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무엇을 주웠기에 차가 오는 것도 모르고 길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을까 싶어 그 주먹을 들어 올렸다. 꽉 쥔 손가락을 하나하나 펼치자 은색 바탕에 이순신 장군이 남자를 무표정하게 보고 있다. '“백 원.”'남자가 백 원을 보며 생각에 잠겼을 때 백 원을 쥐고 있던 여자의 손이 꿈틀거렸다. '“으흥.”'느리게 떠진 두 눈이 완전히 사물을 인식할 무렵 남자가 의자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정신이 듭니까? 당신이 내 차에 부딪혀서 사고가 났습니다.”'“지금 몇 시에요?”'“9시가 좀 넘었습니다.”'“아.”'“아픈 곳은 없습니까?”'“없어요. 여긴 병원인가요?”'“네. 사고 난 곳에서 5분 정도 떨어진 대학병원입니다.”'“그렇구나.”'여자는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어깨에 약간 못 미치는 단발머리가 동그랗게 턱 선으로 말려있었다.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만들며 이리저리 살피던 여자가 아차 싶은 얼굴로 남자에게 급하게 물었다. '“내 백 원 못 봤어요? 흘렸을 리가 없는데.”'여자는 휑한 손을 펼쳤다가 접고, 이불을 들쳤다가 침대 아래를 내려다봤다가 하며 수선을 떨었다. 남자는 제 손에 쥐고 있던 백 원을 여자에게 내밀었다. '“이거.”'“다행이다! 있었구나!”'백 원을 쥐고서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여자에게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남자는 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무래도 정밀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이대로는 마음이 안 놓이는군요.”'“아니에요. 멀쩡해요 저! 그나저나 엄청 잘생기셨어요. 인기 많으시겠네요.”'“별말씀을.”'남자는 늘 들어 지겹던 소리지만 여자에게 씽긋 웃어주었다. 징크스도 지나간 데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여자마저 자신의 외모를 칭찬하니 기분이 나쁘진 않았던 탓이다. '“아, 의사 선생님께 이거 좀 빼달라고 해주실래요?”'삼분의 이쯤 들어간 링거를 가리킨 여자는 방금 자신이 내뱉은 말과는 딴판인 담백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던 남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리둥절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용석에게 전화를 걸어 링거를 빼도 되느냐고 물으면서도 남자는 이질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 맞고 가는 것이 좋다는 최용석의 말을 여자에게 전하고 다시 의자에 앉자 여자가 손안에 쥔 백 원을 만지작거렸다. '“제가 오늘 운이 좋은 모양이에요. 길에서 백 원을 줍다니. 게다가 링거를 맞고.”'“아파서 맞는 건데 좋을 것이 뭐 있습니까.”'“영양제 같은 거 잖아요. 그럼 좋은 거죠!”'“……집에 돌아갔다가 아픈 곳이 있으면 연락하세요.”'남자는 심하게 긍정적인 여자의 대답이 어이없었지만, 후일을 대비해 휴대폰을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여자는 그 손을 민망할 때까지 보더니 아! 하고 손바닥을 탁 쳤다.'“저 휴대폰 해지했어요, 게다가 지금 제가 사는 집엔 전화가 없거든요. 그리고 아마 괜찮을 거예요. 이래봬도 제가 통뼈라 다치질 않거든요.”'그러면서 ‘크하하하하’ 하고 웃는 여자의 목젖이 보이자 남자는 또다시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고 묘하게 생소했다. 지금 이 상황, 이 여자, 이 웃음 모두가 남자에게는 생경했다.'“전 정말 태어나서 이렇게 잘생긴 사람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전에 TV에서 원빈이라는 사람을 봤는데 그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생겼다면서요. 근데 오빠도 만만치 않은 것 같아요.”'원빈은 남자도 인정하는 미남이었다. 자신만큼 잘생기긴 드물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쭉 품고 있던 남자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인물이긴 하지만 남자는 여자의 말이 썩 기분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TV 잘 안 봅니까?”'“그다지 시간이 없기도 하고 TV 보려면 마트에 가거나 친구 집에 가야 해서요.”'“집에 TV가 고장 났나 보죠?”'설마, 설마 하면서 남자는 물었다. 여자의 말을 마치…….'“없어요, 어릴 때부터. 아빠가 바보상자 보면 바보 된다고 못 보게 하셨거든요. 근데 그게 몸에 익고 나니까 별로 필요가 없어서요.”'남자는 눈앞에 누워 싱글거리는 이 여자가 진심으로 신기했다. 휴대폰도 없고, TV는 아예 보질 않고 게다가 아주 담백하게 기름기는 물론 흑심까지 쪽 뺀 ‘오빠’라는 호칭으로 자신을 부른 것이 가장 신기했다. 친구들 손에 붙들려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한류 스타로 유명한 연예인과 즉석만남을 가졌으나 도도하게 거절하고 나왔다던 소문이 자자하던 인문대 퀸카를 단 10분 만에 하트뿅뿅으로 만든 남자는 심지어 자신의 매력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아침에 봤을 땐 멀쩡했는데…….’'그러나 남자는 이내 그것이 자신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고 마음을 비웠다. 꽤 오랫동안 사심 내지 흑심 없는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었기에 이 여자의 반응이 생소하긴 했어도, 그건 평범의 범주에는 속할 수 없는 이 여자를 떠올리면 그럴 수도 있다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미 오늘의 징크스는 지나갔고 불순한 의도로 접근하는 여자가 아니라는 것도 판명이 나자 긴장이 풀린 남자는 저도 모르게 먼저 말을 꺼냈다. 다른 여자들이 들었더라면 ‘데이트신청’으로 보일 법한 제안을. '“다 맞고 나면 식사라도 같이…….”'결론적으로 남자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자신의 말을 듣는 것 같던 여자가 갑자기 몸을 숙이며 급하게 침대 아래로 손을 뻗었기 때문이었다.'“앗, 내 백 원! 오빠 좀 주워 주세요!”'만지작거릴 때부터 알아봤지.'옆 침대 쪽으로 굴러가는 은빛의 백 원을 보면서 남자는 자신의 징크스가 이미 끝난 것이 아니라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문득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