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출발한 것도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멀어진 것도 알지 못했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어둠으로 인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겁먹은 표정을 짓지 않기 위해 태연하게 앉아 있으려 애썼지만 몸은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긴장을 풀고 곧추세웠던 허리를 내리는데 무언가에 의해 갑자기 확 끌어당겨졌다. 미처 정신을 차릴 틈도 없었다. 급작스러운 행동에 숨을 쉴 수 없었다.'상대방은 자신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치려 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안 순간 긴장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놀라게 한 상대방에게 말을 하려 연희가 입을 벌린 순간 급작스럽게 입 안으로 그의 혀가 침입해 왔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난생처음 당하는 일이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집요함으로 낯선 이물질이 입 안 곳곳을 헤매기 시작했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짐승의 광폭함 같은 것이었다. 갑자기 그는 여린 속살을 날카로운 이로 깨물었다. ''“아악!”''엄청난 아픔에 벗어나려는 자신을 세게 안으며, 상처 난 곳을 혀끝으로 쓰다듬더니, 어느 순간 정신 없이 빨아 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전율 같기도 했고, 아득함 같기도 했다. 드라큘라가 피를 빨아먹을 때의 기분이 이럴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양어깨를 잡았다. 그의 행위에 온 정신을 놓아 버리고 있었다. 살며시 앞으로 끌어당겨지는 것도 알지 못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고, 머릿속을 누가 지워버린 것처럼 하얗게 변했다.'''주머니에서 날카로운 칼을 빼내어 그는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을 베었다. 선홍색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경악한 채 바라보는 연희의 시선을 보면서도 그의 행동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단지 느낄 수 있는 거라고는 입가에 걸린 소름끼치는 미소뿐이었다.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연희는 본능적으로 그와 거리를 두려 뒤로 물러섰다. 그런 때를 노린 그는 연희의 놀란 표정을 무시하고 억지로 입을 벌리게 하고선, 상처가 난 손가락을 연희의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그녀의 표정을 무시하고 가만히 표정을 살폈다. 한참이 지난 뒤에 피가 목젖을 지나 꿀꺽 하는 소리가 들리자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그는 옆으로 살며시 연희를 밀었다.''“한 방울도 뱉어 내지 말고 그대로 삼켜”''중저음의 목소리로 높음도 낮음도 없는 아주 단조로운 목소리였다. 자신이 삼킨 게 피라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단지 무의식적인 행동일 뿐이었다. 사람의 피, 그리고 낯선 남자의 피가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비릿한 피 냄새를 느끼면서도 연희는 무의식적으로 피를 삼켰다. 시간이 흐르면서 천천히 음미하듯이 그의 손을 빨자 남자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듯, 생소한 느낌이었다. 뭔가 일이 일어난 것은 확실한데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차츰 정신이 들자 자신의 행동에 놀란 연희는 남자를 세게 밀쳐 냈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그가 결코 밀려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남자는 그곳에서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이 옆으로 비껴난 게 다였다.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그제야 남자의 입이 열렸다.''“이제 넌 내게 속한 사람이야. 나의 부속물이며 노예인 동시에 내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해. 그래야 너와 네가 동시에 살아남을 수 있다.”''어디선가 분명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최면에 걸린 것처럼 어렴풋한 느낌이 너무도 선명해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러 가운데 묘하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안도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