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199X년' 눈이 내린다. 파란 새벽공기가 차츰 겨울의 차가움을 머금고 아침을 드러내고 있다. 차가운 눈이 내려와 나의 얼굴에 닿는다. 느낌이 새롭다. 차가움, 설레임, 아름다움…… 작은 솜덩이처럼 나풀거리면서 내려오더니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등 뒤의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이 사라진 건 오래전 일이다. 오히려 그 딱딱함이 편안하고 푹신한 느낌으로 바뀌어 버렸다. 늦은 아침 일어나기 싫어서 뭉그적거리는 침대 속 포근함처럼…… 말할 수 없는 부드러움이 내 몸을 감싸고 있다. 나는 이런 보드라움이 너무 좋다. 하지만 춥다. 포근하면서 춥다. 추워서 아래턱이 떨려온다. 참으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 남자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두런두런 말소리도 들려온다. ' ‘내 잘못 없어요. 이 사람이 굉장한 속도로 달려오더라구요..’' 남자의 목소리는 겁에 질려 있다. ' ‘이보세요? 정신 차리세요? 저희들이 보여요?’' 날카로운 목소리의 여자가 나의 귀에 대고 소리를 질러댄다. 눈동자를 돌려 여자를 보려했으나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 ‘아……참……미치겠네. 새벽부터 오토바이로 과속하고 지랄이야 지랄이……’ ' 또 다른 사람이다. 그래, 오토바이……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지, 내가.' ‘일단, 살리고 보는 게 먼저니까…… 이봐요. 정신 차려요……’' ‘얼굴이 완전히 바스라졌네, 이거……’' ‘어머, 어떻게 해. 죽으려나봐.’' 그 날카로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시 고음으로 소릴 질렀다. ' ‘눈 떠요. 잠들지 말고 눈 떠봐요.’' 그들이 ‘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인가? 살리고 봐야 하는 사람도, 얼굴이 바스라 진 사람도, 죽으려는 사람도 모두 ‘나’인가? ' 귀찮다. 다 귀찮아. 귓가에서 울리는 모기소리 같은 것들…… 다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다 사라져 버리고 그냥 조용해졌으면 좋겠다. 저 작은 소리들의 울림이 시끄럽다. 내 머릿속을 돌아다니면서 구석구석 찔러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목소리가 의미하는 것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깨지게 아파온다. 두통이 엄습할 때 쯤 그들을 조용히 시키고 싶어 얼굴을 찡그려본다. 하지만 그때 나는 찡그리는 것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걸 느낀다. ' 젠장……' 가늘게 눈을 떠보자 하늘에서 다시 눈송이가 내린다. 눈은 나폴나폴 천천히 내려온다. 내려오면서 조금씩 빙글거리며 돌기도 하는 것 같다. 그 예쁜 솜뭉치 같은 것이 점점 내려오면서 작아진다. 그것은 작은 솜사탕 조각 같기도 했고, 오리털 이불 사이에서 삐져나오는 털 조각 같기도 했다. 그저 나풀거리는 하얀 것이 나의 얼굴 위로 천천히 약 올리듯 내려온다. 내가 숨을 내쉬자 없어진다. 코끝에 앉은 그것은 차가움도 간지러움도 느끼지 못 할 만큼 작고 가볍다. ' 나의 선우 얼굴에도 이러한 눈송이가 내렸었지. 이렇게 예쁘고 하얀 눈송이가 내렸었지. 뺨 위에도 입술 위에도 그녀의 길고 검은 속눈썹 위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