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혁의 눈은 여전히 그녀 함서진에게 머물러 있었다.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설혜리의 모습을 죽일 듯이 째려보며. 또 무슨 말로 그녀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지 보지 않아도 뻔했다. 아마 그녀는 배우란 사람들이 모두 그런 인간들인가 보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예전의 그가 그러했고 오늘 설혜리가 또 그러했기 때문이었다.'휑하니 걸어가 버리는 혜리를 보니 그녀가 하고자 하던 의도대로 일이 풀리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하긴 함서진을 상대로 어쭙잖은 여배우 대접을 받으려고 했던 혜리의 계산 착오일 것이었다. 그녀가 누구던가? 거센 남자들의 존경을 받는 자랑스러운 해군의 씰 부대의 중대장이 아닌가?'“오랜만이군요.”'“예? 아, 차준혁 씨.”'“아, 차준혁 씨? 그게 전분가요?”'“반가워요. 영화 촬영장에서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무슨?”'“함 대위는 원래 그렇습니까?”'“똑바로 말을 해 보세요. 내가 차준혁 씨에게 무슨 실수라도 했나요?”'“어떻게 키스까지 한 남자에게 17주 동안 연락 한번 하지 않을 수 있는지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한 번도 그가 자신의 연락을 기다렸을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기에 그녀는 그의 말들이 어색하기만 했다. 차준혁이라는 남자가 키스 한 번에 큰 의미를 두었다는 것 자체가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아마도 오랜만에 만나서 적절한 접대성 멘트를 날려 준 것이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웃으며 넘겼다.'“글쎄요. 난 그다지 감명 깊었던 키스가 아니라서 잊고 있었는데. 설마 차준혁 씨는 그 키스에 대단한 의미라도 부여한 것은 아니죠? 에이, 하긴 이렇게 묻는 자체가 우스운 말이겠네요. 대스타인 차준혁 씨에게 여자와의 키스라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을 텐데.”'“그런데 어쩌죠? 물론 늘 있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날의 키스는 좀 오래 기억되던걸요. 군복 입은 여자 장교와 그렇게 진한 키스를 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 그것도 부대 안에서 말입니다. 남자들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그런 장소에서의 경험은 정말 짜릿한 것이더군요.”'겨울이라 조금 하얘진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과 준혁이 돌아선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서진은 왜 자신이 그의 말에 열이 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예상할 수 있었던 차준혁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녀 자신이 예상했던 그의 모습에서 그렇게 많이 벗어나지 않고 그대로인 그를 보는 것이 괜히 짜증스럽고 화가 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