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그럼 혹시 오늘 아침 내내 가까이서 들렸던 소음은, 몇 호로 이사 오셨어요? 혹시.”

“202호요.”

“맞네요. 옆집.”

“고, 고의는 아니었는데 남은 방이 이곳밖에 없었어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어떻게 한마디도 귀띔해 주지 않고 그것도 바로 옆집으로 이사를 올 수 있냐는 말입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피하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자그맣게 이야기했다.

“미리 말했으면 반대했을 거면서….”

“당연히 서울에 있는 좋은 집 두고 이런 달동네로 이사 온다는데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쳐줄 리가 없죠!”

“그래서 말 안 했던 거라고요…. 반대하실 거 알고 있어서 그런 말 들으면 전 또 기죽고 시현 씨 말 들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왜 굳이 독립하려는 건데요?”

“한 번쯤 해보고 싶었어요.”

시현 씨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자취, 그래요. 자취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다들 로망이 있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지만, 독립하며 산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고요. 매달 월세뿐 아니라 관리비, 식비, 교통비 등등 지불하다 보면 모이는 거 없이 텅텅 비어 있는 통장 잔고를 보며 고개를 떨구게 되죠. 또 좁은 집에 살면서 혼자 밥 먹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다 맛없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나중에 좀 더 좋은 집으로 갈 수 있을 때 해도 늦지 않을 텐데 왜 이리 섣부른 판단을 했어요!”

“제가 해보고 싶단 건 자취가 아니란 말이에요.”

“그럼 뭔데요?”

“홀로서기요.”

나는 이웃집에 돌리려 들고 온 떡이 담긴 접시를 시현 씨에게 보이며 말했다.

“안전한 건 편안할 수 있지만 반복이 조건이 되잖아요.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안전함을 원해 그 울타리 안에만 있었던 것 같아요. 조금은 불안하고 안전하지 않아도 가족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이것저것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 첫 번째 도전을 해보고 있죠.”

“무슨 도전이요?”

“시현 씨 말 무시하고 도망가기.”

나는 떡이 담긴 접시를 시현 씨에게 건네주고 부리나케 도망갔다.

“맛있게 드세요!”

도망가는 내 모습을 보며 시현 씨는 한숨을 한 번 내뱉고 이어서 못 말린다는 듯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이웃들에게 떡을 돌리고 돌아오니 방 안에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물품이 한가득이었다.

“에효, 이걸 언제 다 정리하지….”

귀찮은 마음에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가 이윽고 다시 벌떡 일어났다.

“아니지! 혼자 나왔으니 이제 내 마음대로 꾸며도 되는 거잖아?”

나는 몸이 아닌 손가락부터 열심히 움직였다. 그동안 sns로 봤던 예쁘게 꾸민 자취방을 검색하고 둘러보며 내 방은 어떻게 꾸밀지 행복한 상상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잠시 후 몸을 움직이니 금방 깨달았다. 저런 예쁜 인테리어로 꾸민 사람들은 분명 둘 중 하나일 것이란 걸 말이다. 건축학 전공이거나 끝없이 노동했거나.

“드디어 끝났다!”

sns로 본 자취방들처럼 꾸미진 못했어도 나름 만족할만한 깔끔한 방 정리를 끝냈다. 3시간에 걸친 방 청소와 정리를 끝내고 침대 위로 낙하하니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편안하고 행복했다. 엎드려 누운 내 시선은 현관문 쪽을 향해 있었다. 점점 현관문이 흐릿하게 보이는 게 곧 잠에 들 것 같았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누군가가 현관문을 열고 문 옆에 있는 주방에 무언가를 놓고 돌아 나갔다.

“흐음, 지금 몇 시지?”

엎드린 채로 팔을 뻗어 휴대폰을 켜니 오후 7시였다.

“일곱 시? 누워있다가 깜빡 잠들었나 보네.”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이윽고 놀라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곱 시라고? 어떻게! 아르바이트 가야 하는데 알람도 없이 깜빡 잠들어서 늦어버렸어!”

침대를 박차고 뛰어나와 부스스한 머리를 묶고 간단히 씻을 준비를 했다. 찬물을 틀고 얼굴에 한 번 끼얹을 때 정신이 번쩍 들면서 진정됐다.

“잠깐만, 오늘 주말이잖아?”

굽히고 있던 허리를 다시 세우며 안도의 한숨과 헐레벌떡 움직이던 스스로를 생각하며 배를 잡고 웃었다. 지각이 아니라는 걸 알고는 여유롭게 샤워를 하고 나왔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개운하지만 배가 고파졌다. 하지만 부엌에는 마땅히 먹을거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