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2006 년 2월 7일. 18 : 30''깔끔한 인상의 남자였다. 그 외에 도담이 그에게 느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는 제법 길어진 해로 푸른빛을 내고 있는 초저녁의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는 것도 잠시 남자의 목소리에 눈을 내리깔고 찻잔을 들여다보았다.'“그림을 그리신다고 들었습니다.”'“네, 잘 그리진 못해요.”'어색한 자리, 어색한 말투, 커피 잔을 각자의 앞에 두고 서로에 대해 아니 도담에 대해 물어보는 이 남자는 지금 도담과 선을 보는 남자다. 도담은 자신의 생일날 선이라는 걸 보고 있었다.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자신에겐 이 상황을 뿌리칠 힘이 없었고 그렇다고, 이 상황을 즐길 줄 아는 마음가짐도 갖고 있지 않았다.'“원래 그렇게 말씀이 없으신가요?”'이 자리가 불편한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잠시도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창밖을 보거나 찻잔을 내려다보는 게 전부인 여자의 시선을 자신을 향하게 붙잡아 놓고 심은 심정에서 우러나온 질문이었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무시하는 여자의 행동이 불쾌했으며 더 이상 두고 볼 인내심이 남아있지 않았다. 보고 배운 거라곤 늘 포커페이스와 매너였다. 오늘 그 두 가지를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아니,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이 두 가지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네? 아니요, 특별히 할 말이 없네요.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주겠죠.”'앞에 앉은 이 여자, 비단결처럼 고운 머리칼이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아름답게 빛난다. 유난히 까만 눈동자가 나를 사로잡는다. 오뚝한 콧날과 핑크빛이 도는 입술, 굉장한 미인이다. 하지만 웃음이 없어서 그런지 차가워 보이는 것은 물론 도도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그녀와 달리 너무나도 부드러운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이 여자가 내 부인이 된다는 생각을 하자 미소가 따라왔다. 정작 이 여자의 마음도 모르면서 김칫국부터 들이키는 꼴이란 것을 알면서도 얼굴에 걸린 미소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왜 웃으시나요?”'“아, 잠시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저녁 식사 하셔야죠.”'“죄송해요, 제가 낮부터 체기가 있어서요. 오늘은 이만 헤어짐이 어떠신지.”'헤어지자는 말에 반듯한 얼굴에 주름이 가기 시작했다. 여자의 기분이 지금 어떠한지 가늠해 보려 했지만, 그 어떠한 틈도 주지 않아 괜히 조급함이 올라오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자신이 싫으면 싫다고 표현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정작 싫어하는 표정을 지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해 놓지도 않고서 대뜸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은 그 생각을 생각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여자와 엮이고 싶다.'“흠. 제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그런 게 아니에요. 물론, 제 어머니의 강요에 나오긴 했지만 진해랑씨, 좋은 분 같아요.”'“전 박도담씨가 꽤 마음에 듭니다.”'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커피 잔을 입술에 가져간다. 커피 잔을 내려놓고 무언가 할 말이 있는지 자신을 바라보는 까만 눈동자에 해랑은 잠시 숨을 들이마셔야 했다. 아마도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가 자신의 심장을 쥐락펴락 할 것만 같은 예감에 살짝 미간이 좁혀졌지만, 이제 안착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지 그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에 얼른 좁혔던 미간을 폈다.'“저, 오늘 처음 만나 이런 부탁 드려서 죄송한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