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하… 하… 조금만… 조금만 더….”

얼굴이 붉어지고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좋아… 조금만 더….”

이마에서 뜨거운 땀이 흐르고 거친 숨소리로 헐떡거렸다.

“힘내 정윤아, 다 왔어!”

복도에서부터 요란하게 울려 퍼지던 내 구두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내 직장인 빙그레이오 회사 안에 마케팅 부서다. 좋은 대학의 경영학과를 졸업했지만, 워낙 소심하고 숫기가 없어 취직도 하지 못하던 내게 친구인 주희가 한 마법을 일으켰다. 회사 면접을 보러 들어가기 전 긴장을 풀어주겠다며 내게 소주 한 잔을 먹인 일이 바로 그 마법이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면접장에 들어서자마자 이 회사를 한국 최고의 대기업으로 만들어 주겠다며 옆 면접자의 무릎 위에 한쪽 발을 얹고 외친 사건이 나를 이 회사에, 그것도 마케팅 부서에 들어올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사건이다.

“윤아 씨 왔어?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하지.”

평소 다른 직원들이 지각을 했을 때는 버럭버럭 화를 내던 불같은 부장님이 오늘은 웬일인지 차분한 모습을 보이며 나를 불렀다.

“뭐하나 안 들어오고?”

“부장님께 빨리 보여드려야 하는 보고서가 있어서요! 그것만 챙겨서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네?”

“그럴 필요 없으니 들어오라고.”

“아… 네.”

혼날 거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회사에 취직한 지 이제 반년 정도 되었는데, 설마 첫 지각에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내일부터 그만 나와 주었으면 하네.”

그 말은 마치 누군가 내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친 느낌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분명 정확히 들었지만 재차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해!”같은 말을 들으며 이 상황이 진짜가 아니라는 걸 확인받고 싶었다.

“나도 이런 말 반복하는 거 싫어. 그러니까 더 이야기하지 말고 사표 내.”

오는 길에 일어난 교통사고 때문에 버스가 늦게 와 지각을 했다는 이야기를 변명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단 한 번에 지각으로 그런 통보를 받으니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부장님 늦은 부분은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오는 버스가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늦게….”

“그 이야기가 아니야.”

“네?”

“우리 부서는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데, 윤아 씨가 생각했을 때 본인이 이 부서에 잘 어울리고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봐.”

“그건….”

“명색이 마케팅 부서라는 사람이 남들 앞에 서기만 하면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하고, 서비스에 대한 불평이나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하면 울먹거리고, 하… 윤아 씨, 마케팅 부서는 학벌만 좋다고 될 게 아니라는 거 잘 알고 있잖아. 나도 윤아 씨가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사람은 다들 자신에게 맞는 일이 있는 거라고.”

부장님은 평소 내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부분에 비수를 꽂았다. 하지만 적어도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한마디라도 뱉어보고 잘린다면 후회는 없을 텐데, 그 와중에도 한마디도 못 하고 있는 내가 너무도 미웠다.

“까악! 까악!”

창밖으로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 까마귀가 울었다. 사실 까마귀 울음소리는 출근하러 나오던 우리 집 앞에서도 들어 오늘 하루 운이 없으려나? 라고 생각했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내게 찾아온 불운은 출근길 버스 교통사고 소식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

[그 부장 진짜 어이없다! 사람이 어떻게 자기한테 맞는 일만 해? 그럼 세상 사람들 다 불만 없이 살았다!]

“내일 나랑 꼭 술 한잔하는 거다….”

짐을 싸고 집을 돌아오는 내내 아무 생각이 없다가 나보다 더 화내주는 주희와 통화를 하니 점점 더 잘린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에 영석 씨 만나는 거지? 너 저번에 말한 대로 오늘은…?]

“응! 오늘은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