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어떤 하루

은빛 새들이 무리지어 날아갑니다.

하늘이 청명하네요.

아이스크림을 손에 든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뛰어다닙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조심하라 잔소리를 해요.

살랑살랑한 봄바람이 코끝을 간질입니다.

솜털 같은 비숑이 꼬리를 흔들어요.

은방울꽃이 하늘하늘 춤을 춥니다.

연인들은 꽃과 키스를 주고받아요.

거리의 사람들이 왁자지껄한 웃음을 터뜨립니다.

햇살이 황금 가루처럼 부서지네요.

하늘은 여전히 청명합니다.

매우 아름다운 날이에요.

나의 완벽한 하루에 딱 하나.

당신만 없네요. 당신만…….

죽을 만큼 보고 싶은 당신만…….』

“흠흠…….”

사내의 기척에 여자가 황급히 눈물을 훔친다. 사내는 보고도 보지 못한 척 딴청을 피우며 담뱃갑을 매만졌다.

“여기, 등본.”

여자의 곁에 봉투를 조심히 내려놓고는 강보에 싸여 잠든 아기에게 머뭇머뭇 다가가 굽어본다.

“너 닮았다.”

사내의 말소리에 흐릿한 눈동자가 사내를 향했다. 싱긋. 언제나 그랬듯 사내가 여자를 향해 웃어 준다. 사내의 다정한 눈초리에 담긴 애정과 연민을 그녀는 애써 무시했다.

그의 시선에 슬쩍 닿은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은 젖이 불은 듯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애 젖은 먹였니?”

사내의 물음에 여자가 팔을 감싸며 슬그머니 가슴을 가렸다. 사내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이는 천성이 순한 모양인지 잘 울거나 보채지도 않았다. 젖을 물리면 먹고 아니면 잠을 잤다. 어미의 마음을 아는 걸까? 사내는 자는 아이를 안아 들더니 여자에게 억지로 안겼다. 아이를 안은 여자는 그의 눈치를 보는 듯 머뭇거렸다. 사내는 망설이지 않고 일어섰다.

“오빠.”

여자가 입을 열자 사내는 놀란 눈으로 돌아보았다.

“……미안해요.”

여자의 눈이 아기도 아닌, 방바닥에 고정되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사내는 그대로 문을 열고 방을 나갔다. 닫히는 문 뒤로 여자가 돌아 앉아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이 삶에 대한 의지인 것만 같아서, 사내는 안도했다.

#1.

이 회사에 입사한 지 5년 차.

이 회사는 기고 난다는 외모와 학벌, 스펙을 쌓은 사람들만 모아 놓은 엘리트 집단이었다. 여기서 잘 고르면 평타는 치는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도통 그의 눈에 들어오는 여자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같이 다를 것인데, 왜 다들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재현이 매우 바쁜 이 시간, 지나다니는 여직원들을 훑어보며 평소와 다르게 이런 비생산적이라고 여기는 생각을 하고 있는 이유는 얼마 전부터 어머니가 선을 보라며 들들 볶아댔기 때문이었다. 회사에 사람이 그렇게 없느냐고, 거기서 하나 골라잡으라고 성화시더니 결국 어젯밤에는 사진까지 들고 찾아왔다.

‘아, 머리 아파. 결혼 안 해도 살만 한데.’

한숨을 내쉬자 그것을 놓치지 않고 하나가 쫓아와서 언제 뽑아 왔는지 따끈한 커피를 내밀었다.

“어머, 재현 씨. 무슨 걱정 있어요? 이거 마셔요.”

“고마워요.”

재현은 하나의 관심이 썩 반갑지 않았지만 사회생활하려면 포커페이스는 필수니까 마주 웃어 주었다. 하나는 재현과 입사 동기였지만 두 살 아래였다. 신입 때부터 재현에게 마음이 있는 눈치였지만 재현은 도통 곁을 내주지 않았다. 그녀와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실장이 못 보던 여자 하나를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눈동자가 유달리 새카맣고 커다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