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조용한 사무실에는 종이 위에 만년필 휘갈기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오후의 햇살이 큰 창을 통해 사무실 깊숙이까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서류철을 바라보던 강윤의 시선이 몇 초를 견디지 못하고 자꾸 손목을 감싸고 있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꽉 다문 입매가 느슨하게 풀리고 눈가가 부드럽게 변하는 찰나, 시계는 정확하게 시침과 분침으로 퇴근 시간을 가리켰다. 책상 한쪽에 수북하게 쌓여있던 서류철은 이미 처리가 된 듯 반대쪽에 차곡차곡 정리가 되었다.'강윤은 마지막으로 사인을 한 서류를 정리된 서류들 위에 올려놓고 팔을 한껏 뻗어 기지개를 켰다. 책상에만 묶여 있던 경직된 근육이 우두둑 풀렸다. 잠시 잊었던 듯 강윤이 급하게 손을 내려 책상 서랍을 열었고 넣어뒀던 물건을 꺼내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곱게 포장이 된 사각의 물건은 그의 표정을 환하게 만들었다. 오늘을 위해 일주일 전부터 준비를 했던 것. 특별한 날을 위한 물건을 강윤은 책상 위에 올려놓고 시선을 떼지 않았다.'혜정이 그의 집으로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아직은 서로에 대해 낯선 부분도 있었지만 맞춰가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맞춰가는 부분조차 그에게는 행복한 일과일 뿐이었다.'혹시 너무 빠른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주문해 놓았던 반지를 찾았다. 결혼, 그리고 프러포즈! 혜정에게 어떤 식으로 프러포즈를 해야 할까 요 며칠 고민을 했었다. '결국 그의 식대로 하자는 생각으로 퇴근을 하기 위해 강윤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많은 남자들이 하는 이벤트도 생각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무수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은 반지를 건네주며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보석을 보는 눈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처음 보자마자 혜정에게 어울린다 생각한 반지를 선택해 미리 주문해 두었고 드디어 오늘 손수 찾아왔다. '강윤은 책상 위에 늘어져 있는 서류들을 한곳으로 치우며 옷걸이에 걸려있던 양복을 팔에 걸쳤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포장된 상자를 들어 안주머니에 소중히 넣었다.'자꾸만 손이 양복 위를 쓸었고, 그럴수록 강윤의 입가는 더욱 미소로 크게 늘어졌다. 안주머니에 들어있는 반지 케이스가 유난히 무게감을 자랑하고 있다'“지금 퇴근합니다.”'인터폰을 누르며 빠르게 말했다. 비서실에 미리 얘기를 했으니 차는 호텔 로비에 있을 것이다. '강윤은 서류 가방을 들고 이사실을 나왔다. 그가 이사실로 통하는 비서실로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퇴근하세요. 그리고 결재된 서류 각 과로 보내주시고요.”'“알겠습니다. 안녕히 들어가세요. 이사님.”'인사를 받으며 퇴근을 하는 강윤의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졌다. 호텔의 리모델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때임에도 요즘 부쩍 퇴근 시간을 칼처럼 지키는 강윤의 모습은 많은 직원들에게 주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