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집에 돌아가기 싫어.

하얀은 제 손에 들린 새하얀 봉투를 원망스레 내려다보았다. 평소보다 더 두둑한 봉투가 이리도 원망스러울 줄은 몰랐다.

“관장님.”

“미안하지만 내 처지도 이해해주라. 하얀이 너 보고 지낸 세월을 생각해서 두둑이 넣었어. 경력도 있으니까. 좋은 일 구할 수 있을 거야.”

“요즘 세상에 어디서 일자리를 구해요.”

작게 중얼거리듯 말하는 하얀에 준식은 미안한지 눈을 맞추지 못한다. 5년 동안 주인인 자신만큼 도장에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준 하얀을 알기에 그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미안하다. 하얀아. 나도 친구 녀석들한테 자리 있나 연락해뒀으니까. 좋은 소식 있으면 연락 줄게.”

하얀은 준식의 말에 기대를 걸어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는 희망에서였다. 태권도장 봉고차가 떠나고, 휑한 거리엔 하얀 혼자뿐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5년 동안 다닌 일자리를 잃었다. 하얀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파란 하늘을 보니 참으로 평화로웠다. 잔잔한 하늘은 그 아래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과는 너무 대조되었다. 하얀은 시선을 내리곤 걸음을 옮겼다. 가만히 하늘만 보고 있다고 돈이 떨어지나, 일이 생기나.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기에 금방 그만두었다. 일자리를 잃고 나면 느끼는 소외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모두가 제 일터로 향하는데 혼자만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그 패배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른다. 그녀는 우뚝 멈춰서 하늘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제 뭐 먹고 살라고!”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놀란 듯 소스라치게 달아났지만 그녀는 소리라도 마음껏 질러 시원한지 아무렇지 않은 듯 걸음을 옮겼다. 누구를 탓하는 게 그리 좋진 못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허락되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화려한 조명과 귀를 때리는 음악이 가득한 강남의 유명 클럽. 김 비서는 다급히 클럽 안쪽에 위치한 룸을 열어젖혔다. 뒤엉켜 있는 남녀는 문이 열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지 키스에 열중이었다. 김 비서가 당황하지도 않은 채 벽을 두드렸다.

그제야 끈적한 남녀의 입술이 떨어졌다. 여자는 남자의 어깨너머로 김 비서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 그를 밀쳤다.

“어머!”

여자는 서둘러 반쯤 헤쳐진 제 옷가지를 여미며 방을 나섰다. 그런 여자를 보며 입맛을 다신 남자는 김 비서를 못마땅하게 보고선 독한 양주가 든 유리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해쳐진 와이셔츠 속으로 탄탄한 그의 몸이 그대로 보였고, 곳곳에는 보기 민망할 정도로 붉은 흔적들이 자리했다. 그럼에도 남자는 태연했다. 김 비서는 여자가 룸을 나갈 수 있도록 매너 있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에 여자는 그를 힐끔 보고선 서둘러 룸을 빠져나갔다.

“무슨 일이야?”

“회장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지금 바로 오라고 하십니다. 아마 다른 대표님들도 함께 부르신 것 같습니다. 세 분은 이미 출발하셨다고 합니다.”

남자의 눈이 잠시 날카롭게 바뀌었다가 이내 다시 천진난만하게 변했다. 속이 타는 김 비서와는 달리 느긋하게 일어난 남자가 평온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김 비서의 속이 불안감에 타들어 갔다.

“우리 꼰대가 또 무슨 재미있는 일을 벌이실라나?”

간단히 와이셔츠 단추만 채운 남자가 룸을 나가자 김 비서는 다급히 그의 소지품을 챙겨 뒤를 따랐다.

“먹고 죽자! 먹고 죽어!”

무서운 속도로 소주 네 병을 비운 하얀에 친구인 혜정이 황급히 그녀의 잔을 뺏어들었다.

“야, 그만 마셔. 속 버려.”

그에 그녀는 다시 혜정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았다.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듯 술병을 품에 안고선 말했다.

“줘. 나 이거 다 마시고 확 가버릴 거야.”

“가긴 어딜 가?”

어울리지 않는 낮은 목소리에 혜정과 하얀이 목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또 다른 친구 준이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자리했다.

“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