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은 아침에 눈을 떴다. 돌아서 옆을 보니 혼마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벌거벗고 상체를 그대로 드러내어 혼마는 기분 좋은 얼굴로 미소까지 지으며 아기처럼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제인은 혼마의 얼굴로 손을 내밀어 조심스럽게 볼을 쓰다듬었다. 손의 감촉에 혼마가 부스스 눈을 떴다.'“깼어?”'제인은 단잠을 깨운 것 같아 미안함에 물었다. 혼마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응. 아주 잘 잤어. 꿈에서도 온통 너와 함께 있었어.”'혼마가 부드럽게 제인의 코를 잡았다. 제인이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는 벗은 몸을 잽싸게 헐렁한 티셔츠로 가렸다. '“왜 그래? 부끄러워?”'“응! 햇살이 너무 밝아!”'제인이 얼굴을 붉히며 침대에서 빠져 나갔다. 미끈한 다리가 혼마의 눈에 들어왔다. 혼마가 씩 웃으며 말했다.'“후후! 바지만 입고 있어서 몰랐는데 너 지금 보니 다리가 이쁘다! 엉덩이도 토실하고!”'제인이 커피 물을 올리며 입을 삐죽였다.'“쳇! 내가 가꾸기만 하면 어디 빠지는 줄 알아? 이래봬도 법원 출입하는 변호사들 중에 나만한 인물은 없다고!”'제인이 자신의 다리를 앞으로 내밀며 으쓱했다. 혼마는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 그만 환하게 웃고 말았다. 그렇고 보니 오늘 아침은 다른 날과 달리 공기부터 상큼했다. 창틈으로 들어오는 햇살도 비온 뒤에 개인 햇살처럼 눈부시었다. 혼마는 기지개를 켜며 목청을 높였다.'“아! 기분 좋다! 세상을 모두 얻은 기분이야!”'혼마가 몸을 일으키다가 아래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자신을 보고는 기겁을 하며 이불로 가렸다. 제인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리고 혼마의 바지를 던져 주었다.'“허 참! 묘한 분위기네.”'혼마는 바지를 얼른 입고는 헛기침을 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적당히 씻고 나오자 커피와 토스트가 식탁에 차려져 있었다. 혼마가 씩 웃고는 식탁에 앉았다.'“결혼 하고도 아침상을 이렇게 해줄 거야? 난 밥을 먹어야 힘이 나는데!”'그러자 제인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밥 먹고 싶어? 밥으로 차릴까?”'“아, 아니야! 자기가 힘들면 이것도 괜찮아. 하지만 일요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아침은 밥이야. 알았지?”'“그럼! 자기가 원하면 매일 밥으로 대령 할 거야! 정말이야.”'제인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혼마의 투정이었다. 빵조각도 너무 맛있었고 커피 역시 인스턴트였지만 여느 때와는 다른 특유의 구수한 향기가 더했다.'“외박했으니 어머니께서 걱정하시겠다! 전화라도 해주지?”'제인이 정색을 하며 혼마를 재촉했다.'“걱정 마. 요즘 회사일로 이틀에 한 번은 외박이야. 오늘도 그러려니 하실 거야.”'“이틀에 한 번? 그렇게 일이 많아?”'“응! 아주 파묻혀 산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혼마가 제인을 보며 밝게 웃었다. 제인이 걱정스런 얼굴로 울상을 지었다.'“어떻게 해? 그러다 몸 축나는 것 아니야?”'“후후! 벌써 잔소리 하는 것은 아니겠지? 걱정 마. 아직 젊잖아!”'혼마는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옷을 입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는지 제인에게 물었다.'“그건 그렇고!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지? 난 하루도 널 보지 못하면 미칠 것 같은데!”'그러자 제인 역시 고개를 숙이며 말끝을 흐렸다.'“그,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하, 하지만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같이 지낼 수도 없고…….”'“안 되겠어! 결혼부터 해야겠어! 그러려면 정식으로 프러포즈부터 해야겠어!”'혼마가 호쾌하게 단정 짓고 결론도 짓고 있었다. 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만족한 웃음만 지었다. 혼마가 시계를 보더니 일어섰다.'“출근해야 해. 전화 할게.”'“알았어. 조심해.”'“넌 출근 안 해?”'“난 시간 여유 있어. 사무실이 가깝잖아.”'“참 그렇지. 그러려고 오피스텔을 가까이 얻은 거지! 엉뚱하게 용도를 다른 것으로 우리가 이용했지만 말이야. 후후!”'혼마는 구두를 신으며 짓궂게 제인의 볼을 살짝 잡아 당겼다. 그리고는 혼마는 전화를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제인의 오피스텔에서 나갔다. 혼자된 제인은 그만 두 팔을 하늘로 치올리며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는 창문을 열고 차가운 바람을 들이마셨다. 가슴이 뻥하게 뚫리는 상쾌함이 밀려왔다.'‘야호! 이거야! 기다렸던 순간이 바로 이거야!’'제인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속으로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모든 것들이 꿈만 같았던 하루 밤이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어젯밤의 흔적인 여자로서 첫 경험의 아릿한 아픔도 그녀는 사라지기가 싫어지는 간직하고 싶은 고통이었다. '혼마가 그녀 속으로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제인은 자신이 너무 대견해 까무러치고 싶었다.'사랑은 그렇게 완성 되었다고 제인은 굳게 믿고 있었다.'''''*'혼마는 싱글거리며 회사로 출근했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김 팀장이 사무실로 들어왔다.'“좋은 일이 있으세요? 얼굴이 밝으십니다.”'김 팀장이 혼마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하하! 그래요?”'혼마는 웃으며 김 팀장이 내민 결재서류를 살폈다. 복지재단에 대한 감사의 결과였다. 혼마는 대체적으로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결제에 사인을 했다. 그러자 김 팀장이 다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좋은 기분에 이런 말을 드려서 안 됐습니다만 본부장님께서 꼭 아셔야 할 사항이 발생 했습니다!”'혼마는 고개를 들어 김 팀장을 봤다. 김 팀장의 표정에 중대한 상황이 발생했음을 알아 차렸다. 혼마는 걱정되는 얼굴로 물었다.'“뭐지요?”'“우리 동현리조트가 이상한 루머에 말린 것 같습니다! 갑자기 주식 변동이 심합니다!”'“뭐요? 리조트가요? 아니 리조트가 왜요? 변동이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혼마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그렇긴 합니다만 악성 루머가 돌고 있습니다! 태성그룹이 태국 코창 리조트 사업에 발을 뺐다는 설이…….”'“뭐요? 태성이 태국사업에 발을 빼요? 어디서 그런 말도 되지 않는!”'혼마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망치로 뒤통수를 가격 당한 것처럼 멍해졌다. 그러자 김 팀장이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그런데 그게 전혀 허무맹랑한 말이 아니라는 것이 문젭니다! 리조트 측에서는 어제 결제를 마쳐야 할 태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태성이 이유를 대지 않고 뒤로 물렸다는 겁니다. 담당자의 말로는 태성 실무관계자가 해명을 하지 않고 위에서 내려온 지시라고만 한답니다!”'“위에서 내려온 지시? 그럼 태성의 최 회장님이 브레이크를 건다는 겁니까?”'“네! 지금으로선 그렇게 밖에…….”'혼마는 자리에 앉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태성은 남도 아닌 사돈의 회사였다. 그동안 태성과 동현은 크고 작은 사업에 공동투자도 많이 했었고 지금도 적지 않는 사업을 공동투자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태성이 발을 뺀다는 의미는 유독 리조트 사업에 한해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동현과의 공동사업 자체를 재검토 한다는 신호였다.'“그리고 이건 업계에서 들리는 소문입니다만 태성의 최 회장님이 우리 동현그룹의 후계자 선정 과정에 충격을 받고 서서히 다음 후계자 선정을 시작했다는 정봅니다. 아무래도 이번 우리 회사와 의견을 달리 하는 것도 그것과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 합니다!”'“후계자 선정 과요? 그것이 우리와 무슨 연관이 있다고요?”'그러자 김 팀장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있지요! 본부장님 작은 아버님이 태성그룹 사위지 않습니까? 그리고 최 회장님의 신임도 받고 있고요!”'“뭐! 뭐라고요?”'혼마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성택에 관한 문제가 거기에도 있었던 것이다.'“하, 하지만 아들이 있지 않습니까? 태성건설 최 사장 말입니다!”'그러나 김 팀장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아니요! 최 사장은 이미 최 회장 눈밖에 난지가 한참 된 사람입니다. 젊어서부터 방탕하기로 유명했으니까요. 거기다 그 사람 아들마저 아버지를 닮아 개차반이고요! 유일하게 최 사장이 외도로 낳은 딸이 있는데 그 여자만이 최 회장의 눈에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자라는 약점이 있고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당장은 선두에 설 그런 입장이 아니라고 모두들 보고 있습니다!”'“그러니까 잘만 하면 숙부께서 최 회장의 뒤를 이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네! 어디까지나 항간에 나도는 소문이지만 충분히 그럴 수는 있다고…… 더구나 지금 그분이 처한 입장이 미묘하지 않습니까.”'혼마는 김 팀장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아 차렸다. 집안 단속이 필요한 시기라는 말이었다. 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알았어요! 내가 처리 하겠습니다! 그만 나가 보세요.”'혼마는 김 팀장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 팀장이 인사를 하고 물러나고 있었다. 혼마가 돌아서는 김 팀장을 다시 불러 세웠다.'“팀장님! 이것 역시 도려내야 하는 상처겠지요?”'김 팀장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그럼요! 사정을 봐줘선 안 되는 상처지요!”'“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 있는데 그동안 속에 들어있던 불덩어리를 어떻게 잠재웠지요? 그것도 30년 동안이나요.”'혼마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김 팀장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처음부터 30년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구상하던 모든 것들이 뒤로 밀리고 차츰 뒷방 노인이 되다 보니까 크고 작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룹이 돌아가는 현황들이 말입니다. 물론 아무도 알아주진 않았지만요!”'김 팀장이 날카로운 눈을 반짝이며 물러났다. 혼마는 새삼 인재등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김 팀장 같은 사람을 일찍이 요직으로 발령을 내렸더라면 그룹을 위해 큰일을 할 사람이었다. '혼마는 전화기를 집어 도수의 번호를 눌렀다.'“접니다! 지난번 말씀 드렸던 명동증권시장 브로커 말입니다. 서두르셔야겠습니다!”'그러자 도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이미 시작했네! 지금 내 눈 앞에 있어.”'“그래요? 제가 들어야 할 것이 있습니까?”'혼마가 놀라며 물었다.'“그런 것 같아. 자네 숙부 말이야. 회사 지분을 얼마나 가지고 있나?”'“네? 수, 숙부요? 무슨 일입니까? 자세히…….”'혼마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숙부인 성택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던 중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