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스테이 위드 미

누군가 걸어 다니는 발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달콤하게 자고 있는 그녀를 깨우기 시작했다. '“으음…….”'작은 한숨과 함께 몸을 뒤척이던 그녀는 다시 한 번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을 자고 있지 않았던 사람처럼 두 눈을 번쩍 떴다.'“도, 도둑?”'행여 그녀의 움직이는 소리가 밖에 들릴까 고개만 돌려 평상시보다 두 배는 커진 눈으로 방문 손잡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손잡이가 천천히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심장이 벌렁거렸다. '쿵. 쿵. 쿵. 쿵. '걷잡을 수 없이 뛰는 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강타했다.'안전한 곳이라며 도둑 걱정은 전혀 안 해도 된다고 주인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는데 지금 들리는 이 소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집을 구해 나온 첫날, 그녀가 자고 있는 이 집에 침입자가 나타났다. '침대 옆 시계의 바늘은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불을 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저 문이 열리기 전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고 했어. 침착하자. 침착해. 후우. 후우.” '가슴을 크게 들썩이며 숨을 고른 그녀는 침대에서 조용히 내려와 만일을 대비해 문 뒤에 세워 둔 야구방망이를 손에 쥐었다. 까치발을 한 채 문에 귀를 바짝 대어 보니 냉장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식탁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둑이라면 곧장 안방으로 들어올 것이 분명한데 냉장고를 열어 보는 것이 이상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면 이 집에 살던 사람? 순간 아차 싶었다. 비밀 번호를 먼저 바꾼다는 것이 설명서를 다 보지 못 해 내일 바꾸기로 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어떻게 하지? 그런데 전 주인이 왜 온 거야? 할머니 손자는 아직 더 있어야 들어온다고 하지 않았나? 어떻게 된 거지?”'야구방망이를 쥐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손바닥에 땀이 나자 그녀는 잠옷에 손을 문지르고는 다시 힘주어 야구방망이를 움켜쥐었다. '“후우. 그래도 모르니까, 일단은 대비를…….”'크게 심호흡을 한 뒤 떨리는 한 손으로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돌리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안으로 열렸다.'“아악!”'바짝 긴장한 상태로 있던 그녀는 별안간 문이 열리자 놀란 마음에 집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녀의 비명 소리는 몇 초도 울리지 못한 채 남자의 커다란 손에 의해 막혀졌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그대로 담은 듯 얼음장같이 차가운 남자의 손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입을 막고 있는 남자의 차가운 손등 위로 그녀의 거친 숨이 퍼져나갔다.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그녀의 동공은 더 크게 확대되었다. 바짝 붙어 있는 등에 남자의 딱딱한 가슴이 느껴졌다. '“이게 도대체…….”'불쾌한 듯 낮은 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들리더니 불이 켜졌다.'눈앞이 환해지자 그녀는 동그랗게 뜬 눈을 다시 감았다. 눈이 부셔 제대로 뜨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얼굴을 보지 않으면 죽진 않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녀의 귓가에 남자의 입이 바짝 붙어 으르렁거렸다. '“당신, 누구지?”'여자의 입을 막은 채 남자는 방 안으로 한 발짝 더 들어섰다. 그의 등장에 놀랐는지 가슴에 닿아 있는 여자의 가녀린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놀라서 저항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여자의 몸을 힘주어 붙잡고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은은한 핑크빛이 도는 침대와 화장대 위에는 여자들이 쓰는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그의 공간이 변해 있었다. 예정보다 일찍 들어오긴 했지만 이곳은 엄연히 긍의 공간이었다. 오피스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훈훈한 공기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냉장고 문을 열어 본 순간 뭔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확신했다.'그의 공간에 여자가 있다. 화장대 옆 전신 거울 앞으로 여자를 밀고 갔다. 거울 속 여자는 그의 턱 아래에 겨우 닿는 작은 키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는 긴 박스형 원피스 아래로 가느다란 종아리가 보였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한 손에는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아 보이는 야구방망이가 들려있고 다른 한 손은 입을 막고 있는 그의 손 위에 겹쳐져 있었다. 야구방망이를 보니 웃음이 피식 나왔다. 그에게 방망이를 휘두를 모양이었다. '그런데…….'그의 커다란 손에 여자의 얼굴이 반 이상 가려졌지만 어딘가 낯설지가 않았다. 아니 그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여자의 얼굴이 있었다.'“채수연?”'3년 만에 돌아온 이유. 그가 갈망해 오던 여자다.'그녀를 갖기 위해, 모든 준비가 끝나 돌아왔는데 그녀가 어떻게 그의 공간에 들어와 있는 건지 이상했다. 스스로 찾아오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수연은 눈을 떠 거울 속 남자를 쳐다보았다. 블랙 슈트에 하얀색 셔츠를 입은 깔끔한 남자가 보였다.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남자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입을 막고 있는 남자의 손에 겹쳐져 있던 그녀의 손이 힘없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도……. 진우?”'그의 얼굴을 확인한 수연은 헉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지 몇 년이 흘렀지? 거울 속 남자는 분명 도진우였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보다 훨씬 근사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조각 같이 깎아 놓은 듯한 얼굴선이 더 남자답게 굵은 선을 자랑하고 있었다. '유학 간 도진우가 왜 그녀 앞에 서 있는 것일까. '눈을 여러 번 깜빡여 보았지만 그녀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도진우가 분명했다.'“진우, 네가 어떻게, 어떻게…….”'“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여긴 내 집이니까.”'“뭐라고?”'그를 향해 그녀의 몸을 돌린 진우는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내 집이라고.”'“그럴 리가 없어. 여긴 빈 집이나 다름없다고 하셨어.”'“3년 동안 비어 있긴 했지. 앞으로는 아니지만. 네가 놀란 만큼, 나도 네가 왜 내 집에 있는지 의아스러워.”'그의 손이 깊게 패인 원피스 목 라인에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뭐라도 좀 걸치고 나와.”'온기가 흐르는 부드러운 살결에 차가운 남자의 손이 닿았다 떨어졌다. 그의 손끝이 닿았던 부분이 화끈거리고 따가워졌다.'쿵쿵쿵.'그가 문을 닫고 나가자 수연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왜, 왜, 진우가 여기 있는 거야? 자기 집이라고? 할머니가 이 집은 손자가 있던 집이라고 했는데……. 그럼, 그 손자가 진우란 말이야? 아, 어떡해.”'초등학교 모임 때마다 나타나서 그녀를 땅꼬마라고 부르며 못살게 괴롭힌 악연 중에 악연인 그녀의 동창생 도진우. 그녀의 첫 키스를 빼앗아 가 버린 건방진 남자이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두 사람을 둘러싼 무성한 소문 한가운데 그녀를 던져 놓고는 말 한마디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뒤로 수연은 더 이상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그녀와 그를 두고 수군거리는 동창들의 시선이 싫었다.'끌어안은 무릎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망설이고 있는데 진우가 방문을 두드렸다.'“땅꼬마. 안 나오고 뭐해? 우린 대화가 필요해. 안 나오면 내가 들어간다.”'무릎에 파묻고 있던 얼굴이 땅꼬마라는 소리에 튕기듯 휙 들려졌다.'“뭐? 땅꼬마?”'이제 막 계란 한 판인 된 그녀를 3년 만에 나타난 도진우가 예전처럼 그녀를 또다시 땅꼬마라 부르고 있다. '“내가 그때랑 똑같은 줄 아는 모양인데. 아니거든?”'이불을 옆으로 밀치며 벌떡 일어난 수연은 바닥에 떨어진 야구방망이를 다시 손에 쥐었다. '“한번만 더 땅꼬마라고 부르기만 해 봐.”'눈을 부릅뜨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온 그녀를 맞이한 건 거실 창문을 바라보고 서 있는 진우의 뒷모습이었다. 커튼 한쪽을 손으로 젖히고 어두운 밖을 내다보고 있는 그의 뒷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그녀를 겁먹게 만들었다. 190에 육박할 정도의 큰 키에 탄탄해 보이는 뒷모습이 블랙 슈트로 인해 강한 남자의 포스를 느끼게 했다.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그는 무더운 한여름의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도 민재와 일대일 농구 내기하는 것을 즐겨했다. 야외 스포츠를 좋아하는 그의 피부는 보기 좋게 구릿빛으로 그을려져 있었다. 여전히 운동을 좋아한다면 저 깔끔한 슈트 아래 자잘한 근육의 탄탄한 몸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한참이 지나도 진우가 뒤돌아보지 않자 수연은 헛기침을 했다.'“흠흠.”'“몇 년 만이지?”'등을 돌린 채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조금 전 땅꼬마라 부르던 목소리와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기선 제압이라도 하려는 듯 무게감이 있는 낮은 저음의 목소리였다. '3년 전 진우는 장난스러운 말투와 행동으로 여자 동기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의 살인적인 미소, 특히나 한쪽 보조개만 살짝 들어가는 그 매력에 그를 보는 모든 여자들이 가슴 떨려 했었다. 커다란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보조개가 묘한 매력을 느끼게 했었다. 그 아찔한 미소에 그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고 있던 그녀조차 흔들렸다. 지금처럼 감정이 절제된 낮게 깔리는 목소리는 예전의 그의 이미지와는 180도 달랐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남성적 에너지에 그녀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나 그가 대신 대답했다.'“3년.”'천천히 몸을 돌려 그가 수연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몇 미터 떨어져 있었지만 수연은 시선을 올려 그를 쳐다봐야 했다. 30센티 가까이 키 차이가 나는 것은 3년 동안 별로 좁혀 지지 않은 것 같았다.'그녀가 야구방망이를 들고 나온 것을 본 그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 야구방망이는 뭐하게?”'“어? 이거? 음……. 그게.”'난방이 잘 되어 있는 거실이었지만 그의 몸에서 뻗어 나오는 차가운 기운에 수연은 움찔거리며 야구방망이를 몸 뒤로 숨겼다.'“아까는 날, 도둑으로 생각했다고 치고. 지금은? 그걸로 날 때리려고?” '“아니! 그게, 그런 게 아니고. 나도 모르게 가지고 나왔네.”'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려 했지만 뜻대로 얼굴 근육이 움직여지지 않자 그녀의 얼굴이 어색하게 일그러졌다.'“내가 널……. 어떻게 할까 봐?”'그녀의 시선을 붙잡은 그가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그의 눈빛에 수연은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녀도 아무렇지 않다는 무언의 눈빛이나 표정, 아니면 말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입도 뻥끗할 수가 없다는 것이 그녀를 당황케 했다. 차라리 조금 전처럼 땅꼬마라 부르며 그녀를 장난스럽게 대하는 게 오히려 나을 것 같았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그가 몸을 움직였다. 성큼성큼 한 발짝씩 그녀에게 다가가자 수연은 본능적으로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뒷걸음질이 그의 눈빛을 더 깊고 어둡게 만들었다. 긴장으로 잔뜩 움츠려든 작은 체구의 그녀에게 시선을 못 박은 채 진우는 천천히 한 발짝. 다시 한 발짝 움직여 다가갔다. '집 안의 모든 창문이 활짝 열려 1월의 차가운 겨울바람이 집 안으로 몰아치는 것 같은 느낌에 수연은 두 팔로 몸을 감싸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가 놓친 야구방망이가 툭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공중에서 부딪친 두 시선을 남자가 놓지 않고 더욱더 강하게 얽어매며 다가서고 있었다. '뒤로 물러서던 수연은 등에 차가운 벽이 느껴지자 흠칫 놀랐다. 바짝 다가선 진우에게 벗어나려는 작은 몸짓으로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했다. 그의 눈을 더 바라보고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바닥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에 슬리퍼를 신은 커다란 남자의 발이 들어왔다. 맨발의 작고 하얀 그녀의 발 앞에 갈색 가죽 슬리퍼를 신은 남자의 큰 발이 대조적이면서도 위험스러운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들이마시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가 바지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그녀의 얼굴 옆 벽을 짚고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이고는 작게 속삭였다.'“3년 전. 우리의 관계를 이젠 확실하게 정리해야겠지?”

미리보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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