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ummer

종례를 마치고 가방을 챙겼다. 책상 서랍에서 책과 노트를 꺼내는데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몸을 숙여 떨어진 것을 주웠다. 익숙한 필체의 쪽지, 유진은 천천히 내용을 읽었다.

-가식적인 표정 치우는 게 어때? 언젠가 선생님들과 반 친구들도 너의 가식적인 성격을 알게 될 거야-

유진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쪽지를 찢었다. 쪽지를 보낸 상대방이 싸움을 하고 싶은 모양인데 거기에 동조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교실을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현관문을 밀고 나오자 뜨거운 여름이 자신을 맞았다.

“더운 날의 연속이군.”

혼잣말처럼 말한 유진은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히사이시 조의 ‘summer’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가벼운 공이 튀듯이 통통 튀는 음들이 뜨거운 이 여름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replay 버튼을 누른 유진은 걸음을 옮겼다.

“유진아, 서유진.”

음들 사이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유진은 볼륨을 줄이고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아이는 재희였다.

“이재희?”

“너 뭐니? 몇 번이나 불렀는데도 돌아보지도 않고.”

숨을 고르며 재희가 말했다.

“아, 미안해. 음악을 듣느라 못 들었어.”

“얼마나 볼륨을 높여서 듣고 있었기에 부르는 소리를 못 듣니? 교정이 떠나가게 불렀는데. 그런데 너 그거 엄청 위험하다. 조심해야 해.”

“알았어, 조심할게.”

“그런데, 무슨 음악 듣고 있었니?”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재희는 유진의 이어폰 한쪽을 자신의 귀에 꽂았다. 잠시 음악에 귀를 기울인 재희는 빙긋 웃음을 머금은 채로 물었다.

“이 곡 좋다. 무슨 곡이니?”

“summer.”

“summer?”

“응. 기쿠지로의 여름 ost에 수록된 곡이야.”

“그래?”

“응.”

“나도 사서 들어야겠다.”

재희는 이어폰 한쪽을 유진에게 건넸다.

“그런데 나 왜 불렀어?”

“숙제.”

“숙제?”

“그래, 우리 미술 숙제해야지. 다음 주 월요일까지 제출이잖아. 사진 찍은 거는 잘 가지고 있지?”

“응.”

“숙제 어디에서 할까?”

“학교에서 하면 되잖아. 다른 아이들도 학교에서 할 모양이던데.”

“뭐야, 내일 개교기념일이라 학교에 안 와도 되는데 숙제 때문에 학교에 오자고?”

“그럼 넌 어디에서 하고 싶은데?”

“우리 집.”

“너희 집?”

“응.”

유진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그냥 학교에서 하면 안 될까?”

“내일 쉬는 날이라 에어컨도 안 틀어줄 거고, 난 더운 거 싫어. 서유진, 우리 집 엄청 시원하고 넓어. 혹시 우리 집 찾아오는 것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걱정할 거 없어. 내가 마중 나갈게.”

“아가씨.”

차를 세워두고 기다리던 재희의 운전기사가 그녀를 불렀다.

“알았어요, 곧 가요. 나중에 전화할게. 내일 보자, 서유진.”

손을 흔들며 인사한 재희는 가볍게 뛰어가 차에 올라탔다. 차가 시야에서 멀어지자 유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어폰을 귀에 다시 꽂자 통통 튀는 음들이 살아 숨 쉬듯 튀어 올랐다.

“누나.”

“어, 정훈이 왔구나.”

“뭐 해?”

“반찬 만들고 있었어.”

“오늘 엄마하고 큰누나 늦게 와?”

“응. 엄마는 학원 원장님들의 모임이 있고, 언니는 약속이 있대.”

“밑반찬 있잖아. 더운데 뭐 하러 반찬 만들어?”

“너하고 맛있게 먹고 싶어서.”

“도와줄 거 없어?”

“됐어. 거의 다 했어. 씻고 와.”

“응, 누나.”

정훈이 씻을 동안 유진은 식탁에 남매를 위한 저녁을 차렸다. 초인종 소리에 유진은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