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은 새신부의 피부결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리곤 눈살을 찌푸렸다. 스킨과 에센스만 바르고 오라고 안내전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크림을 잔뜩 바르고 온 신부로 인해 짜증이 밀려왔다. '“저 화장실 좀 다녀 올 게요. 긴장을 했더니 자꾸 가고 싶네.”'“그러세요.”'“물 그만 마셔야지 드레스 입고도 이러면 큰일일 테죠? 호호.”'신부가 그 말을 남기고 화장실로 사라졌다. 수인은 신부가 돌아오면 피부결을 정리하기 위해 스킨과 화장솜을 준비했다. 돌아오던 신부가 울리는 자신의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수인은 미소로 받고 오라는 대답을 대신 했다.'“어! 기집애! 오진 않고 왜 자꾸 전화야? 얼른 와. 어. 어. 아니. 영희도 늦는다고 해. 너희들이 그렇지 뭐.”'신부의 통화가 길어지나 보다 싶을 때 맞은 편 방에서 신부를 기다리고 있던 지영이 고개를 쏙 내밀었다.'“수인! 저 신부 얼굴에서 광채가 장난이 아닌 걸? 아주 번들번들 덕지덕지 바르고 왔네.”'화장대 위에 스킨과 화장솜을 꺼내며 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스킨하고 에센스나 바르라고 그렇게 말해도 꼭 저러지. 화장 밀리면 우리 욕 할 거면서 말야. 근데 어디 몸이 안 좋아? 짜증난 거야? 아픈 거야? 얼굴색이 나뻐.”'“그냥 좀 그래요. 그래서인지 번번이 신부들이 저지르는 실순데 오늘은 짜증도 좀 나고 그러네요. 아픈 거 아니니 걱정 마세요.”'“그래. 몸 관리 잘 하고. 우린 몸이 재산이잖아. 참, 수인이 너 올 거지?”'평소 이렇게 찾아와 말을 붙이던 선배가 아니라 눈치를 챘던 대로 지영은 청첩장을 내밀었다. 어제 자세한 위치까지 넣은 문자를 이미 받은 터였다.'“그럼요.”'마침 지영의 담당 신부가 다가왔다.'“혜린이랑 같이 와.”'지영은 그 말을 남기고 담당해야 할 신부를 데리고 건너 편 룸으로 사라졌다. 수인은 화장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처음 지영 선배를 만났던 날 주뼛 거리며 지방의 미용 학원 복도 거울에 서 있던 단발 머리 여고생이 떠올랐다. 그땐 무거운 메이크업 상자를 들고 다니면서도 자신이 메이크업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그땐 헤어디자이너가 되는 게 내 꿈이었지.’'고등학교 졸업 직후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 했고 재능이 있다고 말하는 학원장의 추천으로 서울의 메이크업 전문 학원에 등록을 했었다. 동향이던 지영 선배가 수인이 받은 할인 혜택을 알고 격분을 했던 날도 떠올랐다. '“저런 촌스런 애가 장학금요? 지금 장난해요? 말도 안 돼! 이러니 우리나라가 안되는 거야! 개나 소나다. 장학금 좋아하네. 거지 적선이지. 야! 너, 앞으로 조심해!”'그리고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 온 지영 선배는 수인을 보아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었다. 수인의 경력이 쌓이고 이제 실력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는 기분이 들었던 날 처음으로 지영은 함께 커피를 마실 건지를 물어 왔었다.'‘그러고 보니 예전에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인정이란 걸 받기 위해 아등바등 살았어. 그때라면 이런 일로 이렇게 힘들어 할 여유도 없었겠지. 그래. 내가 너무 게을러진 탓이야. 내 탓이야. 내 탓! 다시 열심히 살자.’'수인은 마음을 다잡고 거울 속 지금의 자신을 확인 했다. 촌스럽다고 생각 했지만 돌아보니 풋풋했고 막막하다고 생각 했지만 꿈이 있던 그 시절 자신이 거울 속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거울 속엔 여전히 세련되지 못하고 유니폼처럼 옷장 가득한 검은 색 블라우스에 검은 바지 차림의 스물일곱 수인이었다. 그때 수인이 담당한 예비신부가 들어왔다.'“죄송해요. 친구들이 자꾸 전화를 걸어 와서요. 호호.”'“괜찮아요. 아직 시간 여유 있어요. 이쪽으로 앉으세요.”'수인은 착석한 신부에게 다가가 화장솜에 스킨을 발라 유분을 제거하고 메이크업을 시작 했다. 그때 수인의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휴대폰 울리네요. 맞죠?”'“네. 죄송합니다. 거슬리시면 끌까요?”'“아뇨. 왜 안 받으시나 해서요. 아직 시간 여유 있다면서요. 받고 오세요.”'“감사합니다. 그럼, 잠시만요.”'수인은 급히 자리를 이동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다른 때라면 휴대폰을 껐겠지만 오늘은 그녀가 지난주에 면접을 봤던 <르네브>에서 연락이 오기로 한 날이었다. 4년 전에도 면접을 보았었지만 그땐 나이도 어렸고 떨기도 많이 했었다. 면접관의 질문에 줄곧 ‘네?’만을 반복했었고 그래서 떨어졌을 거란 생각에 늘 미련이 남았었다. '‘휴우! 침착하자.’'수인은 마음을 다스리고 샛눈을 떠서 휴대폰에 번호부터 확인했다. 실망스럽게도 그건 룸메이트인 주나의 번호였다. '“응, 주나야.”'-연락 왔어?-'“아니, 안 됐나 봐.”'-아! 어제 꿈 진짜 좋았다니까. 너 아주 똥더미에 빠져서 헤엄을 치고 있었는데…….-'“주나야, 미안. 나 지금 일하는 중이야.”'-그래? 알았어. 이따 보자.-'“응.”'전화기를 끊고 다시 돌아온 수인은 피부 톤 표현에 대해 신부와 이야기 나눴다. 그리고 그녀의 메이크업 박스를 열었다. '“편하게 눈 감으세요.”'이제 수인은 신부가 눈을 떴을 때 만족할 결과물을 내놓아야 했다. 수인은 화장을 하면서 신부가 지루하지 않도록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야외 촬영 땐 좀 불편 했는데 그때도 선생님한테 받을 걸 그랬어요.”'“불편하셨어요? 제가 시간을 맞춰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아니예요. 화장은 예뻤어요. 추천해 주신 분도 잘 했어요.” '“그럼, 무슨 다른 문제라도?” '“그냥 그땐 몰랐는데 지금 선생님한테 화장을 받으니 편안해서요.”'“그래요? 감사합니다.”'수인도 신부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에 만족하며 파우더를 퍼프에 묻혔다. 수인은 신부 화장으로 꽤 유명했고 이 숍을 비롯해서 강남일대의 유명한 미용실로 출장을 다니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신부 화장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주나를 빼고 주변에서는 여러 가지 말로 만류를 했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신부 화장을 하고 싶지 않았고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좀 복잡해졌다. '“눈썹 조금만 더 정리할 게요.”'“네.”'수인이가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는 신부의 인상에 약간의 변화를 주기 위해 눈썹을 짧게 그렸다. 그리고 그녀의 까무잡잡한 피부에 맞추 스모키한 눈매를 완성했다. 그리고 화려함을 더하기 위해 골드 빛으로 마무리를 했다. 신부가 지방이 많은 눈두덩이는 무시하고 핑크를 고집해서 한참 이야기를 나눴었다. 딱 잘라 잘하면 아프리카 토인처럼 보일 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몇 번 참았다.'“신부님, 눈 한 번 떠 보시겠어요?”'속눈썹 붙인 위치를 확인하고 전체적인 눈의 표정을 살핀 후 만족스러운 수인은 다시 아이라인을 손보기 위해 붓을 들었다. '“눈 뜨시고 위를 보세요.”'아래 속눈썹에도 정성껏 마스카라를 칠해 줬다. 그리곤 그녀의 불분명한 입술 선을 보정하며 약간 통통하고 귀여운 느낌의 입술로 만들었다. 핑크를 포기한 눈을 대신해 최대한 상큼해야 했다. 핑크가 아니면 청순해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는 신부를 위해서였다. 그렇게 입술 안을 메우고 중심부에 립글로스로 광택을 살짝 줬다. '“웃으세요.”'볼터치를 두 가지 색을 섞어 가볍게 해 주고 얼굴의 전체적인 윤곽을 손보았다. 하이라이트를 주기 위해 T존을 마무리하고 수인은 신부의 의자를 거울이 보이도록 돌려주었다.'“신부님, 수고하셨습니다.”'그 말에 거울을 들여다보는 신부의 표정이 환해졌다. '“어쩜! 이게 저에요?”'“그럼요. 신부님이세요.”'이제 나이 들어 보이고 조금 매서운 듯한 인상의 칙칙하던 신부는 어디에도 없었다. 작아진 얼굴에 커다랗고 요염한 눈매를 한 귀여운 여인이 있었다. 눈을 어떻게 뜨느냐에 따라 귀여워 보이기도 했고 매혹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마음에 드세요?”'신부는 얼굴에 만족감을 가득 나타냈다. '“꿈꾸는 기분이에요. 고마워요.”'자신의 변신에 놀라 치켜 든 신부의 손톱은 곱게 칠해져 있었고 큐빅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을 위해 네일 숍에서 손질을 받고 저 큐빅이 하나라도 떨어질까 조심했을 터였다. '‘날이 밝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얼마나 설레었을까? 어떤 기분일까?’'“만족하셔서 기뻐요. 그럼…… 가보겠습니다.”'수인은 신부에게서 눈을 떼어 다음 예약 손님이 기다리는 여대 앞 웨딩숍으로 향하기 위해 메이크업 박스에 펼쳤던 브러시들과 화장품들을 챙겨 넣었다. 그러면서 수인이 눈짓을 하자 대기하고 있던 헤어담당이 다가왔다. '“이 신부님 머리는 너무 부풀리지 말아요. 그럼, 수고하세요.”'이렇게 헤어담당이 따로 있는 숍으로 오는 날은 편했다. 수인의 메이크업을 고집하는 신부들로 인해 가끔 앨범 촬영을 위한 스튜디오로 직접 가서 메이크업을 해줘야 하는 날은 신부의 머리도 매만져 줘야 해서 일이 많이 늦어졌다. 그리고 신부의 옷이 변할 때마다 화장과 헤어를 손보아야 하는데 행복하게 촬영을 하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최근에 헤어진 남자 친구로 인해 수인은 힘이 들었다. 오늘도 행복한 신부에게 잘 살라는 축복을 하지 못한 채 막 숍을 나서려는데 친한 헤어디자이너가 불렀다. '“수인 씨! 우리 단골 중에 친구가 수인 씨한테 신부 화장 받고 칭찬을 많이 했다면서 꼭 자기한테 화장 받고 싶다는 신부가 있는데 어때?”'“날짜만 맞으면 가능은 한데 요즘은 좀 일이 많네요.”'거짓말이었다. 수인은 요즘 일은 최대한 줄여 보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래도 하루아침에 일을 놓을 수는 없어서 꼭 필요한 일만 맡아서 하고 있었다. 수인은 지금 실연의 상처로 자신을 추스르며 일을 하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감정 표현에 서툰 수인이라 남자 친구에게 불만을 샀지만 이젠 덕분에 주변에서 그녀의 실연은 커녕 사귄 사실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달라진 게 없었으니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묻지도 않는 남자 친구의 존재를 먼저 알릴 수인도 아니었다. '“그러지 말고 스케줄 좀 봐봐. 정말 귀한 손님이야.”'“주말은 꽉 차서요.”'“평일도 좋고 자기 날짜 맞춰서 촬영 날짜도 바꾸겠다더라구.”'“촬영? 웨딩 촬영이에요?”'“응, 본식은 5월인데 4월 아무 때나 촬영날짜 잡으라고 말하던 걸. 스튜디오랑 얘기 끝났다네. 시집에서 결혼은 정해 준 곳에서 다 하라고 했다나봐. 지방인데 외부에서 오는 메이크업사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네. 그래서 디자이너 옹달로 숍에서 대여하기로 했던 드레스도 반납했다고 속상해서 난리야. 좀 맞춰 봐. 정말 바빠?”'“그건 아닌데……. 날짜까지 맞추신다면 할 수 없죠.”'수첩을 꺼내든 수인은 3월 21일 월요일을 골랐다. 그 날짜에 동그라미가 여러 개가 있는 걸 보면 중요한 날짜일 텐데 그날을 골라서 말하고 만약 그날이 된다면 괜찮다는 말을 남기고 나왔다. 그 중요한 3월 21일을 생각하려니 수인에게 또 우울함이 몰려왔다. '‘3월 21일. 세상이 끝나는 날도 아닌데 뭐.’'복잡한 그녀의 속과는 달리 누가 보아도 수인은 그저 조금 피곤해 보일 뿐이었다. 수인은 계단을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일 끝내고 나올 때가 제일 힘들다.’'사실 메이크업을 해줄 때는 일에 열중을 해서 별 생각이 없었다. 다 끝난 후가 문제였다. 행복한 신부의 모습을 보는 것도 그녀들의 결혼반지나 신혼여행지에 대한 소소한 자랑도 참아 주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제일 힘든 건 이렇게 일 끝낸 후 혼자 계단을 걷거나 차로 향할 때였다. 결혼을 꿈꾸던 사람과 헤어진 허전함과 일방적인 이별 통보에 대한 배신감이 물밀듯 밀려오는 이 순간이 가장 싫었다. '‘맙소사!’'수인은 이중 주차된 승합차를 본 순간 소리를 지르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무언가 앞을 꽉 막고 있는 듯한 요사이 기분처럼 자신의 낡은 차 앞에 그 승합차를 할 수만 있다면 밀어 버리고 나오고 싶었다.'“아이고! 아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