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주국(北洲國)에 대해 이야기해 주마.'우리가 사는 천오국(天吳國)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사방으로 자리 잡은 4개의 나라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동으로는 한 면이 바다와 면해 있는 동주국(東洲國), 서쪽으로는 대륙의 바깥으로 인간이 나갈 수 없는 요마의 땅으로 이어진 서주국(西洲國), 겨울이 없이 여름만 이어진다는 남주국(南洲國). 그리고 무한의 땅으로 이어진 북의 북주국(北洲國).'그중 북주국은 천오국의 광활한 북쪽을 차지한 나라란다. 겨울이 무척이나 길고 서늘한 봄과 덥지 않은 짧은 여름이 이어지고 겨울이면 굶주린 요마들이나 짐승들이 먹을 것을 찾아 민가나 마을로 내려오는, 풍족하지 않은 나라지.'북주국에 대해 알기 전에, 천오국을 설명해야겠구나.'천오국에는 곤륜(崑崙)이라 불리는 신성한 선인들의 땅이 있고 곤륜과 이 땅 전부를 다스리는 천제(天帝)라는 인간들의 황제는 그 권리를 하늘의 선인들로부터 위임받았다고 하지. 그래서 동서남북의 4국과 그 나라의 왕들은 전부 천오국의 천제의 권위 아래 복속되고 그의 뜻을 따라야 한단다. 북주국의 왕도 마찬가지다.'이 다섯 나라가 어떻게 생겼냐고? 흠흠, 그래. 지금 말해주마. '아주 먼 옛날, 하늘과 땅과 지하세계가 이어지지 않은 시절이 있었지. 하늘의 선인들은 홀로 유유자적했고 지하세계의 죽은 자들은 그들만의 세상을 이루며 서로의 소통 없이 단절되어 살아갔단다. 하지만 인간들이 존재했던 이 땅, 지상세계는 혼돈을 이루고 있었지.'당시 이 땅을 지배하던 동서남북의 네 사신들, 백호와 주작과 현무와 청룡은 인간과 짐승들을 사냥하며 미쳐 날뛰었단다. 그래서 지상은 사신들이 물어뜯어버린 붉은 피로 사시사철 내내 물들어 있었지. 사신들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죽이고 서로 강한 힘을 갖고 강자가 되기 위해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었어. '결국 지하세계에는 지상에서 도망쳐 오거나 죽은 자들이 넘쳐났단다. 그 사람들이나 영혼이 너무 많아서 결국 지하세계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하늘에 도움을 요청했단다. 혼돈의 시대였다. 모른 척하던 선인들조차 자신들을 공양할 모든 인간들을 잃을까 두려워하여 결국 네 마리의 수호신들을 제압하기 위해 다섯 마리의 용들을 내려 보내기로 결정했지.'그리고 다섯 마리의 용들과 지상의 지배자 네 수호신들은 아주 긴 전쟁을 벌이게 되었단다. 승리자는 다섯 마리의 용들이었지만 힘을 너무 써버린 탓에 네 수호신들을 완전히 죽일 수도 없었고 하늘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되었지. 그래서 용들은 자신들의 강한 피와 신성한 비늘이 달린 자신들의 몸체를 이용해 사신들을 봉인하기로 했다. '그렇게 신들과 용들의 전쟁은 막을 내렸단다. '한데 육체를 잃은 용들은 어떻게 되었냐고? 하늘로 돌아갔느냐고?'아니다. 육체를 잃었기에 돌아갈 수 없었지. 그러나 영혼은 남았고 죽지도 않았어. 용들은 보이는 것과는 다른 아주 강한 하늘의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들은 인간이 되어 인간의 몸을 빌려 새롭게 현신하고 지상에 남아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지혜를 나눠 주기로 했단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들의 왕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억누른 사신의 땅에 자리를 잡아 사람들을 불러 모으며 나라를 세우게 되었지.'그리하여 동에는 풍룡(風龍)이, 서쪽에는 지룡(地龍)이, 남에는 수룡(水龍)이, 북에는 화룡(火龍)이 자리를 잡았단다. 그리고 봉인된 네 수호신들을 억누르기 위해 가장 신성한 중앙지에 천룡(天龍)이 자리를 잡았다. 이 천룡은 하늘의 의지를 대변하는 자이기도 했지. 그는 네 마리의 용들과 자신의 뜻을 하늘로 전달했고, 또 하늘은 그에게 의지를 내려 보내어 지상에 하늘의 뜻을 전달하게 했단다. 그래서 그 천룡의 지배가 미치는 곳에 신성한 선인들의 땅인 곤륜이 자리를 잡게 된 거란다.'그렇게 용들이 변해 인간이 된 자를 용인(龍人)이라 하여 숭상했지. 그들과 그들의 피를 이어받은 자손들은 모두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단다.'그 다섯 마리의 용들이 세운 나라가 지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천오국과 사방에 자리한 동서남북의 네 나라란다. '얼마나 오래전의 일인고 하니, 이것이 벌써 천 년 전. 아주 까마득한 시절의 일이지. '천 년이 지난 지금은 그 용인의 피를 이은 왕족 대부분이 죽고 용인의 피는 희석되어 거의 이어지지 않았단다. 다만, 북주국은 예외였지. 그들은 용의 피를 이은 자들끼리만 혼인하여 그 강한 피를 이어 오고 또 이어 왔지. 그래, 용인은 보통 인간이 아닌 신비한 힘을 지닌 자들이란다.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 않니?'화룡(火龍)은 불의 기운을 가진 용이다. 하지만 그 불같은 성정을 내기 전, 그들은 아주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지. 사려 깊고 현명한 그런 성격을 지니고 있단다. 그래서 화를 내거나 힘을 발휘하기 전까지는 머리와 눈동자 모두 아름다운 푸른 광채를 띠고 있단다.'그래, 북주국의 왕족들은 짙은 녹발과 아름다운 녹안의 소유자들이지.'그들은 화룡의 재래들이니 말이다.''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인간이 아닌 요수(妖獸)였다. 8척이나 될 법한 커다란 덩치에 오색의 깃털을 단 요수는 두 개의 커다란 얼굴을 갖고 있었다. 요수의 발치 아래에선 자그마한 아이가 검은 두 눈을 반짝인다.'“그럼 그 왕들은 지금도 용으로 변할 수 있어?”'아이가 어이없는 질문을 던지자 신령(神靈)이라 불리는 요수의 두 얼굴이 묘하게 다른 표정을 지었다. 오른쪽 얼굴은 낮은 한숨을 쉬었으며 왼쪽 얼굴은 눈을 찔끔 감았다.'-용들이 이 지상에 내려온 건 아주 오래전의 일이지. 천 년도 전의 일이니까, 지금 그 피를 이은 왕들은 보통의 인간들과 똑같단다.'“생긴 것도 똑같아?”'-그래. 반요인(半妖人)들처럼.'반요인이란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는 기분이 나빠졌는지 옹송그리며 주저앉았다. '하늘과 지상, 지하를 통틀어 가장 천한 생명이라 일컬어지는 것이 바로 반요인이라 불리는 존재들이었다. 인간은 인간이되, 가장 천하고 강한 힘을 지녀 절대 평범한 인간이 될 수 없는 괴물. 그들은 죽은 자들이나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발하는 괴상한 힘, 요력이나 마력을 지니어 인간을 홀리며 사람을 잡아먹는 짐승이라 알려져 있다. 또한 신령의 눈앞에 앉아 있는 계집아이는 놀랍게도 신령이 본 반요인들 중 가장 큰 힘을 가진 존재이며 그가 본 반요인들 중 가장 어리고 약한 생물이기도 했다.'아이는 그 힘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했고 자신이 반요인이란 것도 자주 까먹었다. 자신이 가진 힘이 얼마나 강대한지, 그 힘을 어떻게 쓰는지 자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이가 가진 힘이 너무 강한지라 그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지 없을지 신령조차 감히 장담할 수 없었다.'그 아이는 지금 천 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가늠하기 위해 손가락을 꼽아댈 뿐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이라는 것만 이해했다.'이제 아이는 고작 9살이었다.'“그럼 이 세상에 용은 없는 거네. 정말, 사국의 왕족들과 천오국의 황족들은 모두 보통 사람이랑 똑같은 거야?”'-으음, 조금 다를 수는 있겠지.'“어떻게?”'-북주국의 왕족들은 확실히 다르지. 아까도 말했다. 용의 피를 제일 진하게 가진 왕족들이니까, 그들은 폐쇄적으로 혈통을 지켜왔고 그래서 겉모습에서조차 차별화되었다고 말하지. 하지만 북주국 사람들의 경우엔 특이한 눈동자와 독특한 머리색을 지니기 마련이니까.'“그건 또 왜?”'-그야 북주에는 먼 옛날 서방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토착화되어 피가 섞였기 때문이지.'“반요인들처럼 머리색과 눈동자가 특이하다는 뭐 그런 거야?”'-비슷하지.'“북주국 이야기를 해주세요, 신령님.”'신령은 아이의 보챔에 두 개의 얼굴로 아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이의 눈은 뒷이야기를 기대하며 잔뜩 반짝거렸다.'-그것보다 린, 넌 뭘 하고 돌아온 거냐?'신령이 갑자기 화제를 바꾸어 기형적으로 긴 팔을 꺼내어 린의 이마를 가볍게 눌렀다. 신령 나름대로의 화제를 바꾸기 위한 행동이었다.'잡초처럼 강하게 자라라는 뜻에서 린의 조부가 지어 준 골풀 린(藺)이란 이름은 천방지축의 아이와 잘 어울렸다. 그만큼 아이는 장난이 심했고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잡초처럼 튼튼하게 자라는 건 좋았지만 흙 위에서 뒹구는 것을 너무 좋아해 아이의 몰골은 나날이 엉망이 되어 갔다. 그날 아침만 해도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한 모습이었는데 오후가 된 지금은 머리칼은 쥐어뜯긴 듯했고 옷은 마구 휘질러져 온몸이 흙투성이였다.'-장난은 그만 치고 돌아다니라고 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