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 ''''찰칵- '소리는 꽤나 요란하게 울려댔다. 보통사람이라면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정도로 사방에서 번쩍거리는 플래시가 터져댔다. '“윤재인 씨, 갑자기 결혼을 결정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윤재인 씨! 얼마 전 결혼한 하채린 양과 교제했던 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까?” '“하채린 양의 결혼식이후 이렇게 갑자기 결혼발표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부가 될 아가씨는 어떤 분입니까?” '“윤재인 씨! 한 말씀만!” '“윤재인 씨! 윤재인 씨!”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기자회견이 예정된 장소로 이동하는 것조차 힘들어지자, 재인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에는 짜증도 한껏 배어있었다. 달려드는 기자들을 막는 것은 매니저의 몫이었기에, 창훈은 온몸으로 그들을 막아내느라 기진맥진이었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다 말할 텐데 저렇게 달려드는 이유는 뭐야.” '기자들을 물리치고,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나서야 창훈이 어깨를 주물러대며 볼멘소리를 했다. 재인이 히죽 웃자, “네가 뭘 잘했다고 웃어!”라며 장난스럽게 그의 목을 조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재인은 다시 얼굴을 굳힌 채 석고상모드에 돌입해 버렸고 창훈은 그를 보며 입술만 실룩였다.'“말해봐. 어떤 여자야? 나도 좀 알자.” '창훈이 궁금함을 못 참고 물었지만 재인은 “글쎄…….”라며 대답을 흐려버렸다. 창훈은 말을 해주지 않는 재인 때문에 속이 답답한지 자신의 가슴을 탕탕 쳐댔다. 붙임성 좋고, 웃기도 잘하던 녀석이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통에 심심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니, 섭섭하기도 했다. 엘리베이터를 내리기 전 창훈은 “새신랑이니까…….”라며 그의 넥타이를 다시 정리해주고, 옷매무새를 만져주었다. 그에 재인은 “고마워.”라는 간편하고 짧은 말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내려버렸다. 그의 뒤를 따르며 창훈은 낮게 한숨지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주말의 밤이었다. '“어, 저거 또 나오네.” '우연히 채널을 돌리던 중에 3일전 있었던 배우 윤재인의 결혼발표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멍하니 리모컨을 손에 쥐고 앉아 있는 수현의 뒤로 소파에 앉아 어느새 과자 한 봉지를 뚝딱 해치운 여동생 수정이 말했다. '“저게 대체 몇 번째야. 누구 염장을 지르려고 틀어대는 채널마다 저것만 보여 주는 거야? 어떤 여잔지 완전 땡 잡은 거지. 윤재인 돈 많지, 얼굴 완벽하지, 성격 죽이지, 아마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를걸.” '질투 가득한 말을 터트리며, 수정은 분통이 터져 가슴이 탕탕 두드려댔다. 그 모습을 보며 수현은 얼굴에 얼핏 미소가 스쳤다.'“저 사람 몇 살이야?” '“음, 스물아홉. 왜 서른도 안됐는데 결혼을 하겠다고 저 난리지? 뭐가 아쉬워서. 어머머, 저 웃는 것 좀 봐. 얄미워 죽겠네.” '스물아홉, 수현은 나랑 같구나, 라고 생각하곤 다시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서른도 안 된 남자가 결혼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데, 왜 서른도 안 된 여자는 결혼시키지 못해 안달 인걸까? 수현은 화면 속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몇 번이나 엄마와 언니에게 이끌려 선을 보러 다니던 것을 떠올라 입술을 삐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