“민석 씨. 뭐 해요…….”

땅굴을 파고들어간 것 같은 목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녹였다. 잠 못 들었던 밤이 가고 마침내 아침이 왔다는 걸 알았다. 민석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좋다.’

민석의 동그란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좋다.”

민석이 다시금 놀라 옆을 보았다. 생각한 걸 말로 뱉었나 싶었지만 출처는 따로 있었다.

이를 보여주며 나른하게 웃고 있는 당신이 있었다. 수현은 눈처럼 입처럼, 그렇게 나른하게 손을 뻗어 민석의 뺨을　쓸었다. 미지근한 온도가 따뜻한 피부에 닿았다. 뺨이 흠칫 떨렸다.

“진짜 따뜻해.”

온도가 급격히 올라감을 당신은 알까.

‘내가 당신에게 기꺼이 모든 걸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마음에게 바람을 말했다. 머뭇거리는 일이 많은 스스로가 민석은 자주 미웠고 겁이 많은 스스로가 더할 수 없게 미웠다.

민석이 눈알만 굴려 수현을 보았다. 따뜻한 눈동자라는 게 정확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 수현이 민석을 보는 눈동자가 그런 것 같다고 민석은 멋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어제…….”

느리게 하는 말에 애가 타지 않았다.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나면 민석을 깨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다 만 얘기…… 마저 하고 같이 밥 먹어요.”

긍정의 표시로 민석이 수현의 손에 뺨을 비볐다. 수현이 웃었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작으나 누군가에게는 아주 크게 들릴 정도로.

“그런데. 내가 어디까지 말했죠.”

민망한 듯 말하는 수현에 민석은 곰곰이 머리를 굴렸다.

“……동생을 마지막으로 본 부분까지요.”

생각난 민석이 머뭇거리다 말을 꺼냈다.

“아. 기억났어요.”

수현은 담담하게 말을 시작했다.

“동생이 죽고 나는 칼에 찔린 채로 우리는 시체 무덤에 던져졌어요. 눈을 떠보니 하늘이 보이더군요. 그리고 꿀럭꿀럭 피 쏟아지는 소리가 역하게 났어요. 몸을 일으킬 수 없어서 그냥 내 몸에서 나는 소리구나 그것만 알았어요. 그리고 그 애를 찾았어요. 정신없이 고개를 돌리다가 발견했죠. 내 품에 있었어요. 다행이다 생각했어요. 뭐가 다행이라고 이제 죽을 텐데. 근데 그냥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러고 나서 죽기를 기다렸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뿐이었으니까요…… 조금 후회도 되데요. 어차피 이렇게 죽을 거 엄마라도 찾아볼걸. 그때야 눈에 밟히더라구요. 불효막심하죠. 하여튼 하늘에 별이 엄청 많았어요. 시체 무덤이랑 별천지가 대칭하고 있으니 저것도 사실은 별의 무덤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눈이 점점 피로해져서 죽는구나 했는데 새가… 새가 한 마리 날아왔어요. 가까이 다가와서 목을 찍었죠. 아득해졌어요. 죽은 줄 알았죠. 그런데 깨어났어요. 죽은 게 아니라 깨어났어요. 그리고 여기였어요. 민석 씨가 사는 이 세상. 19살. 죽을 때 나이로 다시 태어난 거예요, 이곳에. 믿을 수 있어요?”

수현을 향해 옆으로 누워있던 민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