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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햇살이 교실을 감싸주던 아침이었다.

선생님이 들어오기 전의 왁자지껄한 교실 풍경. 나 역시 옆자리에 앉은 짝꿍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까지 기억하기란 어렵다.

전학생이 온다는 소문이 있었다.

교실에 한 명쯤은 있을 법한, 갖가지 소문에 밝은 녀석들. 그런 녀석들이 어디선가 듣고 와서는, 여기저기에 퍼뜨린 소식이었다. 중학교 3학년 4월. 전학을 오기엔 애매한 시기였다. 남자들은 전학생이 혹여나 미모의 여학생은 아닐까 하며 들떠 있기도 했다.

전학생이 온다고 한 날이었다. 하지만 조례시간은 평소 때와 다름없이 흘러갔고, 그 후의 수업 시간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4교시였다. 4교시는 담임 선생님의 수업인 국사 시간이었다. 부임한지 이 년째에 접어든 이십 대 후반의 젊은 초임교사였던지라, 학생들은 대부분 그 선생님을 좋아했다. 남학생들 중에는 사랑에 빠진 녀석도 몇몇 있었더란다. 선생님이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올 때, 그 뒤를 따라오는 낯선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자자, 조용. 너네도 들어서 알겠지만, 우리 반에 전학생이 한 명 왔어요.”

‘올 것이 왔구나.’ 같은 생각보다는, 도리어 심드렁한 티를 팍팍 냈다.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이라면 그런 녀석도 있는 법이다. ‘세상만사에 무심해진 어른스러운 나’를 연출하며 스스로에게 도취되는 그런 녀석 말이다. 턱을 괴고 눈을 게슴츠레 뜨며, 뒤따라 들어온 전학생을 바라보았다.

전학생은 여학생이었다.

키가 작고, 예쁘장하고 앳된 얼굴이었다. 단정하게 빗은 머리는 어깨보다 더 밑, 등을 살짝 덮으며 찰랑거렸다.

키는 눈대중으로 재봤을 땐, 백오십이 조금 넘을까 싶은 정도. 나중에 물어봤을 때 들었던 대답은 ‘반올림해서 백육십’이었다.

커다란 알을 가진 땡땡이 안경을 쓴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에는, 낯선 학교에 발을 들였을 때의 긴장감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신만만하게, 활기차게 웃고 있던 얼굴이었다.

“그러면 잠깐, 자기소개를 해줄래?”

“‘윤혜지’입니다. 어릴 때 여기 살다가, 서울로 이사 갔다가, 다시 왔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맑은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듣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경쾌한 목소리였다. 서울에서 온 예쁜 전학생. 서울과는 제법 거리가 있는 경북의 중소도시 중학생들에게는 호기심이 동할 법도 했다.

교실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혜지는 나와도 눈이 마주쳤다. 유독 내 얼굴을 보자 표정이 더욱 밝아지고, 환하게 웃는 이유를 그 순간에는 알 길이 없었다. 반가운 사람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나는 영문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 한 여자아이와 약속을 했었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만나서, 결혼하자는. 어린아이들이 흔히 할 법한 그런 소꿉장난.

그 약속한 내용을, 편지에 써서 서로 나누어 가졌다. 우리 집 창고에는 어릴 적 물건을 모아둔 상자가 있다. 그 상자 안에는 여전히 그 편지가 담겨 있었다.

또 하나. 그 아이가 가지고 있던 커다란 곰 인형에다가 서로의 이름을 적었다. 버리지 않았다면 그 아이도 곰 인형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이런 오래된 기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난 건, 이 날로부터 시간이 훨씬 더 흘렀을 때였다.

“아, 제가 서울에 살다가 구미로 내려온 이유는요.”

혜지라는 아이는 내 눈을 바라보며, 팔짱을 꼈다. 착각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한 시선이었다.

교실에다 선전포고를 하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정인우, 기억나? 여섯 살 때 결혼하자고 한 거. 십 년 지났으니까, 연애부터 시작하자. 3학년 7반 정인우랑 결혼하러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