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누나! 누나!”'은호는 시야에 들어오는 한 여학생을 목청껏 불렀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짧게나마 시선을 주었건만 정작 당사자는 고개를 숙인 채 가던 길을 계속 갈 뿐이었다.'답답한 은호는 거의 뛰다시피 여학생에게 다가갔다.'“도대체 몇 번이나 불렀는데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냐?”'“어, 왔어?”'여학생은 은호의 투정 섞인 타박에도 불구하고 덤덤한 인사를 툭 던지고 이제껏 하던 대로 다시 휴대전화 액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뚫어질 듯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방향을 잃지 않고 강의실로 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은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누나 계속 뭐 하는데?”'“계산 중.”'특별히 궁금한 것도 아니었고, 또 이 여학생이 그럴 리 없다는 것도 알지만 은호는 대화의 맥을 툭툭 끊어 버리는 짧은 대답과 그에 이어진 지루한 공백을 견디지 못하고 씨도 안 먹힐 가볍기 그지없는 질문을 던졌다.'“무슨 계산? 나 밥 사 주려고?”'“은호야?”'나지막이 깔린 목소리. 그러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휴대전화에서 떼지 않은 채 능숙하고 잰 손놀림으로 숫자를 나열하고 지우는 동작을 반복했다.'“왜?”'“너 군대 안 가니?”'또 시작이다. 은호가 지금처럼 싱거운 소리를 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질문이었다.'“응.”'대답을 바라지 않는 질문에 별 뜻 없는 대답. 멀리서 보면 꽤나 진지해 보이는 모습으로 둘은 강의실로 향했다.'아직 강의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기에 강의실은 사람이 앉은 자리보다 군데군데 빈자리가 더 많았다. 금비는 자리에 앉자마자 가방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내어 본격적인 계산에 돌입했다. 별다른 할 일도, 주의를 끌 만한 흥미로운 일도 발견하지 못한 은호도 금비의 옆에 자리를 잡고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린 채 엎드렸다.'휴대전화기의 작은 버튼을 열심히 누르고 볼펜을 굴려 대는 금비의 얼굴 표정이 다채롭기도 하다. 뭐가 맘에 안 드는지 이마에 주름을 잡으며 찡그리다가 작게 한숨을 뱉어 내기도 하고 갑자기 대단한 것을 발견한 양 눈에 힘을 주기도 하고.'“누나?”'“왜, 또?”'갑자기 생각났다. 자리에 앉기까지도, 누나라고 부르기 전까지도 잊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근데 아까 조교 형이 누나 보면 학과실로 오라고 전해 주라고 했는데.”'“왜?”'“무슨 아르바이튼가……. 암튼 누나 오는 대로 들르랬어.”'‘찰싹!’'금비가 손바닥을 쫙 펴고서 사정없이 은호의 등짝을 내리쳤다.'“앗, 따가워! 왜 그래?”'순식간에 등짝을 달구고 어깨를 뒤로 한껏 젖히게 만드는 타격에 엎드려 있던 은호가 벌떡 일어났다. 어떻게 저 손에서……. 한 대쯤 맞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정말 따갑고 얼얼했다.'“너, 그걸 이제 말하면 어떡해? 암튼 너 이따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