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그래서요?”

분명 정중한 어조이건만 어딘가 미묘하게 달라진 표정만으로 최중원은 바싹 긴장했다.

그는 조심스레 시선을 내리깔아 젊은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예리한 검은 눈이 서류를 향해 있어 그의 생각을 알아채긴 힘들었지만 살짝 굳어진 표정이나 한일자로 굳게 닫힌 입매만으로 은근 신경이 쓰이는 상대였다.

중원은 은밀히 숨을 삼키며 이 남자를 화나게 한 것이 자신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그는 진실을 원했고 중원은 오랜 시간 힘들게 알아낸 정보를 알려 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그가 중원에게 화낼 이유는 없을뿐더러 젊은 남자가 뿜어내는 강한 아우라에 괜히 주눅들 이유는 더욱 없었다. 설령 그가 전하는 진실이 이 남자의 심기를 건드린다 해도 말이다.

지난 몇 년간 경험을 통해 강재하란 남자가 어떤 타입인지 충분히 인지하지 않았던가.

그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이에 비해 진중하고 냉정하다고 할까.

사실 그가 자란 환경을 본다면 그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청운의 후계자로 키워지고 스물여섯의 나이에 치열한 전쟁터인 비즈니스 세계에 발을 내딛고 살아왔으니 감정 절제는 필수였으리라. 거기에 청운이 국제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기까지 이 남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사람은 다 알았다.

그 누구보다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이어 왔을 테고 서른을 넘어선 지금은 그 자체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냉철한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다만 일과 사생활을 철저히 분리하는 스타일이기에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세상에 알려진 피상적인 정보 외에 개인적인 성향이나 사생활은 거의 배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런 남자가 지난 몇 년간 한 여자를 찾기 위해 온 정성을 쏟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아마도 그 사실만으로 세간의 충분한 흥밋거리가 되리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사실 중원도 사람인지라 호기심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체 그 여자가 누구이기에 이렇게 오랫동안 찾아 헤매는 것일까, 하는 순수한 호기심?

물론 그런 기미를 내비쳐선 안 된다. 이 일을 시작할 때의 조건이 바로 비밀 유지 서약과 사적 무관심이었고 만일 둘 중 하나라도 어길 경우 그에 상응한 대가를 각오해야 한다는 것은 세 살 어린아이라도 알 것이다.

다행히 중원은 그런 무모한 시도를 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이미 넉넉한 선불을 받은 상태였고 이번 보고를 통해 기대 이상의 거금을 손에 쥐게 될 터였다. 무엇보다 그는 오랜 시간 묵묵히 기다려 주지 않았던가. 그런 그에게 보답하는 의미에서라도 최소한의 신의를 보여주고 싶었다.

내심 은근한 만족감에 옅은 미소를 짓던 중원은 그를 올려다보는 날카로운 검은 눈과 마주하자 번쩍 정신을 차렸다.

짙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강한 빛을 내뿜는 의미는 명확했다.

“아, 죄송합니다. 잠시 딴생각을 하다 보니…….”

“묻는 말에 어서 답변해 주십시오.”

역시나 여지없이 단칼에 자르는 말투였다.

중원은 은근한 초조감을 애써 누르며 눈앞의 젊은 남자에게 다시 집중했다.

“이미 보고서에 자세히 정리하긴 했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낸 것은 그녀가 한국을 떠나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며칠을 보낸 후 곧장 제삼국으로 떠났다는 사실이 전부였습니다. 그 뒤로 그녀의 행방은 묘연해졌지요.”

그는 한 박자 쉬며 숨을 골랐다.

“그러다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있었던 곳이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오지였다는 것. 물과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조건에서 그녀는 지난 5년 동안 KGO라는 세계 자원 봉사 단체의 멤버로서 지냈습니다. 그러다 작년 11월, 최진숙이라는 여인과 함께 귀국했는데 그 이유가 최진숙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더군요,”

“최진숙?”

재하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사납게 미간을 좁혔다.

“그곳에서 함께 봉사 활동을 한 간호사이자 그 단체의 동료입니다. 서른 살 가까운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모녀지간이라고 불릴 만큼 아주 가까운 관계였다고 합니다. 만일 원하신다면 최진숙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조사해 보겠습니다. 다만 최근에 알아낸 사실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지난주에 지병인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작년 11월에 입국했는데 이제야 찾았다는 말입니까? 왜 그때 보고하지 않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