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고르기 위해 벌렁 들어 누운 하진은 좀 전까지 자신의 몸을 놓아주지 않던 담의 벗은 몸 위에 손을 올려놓고는 뜨거운 그녀의 몸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사랑의 여운을 즐겼다. 아직은 여름이라 그런지, 그도 아니면 너무 격한 사랑을 나눈 후라 그런지 덥고 숨이 차올라 움직일 수도 없었기에 그렇게 서로의 몸이 주는 황홀한 여운을 즐기며 멍하니 누워 있었다.'참 아름다운 밤이었다. 달빛이 교교히 들어와 방 안에 바깥 정원에 드리워진 소나무가지를 옮겨다 놓고 있었다. 그곳에 먼 하늘이 내려앉은 듯 군데군데 환한 달빛이 가득했다. 그 사이로 긴 소나무 줄기가 벽을 타고 흘러내려가고 그 소나무 줄기가 둥치와 만나 자신들의 발아래 놓인 문갑 너머로 이어졌다. 한 폭의 수묵화 같은 그 모습에 잠시 넋을 잃고 있던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담. 잠시 일어나 앉아 저것 좀 봐요.”'하진의 재촉에 겨우 지친 몸을 일으키고 앉은 그녀는 그가 손으로 가리킨 곳을 보고 놀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발아래 벽면 바깥 정원의 소나무 둥치에 움푹 팬 옹이 그림자가 비친 그곳이 유독 환한 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달빛과는 전혀 다른 빛으로 반짝이는 그곳을 보며 그가 다시 중얼거리고 있었다.'“이곳에서 합궁을 하라는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누워 저곳을 보라는 것이었어요. 한바탕 사랑을 나눈 시간이 아니면 이렇게 깊이 달빛이 들어오지 않으니까. 이렇게 기분 좋은 휴식을 취하는 동안 보름달은 저렇게 아름다운 수묵화를 그려 놓고 우릴 기다리고 있었던 거군요.”'“정말 저곳일까요?”'“벽 안에 넣어져 있어 낮에는 알 수 없지만 깊은 밤 보름달빛이 비추면 은은히 벽 속에서 빛을 발하는 금빛이 밖으로 새어 나와 저렇게 아름답게 빛나 보이게 해 두신 거겠죠.”'“이제, 어떡하죠?”'“뭘 말입니까?”'“저곳에 그것들이 있다면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하하하. 담. 그건 그 다음에 생각할 문제인 것 같군요. 우선 먼저 저곳이 맞는지 확인부터 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어떻게요?”'“잠시 기다려 보세요.”'그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분명 여름이라 몸이 뜨거워야 하는데 온몸에 돋은 소름으로 차가워진 몸에 걸쳐지는 자리옷은 그의 몸과 마음을 정신 차리게 해주는 자극제가 되었다. 크고 아름다운 소나무의 뿌리가 머무는 곳이라고 했던가? 장인인 선황제가 그에게 남긴 금괴 보관 장소에 대한 단서를 떠올리며 달빛이 그려낸 나무 밑둥치가 자리한 문갑을 조금 들어내었다. 그곳에 무엇인가 있을 것만 같았다.'그의 예상대로 그곳에는 작은 철문으로 된 벽 속에 숨겨진 함 같은 것이 하나 보였다. 어느새 그의 곁으로 옷을 걸치고 다가온 그녀를 잠시 올려다본 그는 그 철문을 열어 보았다. 오래되고 둥근 모양의 문고리 같은 것이 그곳에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었다. 무언가와 연결된 것 같은 그것은 마치 빨리 자신을 잡아당겨 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떨리는 손으로 그 문고리를 천천히 잡아당기자 신기하게도 달빛에 비친 검은 소나무가 그려졌던 그 벽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로질러 있던 벽이 곁의 벽 사이로 들어가면서 그들의 앞에는 검고 단단한 철문으로 된 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검은 그것이 온전히 드러나고 난 후 놀란 가슴을 안고 그 앞으로 다가간 그녀는 견고한 그 문 앞에서 떨며 서 있었다.'순종 황제 폐하 승하 이후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던 그곳은 1926년 이후 거의 백 년 동안 아무도 자신을 찾아 주지 않아 오히려 서운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항일 투쟁을 위해 의병 활동 중이던 선황제 강종 이륭이 부친인 순종 황제의 마지막을 지키기 못해 금괴 보관 장소에 대해 직접 전해 듣지 못했고, 중국 땅에서 민영익이 갑작스럽게 사망함으로써 그 후손조차 그곳을 알지 못했던 탓에 오랫동안 숨죽이고 있었던 그곳은 할 말이 많을 것임에도 묵묵히 침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