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광야의 적토마 1권

철원에서 출발한 버스가 드디어 상봉동 버스 터미널로 들어서고 있었다. 제대군복에 군모를 깊숙이 눌러선 혼마는 부스스 잠에서 깨어 눈을 떴다. 버스가 승객 하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군모를 벗고 옆을 보니 윤 병장이 여전히 잠에 빠져 있었다. 혼마는 윤철호 병장의 옆구리를 찌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다 왔어. 내려야지.”'윤 병장이 아직 잠이 들깬 얼굴로 고개를 쳐들고 밖을 내다봤다.'“생각보다 빨리 왔네!”'윤 병장이 잠이 들깨 부스스한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기지개를 꼈다. 혼마가 빙그레 웃으며 일어서 선반에 놓인 륙색을 끄집어내 윤 병장에게 던졌다. 윤 병장이 일어서며 혼마가 던져 준 륙색을 어깨에 메며 말했다. '“소주 한잔 해야지? 서울 입성을 멀쩡한 정신으로 할 수가 있겠어?”'윤 병장이 혼마의 등을 두드리며 씩 웃었다. 혼마가 대답대신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버스에서 내린 두 사람은 붐비는 사람들 틈에 잠시 머뭇대다 곧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제대군복이 어색한지 윤 병장이 혼마에게 말했다.'“이방인 같지 않아? 섬에서 탈출한 이방인 말이야.”'혼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군복을 입었을 땐 몰랐는데 제대복은 영 어색하네!”'혼마가 자신의 옷차림을 보며 싱겁게 웃었다. 윤 병장이 가까이 다가와 어깨에 팔을 둘렀다.'“삼겹살로 할까? 오늘은 고기가 땅기네!”'혼마는 말없이 또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가까운 삼겹살 전문 식당으로 들어섰다. 식당 안은 휴가를 나온 군인과 제대군인들로 가득했다. 주인아주머니가 자연스럽게 두 사람에게 다가와 물어 보지도 않고 말했다.'“삼겹살에 소주지요?”'혼마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능숙한 동작에 기계처럼 움직이는 아주머니에 의해 냉동된 삼겹살이 썰어져 불판위에 올려졌다. 혼마가 소주를 윤 병장 잔에 따라주며 물었다.'“집이 인천이라고 했지?”'윤 병장이 잔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뭘 할 거야? 복학 할 거야?”'혼마의 물음에 윤 병장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복학은 무슨 개뿔! 이름 없는 지방대학 졸업해 봤자 취직하기도 힘든데…….”'“그래도 졸업은 해야 하는 것 아니야? 부모님도 그걸 바라실텐데?”'“그래서 고민이야! 난 돈 벌고 싶은데 우리 아버지는 펄쩍 뛰실 거야. 졸업부터 하고 보자는 식이시거든.”'윤 병장이 씁쓸히 웃으며 소주잔을 들이켰다. 혼마는 불판에 익은 삼겹살을 뒤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넌 어쩔 거야? 계획대로 연수원을 거쳐 검사가 될 거야?”'윤 병장이 부럽다는 얼굴로 혼마를 봤다. 혼마가 엷게 웃고는 잔을 들이켰다.'“나도 아직 모르겠어! 좀 더 생각해 봐야겠어.”'“왜? 사법고시까지 마쳤으면 더 볼 것 없는 것 아니야?”'윤 병장의 물음에 혼마는 여전히 웃음으로 답했다. 윤 병장이 입을 씰룩이며 욕설이 섞인 푸념을 했다.'“쓰벌!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법고시를 패스한 놈이 망설이긴 뭘 망설여? 샘나게!”'윤 병장의 푸념에 혼마는 빙그레 웃고는 삼겹살 한 움큼을 입속으로 넣었다. 그리고는 괜한 몸놀림으로 과장되게 목소리를 높였다.'“와! 맛있다! 이 년 만에 먹는 삼겹살이라서인지 입에 찰싹 달라붙네!”'혼마의 감탄에 윤 병장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지랄! 남들 다가는 휴가도 가지 않았으니까 이 년 만에 삼겹살을 처먹지! 궁상떨기는!”'혼마는 윤 병장의 핀잔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묵묵히 삼겹살을 입으로 가져갔다. 탁자위에 소주병이 쌓이고 삼겹살이 불티나게 굽혀져 두 사람의 입으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배가 차자 윤 병장이 긴 트림을 하며 배를 두드렸다. 얼큰하게 취기도 올라왔다.'식당을 나오자 어느새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집으로 바로 들어 갈 거야?”'윤 병장의 물음에 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네! 이 년간 한 내무반에서 뒹굴던 동기와 헤어지기가!”'윤 병장이 아쉬운 눈길로 혼마를 봤다. 혼마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또 볼 거잖아. 우리 집 전화번호 가지고 있지?”'“그럼! 장래 검사님 덕 좀 보려면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지. 하하하!”'윤 병장이 물기가 어린 눈으로 웃으며 혼마의 손을 잡았다. 혼마가 팔을 내밀어 윤 병장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윤철호! 잘 가! 널 영원히 잊지 않을게!”'그러자 윤 병장, 아니 윤철호가 눈물이 고인 얼굴로 혼마를 끌어안았다.'“그래! 잘 가라! 도혼마! 네가 있어 이 년의 군 생활이 정말 즐거웠다! 진심이다!”'혼마는 팔에 힘을 주어 철호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잠시 그렇게 있었다. '“연락하자! 알았지?”'윤철호는 아쉬운 작별을 하고 전철을 타고 사라졌다. 혼자 남은 혼마는 잠시 거리에서 머뭇거렸다. 무엇을 해야 할지 순서가 정해지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공중전화가 눈에 들어왔다. 혼마는 망설이다가 전화기로 다가갔다.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넣고는 혼마는 잠시 망설이다가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고 곧 귀에 익은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혼마는 반가운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아주머니! 저 혼맙니다!”'“네? 도, 도련님! 혼마 도련님이세요?”'아주머니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네! 그동안 안녕 하셨어요?”'“그, 그럼요! 도련님이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요! 제대 하신 거예요?”'“네! 오늘요. 할아버지는 계세요?”'“그럼요! 지금 막 퇴근 하셔서 서재에 계세요. 회장님도 도련님 소식을 많이 기다리셨어요!”'아주머니 음성이 촉촉이 젖어 들었다.'“잠시 기다리세요. 곧 바꿔 드릴게요.”'그리곤 잠시 전화가 침묵을 했다. 그리고 곧 갈라지는 노인의 음성이 들렸다.'“호, 혼마냐?”'순간 혼마는 눈물이 핑 돌았다.'“할아버지! 저 혼맙니다!”'곧 할아버지인 도관용의 목소리의 높이가 달라졌다.'“제, 제대 한 거냐?”'“네! 오늘 제대했습니다. 그래서 인사차 전화 드린 겁니다!”'“그래? 무사히 제대를 했구나! 반갑다! 그리고 축하한다!”'할아버지인 도관용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혼마가 가라않은 목소리로 말했다.'“안녕 하시지요?”'“그럼! 할애비는 잘 견디고 있다.”'혼마의 볼에 눈물이 타고 흘렀다.'“죄송합니다! 할아버지에겐 여러 가지로 불효를 저질렀습니다.”'도관용이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널 이해한다! 모든 것이 이 할애비의 불찰이다!”'“아니요! 저도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젠 할아버지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내일 안으로 회사로 찾아가 뵙겠습니다.”'순간 도관용이 멈칫하며 말했다.'“왜? 바로 집으로 들어오지 않으려는 거냐?”'혼마가 잠시 말을 하지 못하고 뜸을 들였다.'“죄송합니다! 입대 전에 말씀 드린 것처럼 어머니가 계신 봉천동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도관용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짐시 후 도관용이 침착한 음성으로 말했다.'“알겠다! 이 이야기는 전화로 할 말이 아닌 것 같구나! 회사로 언제 올 태냐?”'혼마는 일단 뒤로 물러서는 도관용의 말에 안도하며 말했다.'“점심때 찾아뵙겠습니다.”'“오냐! 기다리고 있으마. 그리고 다시 한 번 축하한다. 할애비는 너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기 바란다. 내말 알아듣겠지?”'그러나 혼마는 그 말에 대답 할 수가 없어 가만히 있었다. '“점심때라고 했지? 오랜만에 너와 같이 밥을 먹어야겠다! 사실 요즘 통 밥맛이 없어 잘 먹지를 못하고 있거든. 오랜만에 보고 싶은 얼굴을 보고 맛있는 밥을 먹어야겠다. 그래도 되겠지?”'“그, 그럼요! 점심때에 뵙겠습니다!”'혼마는 어려운 전화를 끊었다. 절로 긴 한 숨이 새어나왔다. 혼마는 다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번호를 눌렀다. 잠시 후 어머니인 김채현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엄마! 혼맙니다!”'곧 전화기에게 맑고 깨어지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리보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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