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이렇게! 저 아이에게 상처를 주어야겠냐고요!”'승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급했다. 그러나 신우는 태연했고, 소요는 무서우리만큼 담담했다.'“상처는 이미 내재되어 있던 겁니다. 그걸 끄집어 내지 않고는 치료할 수도 없죠. 속에서 곪은 상처는 생살을 찢어서라도 도려내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새살이 찰 테니.”'“그래서 기어코, 저 아이 생살을 도려내겠단 말입니까!”'“걱정 마십시오. 이 아이가 흘린 피눈물만큼, 이 아이에게서 도려낸 생살만큼 내 피와 살을 나눠 주며 사랑할 테니.”'“뭐라구요? 소요는 엄연히 제 아내……!”'“그랬었죠.”'신우는 승주의 말을 단번에 잘라내었다. 더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는 아닙니다. 아직 법적 혼인신고도 되어 있지 않으니 조용히 끝낼 수 있겠군요.”'“잔인하군요. 당신 사랑을 채우고자, 소요에게 이혼녀란 꼬리표를 달겠다는 겁니까?”'“글쎄요, 당신 사랑을 채우고자 소요에게 ‘김승주 아내’라는 꼬리표를 다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만.”'“……!”'승주는 말문이 막혔다. 반박을 하고는 있지만, 저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반박이 얼마나 뻔뻔하고 우스꽝스러운지. '신우는 석진이 내려놓은 봉투를 소요에게로 밀어 주었다. '“상처는 쉬쉬한다고 감춰지거나 나아지는 게 아냐. 널 상처 입히는 건 싫지만, 직시하지 않으면 안 돼.”'“알아요.”'“직시하지 않으면 넌 그 집으로 돌아가 말도 안 되는 결혼놀이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 그 모습을 볼 바엔 차라리 널 상처 입히는 게 나아. 지금은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반드시 넌 네 두 발로 버티고 설 테니까. 그렇지?”'소요는 대답 대신 봉투를 집어 들었다. 신우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소요야…….”'소요는 비참한 표정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승주를 쳐다보았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승주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있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심장이 딱딱하게 굳어 버린 것만 같았다.'“미안하다…….”'“사과하지 마. 받아 줄 수 없는 마음을 들어야 하는 건 날 더 괴롭히는 거니까.”'차분하지만 냉정한 소요의 목소리에 승주는 가슴이 저렸다. 소요를 좋아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중략)''“하나만 더 물을게요.”'맑은 소요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이내 감정을 다스린 듯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나 이제 그쪽 아내, 아닌 거죠?”'“아…….”'승주는 절망했다. 한순간에 엄청 멀어진 듯한 거리감. 그것이 비록 제가 자초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순간만은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지켜보던 소요의 영원한 이별 같은 말에 그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절망을 맛보아야만 했다. '“하고 싶은 말…… 없어? 욕이라도 좋아. 그렇게 담담한 표정으로 다신 안 볼 것처럼…….”'쥐어짜듯 용기를 내어 승주가 입을 열었다. 소요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뿐이에요. 이제 그쪽, 내 남편 아니라는 말.”'신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요에게 길을 터 주었다.'“먼저 차에 가 있어.”'그는 차 키를 석진에게 내밀며 소요를 부탁했다. 소요가 자리를 뜨자 망연하게 잔상을 뒤좇는 승주의 시선을 그가 가로막고 섰다. 한 손으로는 탁자를 짚은 채 고개를 숙여 엄포를 주듯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저 아인 아직 날 사랑하지 않아. 그러니 불륜이니 하는 더러운 말로 저 아일 더럽히지 마라, 네게 조금이라도 양심이 남아 있다면.”'신우는 소요가 서류를 보느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해숙에게 줄 예물 보석 세트가 든 종이가방을 승주에게로 밀었다.'“이건 소요가 당신에게 주는 위자료라고 해두지.”'“어째서…….”'승주는 어째서 제가 위자료를 받아야 하냐고 따지려고 했지만, 말이 쉽게 뻗어 나와 주지 않았다. '“소요가 널 버린 거니까.”'신우는 거침없었다. 그는 몸을 곳곳이 세우고 멍한 시선으로 올려다보는 승주를 내려다보았다.'“잘 들어. 지금부터 나, 당신 아내와 연애할 거다.”'“……!”'“당신 아내와 연애할 거라고, 내가.”'신우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슬쩍 어리었다. '“정정하지, 이제 당신 아내가 아니니까. 이소요, 지금부터 내 여자로 만들 거다. 너 따위의 아내로 산 3일 간의 기억을 깡그리 지워 버리고, 누구보다 빛나는 여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할 거다,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