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햇살은 징그러울 만큼 따사로웠다. 따사롭다 못해 뜨끔한 그것은 다솔의 얼굴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자연히 인상이 찡그려졌다. 다솔은 짜증 섞인 신음을 흘리며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낱 햇빛 나부랭이가 그녀의 단잠을 깨운 것이다.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감겨 있던 눈을 들어올렸다. 불분명한 시야가 맑아질 때 즈음, 게슴츠레하게 풀려 있던 다솔의 눈이 순식간에 휘둥그레졌다. '옴마나! 여기가 어디야? '다솔은 대략 50cm정도 펄쩍 튀어 오르며 침대에서 튕겨져 나왔다. 그러면서 뭔가 물컹한 걸 밟은 것 같기도 한데 지금은 그딴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양 쪽 모두 1.2였던 시력이 하루 사이에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분명 이곳은 산만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방이 아니었다. 구조는 말 할 것도 없고, 42인치 완전 평면 텔레비전은 자신의 방은커녕 집에도 없는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으아아아악! 여기가 어디야!”'다솔은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내지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이건 명백한 외박이었다. 순간 ‘외박은 곧 죽음이다.’ 를 외치는 서 여사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일전에 오빠 윤솔이 외박 한 번 했다가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고 러닝셔츠 바람으로 쫓겨났었던 일이 있었다. 꽤 추운 날 거의 발가벗은 차림새로 1시간을 밖에서 오들오들 떨던 윤솔은 결국 사흘 동안 감기 몸살로 앓아누웠었다. 그 이후 윤솔은 외박의 ‘외’ 자 만 들어도 경기를 하며 다시는 외박을 하지 않았다. 남자인 윤솔이 그 정도인데 하물며 여자인 다솔은 오죽하랴. 아마 다리몽둥이 하나 정도는 우습지 않게 부러지리라. '으앙, 난 이제 죽었다! '우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앞으로 닥쳐 올 재앙을 생각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침대에서 불쑥 인기척이 느껴졌다. 화들짝 놀란 다솔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동작을 멈춘 채, 침대를 향해 고개만 홱 돌렸다. 흡사 몽달귀신의 형상을 한 누군가가 그녀의 시야에 잡혔다. 뭐, 뭐야 저거? 눈앞에 보이는 해괴한 물체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자니, 그 몽달귀신이 꿈틀거리며 입을 열었다.'“으……. 머리야.”'몽달귀신의 음성은 음산할 정도로 허스키했다. '가만……. 이 목소린? '자칫하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이 가라앉아 있긴 했지만, 분명 아주 친숙한 목소리였다.'“오 상큼?”'“물! 물 내놔, 물! 내 목이 타들어 가고 있어!”'저 버르장머리 없는 말투, 어디 친숙하기만 할 소냐? 너무 들어서 지긋지긋할 지경이다. 몽달귀신의 정체를 확인한 다솔은 휴 하고 참았던 숨을 토해 내었다. 이제야 왜 이런 사단이 난 것인지 대충 감이 왔다.'어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상큼에게 전화가 걸려왔었다. 자신이 기르는 페르시안 고양이 날큼이의 생일이라 한 턱 쏜다는 내용이었다. 당최 고양이 녀석 생일에 왜 저가 기분을 내는 것인지 이해불가였지만, 일단 술을 사준다니 별 생각 없이 ‘그래 좋다.’ 하고 만날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해서 삼총사인 다솔, 상큼, 희정은 고양이의 생일 축하를 명목으로 초저녁부터 술잔치를 벌였다. 1차는 의례 그렇듯 고기 집에서 시작했다. 그 다음은 호프집을 거쳐 로바다야키, 노래방에 이르기까지, 세 여자는 죽기를 작정하고 퍼마셨다. 그러다 희정은 남자 친구 동민의 호출로 자리를 떴고, 애인이 없는 다솔과 너무 많아서 골라잡기가 난해한 상큼은 계속해서 술과 친분을 쌓았다. 다솔은 평소에 약간 알딸딸한, 그래서 딱 기분이 좋을 만큼 취하는 걸 좋아했다. 그렇다 보니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셔본 적은 거의 없었다. 헌데 어제는 일이 이리 되려고 그런 것인지, 그 어느 때보다 술 맛이 꿀 맛 같이 느껴져 취하는 줄 모르고 마셔 버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슨 바(Bar)에서 칵테일을 마시던 것까지는 얼핏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는 캄캄한 암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