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가을.''키 작은 DJ가 화려한 손놀림으로 요술을 부렸다. 사이키가 총천연색으로 정신없이 돌며 몸을 흔드는 아이들을 흥분으로 내몰았다. 사춘기에 내몰린 아이들은 엄청난 스피드로 쌍을 이루거나 줄을 서서 내달리고 있었다. '[런던 나이트! 아, 아아, 아, 아아, 게빈 투나잇…….]'스피커에서 쏟아지는 짜릿한 멜로디에 태영의 심장이 춤을 추었다. 무거운 롤러를 끈조차 조이지 않고 대충 발만 밀어 넣었다. 마리는 아직 준비가 끝나지 않았지만, 태영의 두 다리는 달리고 싶어서 벌써부터 들썩였다. '“왔어?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지금 초읽기 상태라고!”'“관심 없어.”'“하지만 네가 있어야 한다고! 알잖아?”'“난 롤러 타러 오는 거지, 니네 패거리 따위 관심 없어. 가자.”'“오케이!”'집어넣기만 한 발에 롤러가 헐떡거리는 데도 태영은 바람처럼 빠르다. 그 뒤를 마리가 찰떡같이 따라붙었다. 태영을 보고 한 걸음에 달려 왔건만. '‘하여간…….’ '수진은 더 이상 조를 순 없었다. 이미 태영과 마리는 중앙으로 달려가 인파에 묻혀 사라졌다. 하지만 수많은 머리통 사이로 유독 눈에 띄는 마스크였다. 적당한 길이의 가느다란 머리칼이 얼굴에 착 달라붙어 가득이나 작은 얼굴을 더욱 작아 보이게 만들었다. 커다랗고 까만 눈동자는 백설 공주처럼 흰 피부에 두드러지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일단의 사람들을 대충 한 번 훑어보자, 정신없이 달리는 아이들 속에서 한눈에 태영이 들어왔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녀는 어쩔 수 없는 미친 존재감이다. '롤러가 구르며 내는 마찰음이 속도의 쾌감을 더했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스피드! '태영은 이 스피드를 너무나 사랑했다. 주말이라 방황하는 십대들이 모조리 모여들어 롤러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하지만 태영과 마리의 속도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때로는 한쪽 발을 들기도 하고, 때로는 옆 사람을 밀어내며, 백스텝으로 요리조리 달리는 그들은 스포츠 묘기를 선보이는 듯 아슬아슬했다. '딱 두 시간, 미친 듯이 타야 한다. 해가 지기 전에 집에 가기 위해서.'' ♥ ♥ ♥ ''매점 옆, 항상 그 자리에서 지훈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료하게 지켜봤다. 스피커가 바로 위에 있어 고막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기가 지훈 일행의 자리였다. 옮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곳이 중앙홀로 달리는 아이들이 가장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 애다! 드디어 오셨군.’ '오직 토요일에만 그 애를 볼 수 있었다. 화장실에서 패싸움이 일어나도, 한껏 꾸민 아이들이 춤을 추는 댄스 타임에도, 그 애의 관심은 오직 빠르게 롤러를 지치는 것뿐이었다. '죽순이도 아니고, 날라리도 아닌 듯 보였다. 하지만 존재감이 어찌나 큰지, 모두가 그 애를 주목했다. 나타나는 순간부터 시선이 집중되는 공기가 느껴졌다. 오늘은 반드시 통성명을 하고 말 테다. '어느새 런던 보이스의 노래가 끝나고 이치현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바뀌었다. 더 이상 빠르게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을 것이다. '‘그 애는 어디 있지?’ '앞머리를 삼지창처럼 세운 일단의 날라리들이 시끌벅적 수선을 피우며 지훈의 앞으로 스쳐지나갔다. 매점에 들어가려는 모양이다. 지훈은 잠시 시선을 내렸다. 그런데 바닥에 멈춰선 날라리들의 롤러가 멈춰져 움직이지 않았다. '“뭐죠?”'‘까아악!’ 까마귀 소리를 내지르며 매점으로 뛰어 들어가 숨는다. 바보집단. 귀찮다. '“야, 네 관심 좀 끌어보려고 알짱거리는데 팬서비스 좀 해 줘라.”'“관심 없어요.”'“짜식, 이거나 마셔.”'철퍼덕, 의자에 앉으며 부장이 탄산음료를 지훈에게 건넸다. '“이제는 토요일만 오기로 작정했냐? 너네 보려고 계집애들이 얼마나 난린지, 아주 귀찮아 죽겠다.”'그러면서 개구지게 지훈을 툭툭 건드렸다. '“자주 와! 그래야 손님 많아지지.”'“공부해야죠.”'그 애가 토요일만 온다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에 다른 날은 올 필요가 없었다.'“너 공부 잘하냐?”'“할 만큼은 해요.”'“부장 아저씨! 헉, 헉, 싸움 났어요. 밖에 표 끊는 데서 여자애들이…….”'“니미…… 계집애들이 조용할 날이 없어. 내가 꼭 가야 되냐, 왜 심해?”'“그 애 있잖아요. 빠른 애. 걔가 다 죽게 생겼어요!”'“뭐? 이런…….”'빠른 애가 다 죽게 생겼다는 말에 부장이 벌떡 일어났지만 부장보다 한 수 빨리 지훈이 달리고 있었다. 부장이 ‘어라?’ 하는 사이, 지훈의 일행이 줄줄이 사탕처럼 쏜살같이 그의 뒤를 쫓았다.'' ♥ ♥ ♥ ''싸움 구경, 불구경이 구경 중에 제일 재미있다더니, 지훈은 원을 그리며 새카맣게 모여든 사람들에 깜짝 놀랐다. 지훈은 어렵사리 안으로 파고들었다. 싸움의 원인은 평소 계국대장공주, 보다시리처럼 휘하의 죽순이들을 무더기로 몰고 다니는 날라리였다. 질투심도 남달라 지훈과 무심코 눈길이라도 부딪쳤다가는 그날로 그 여자애는 사요나라였다. 보다시리가 그 애의 머리칼을 손아귀에 쥐고 한 번 더 휘어감아 절대 벗어나지 못하도록 단단히 움켜잡고 걸쭉한 육두문자로 일장 연설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 저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를!’ '지훈의 눈에 불이 붙었다. 그때, 또 다른 죽순이가 그 애의 가슴팍으로 하이 킥을 날리려, 다리를 들었다. 지훈은 앞, 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안 돼!”'지훈이 죽순이의 발을 잡아 벽으로 밀었다. 구경꾼들은 난데없는 초절정 미소년의 출현에 더욱 흥미를 느끼고 웅성거렸다. 넘어진 죽순이가 삼지창 앞머리를 매만지며 벌떡, 일어났다.'“에이, 쓰벌, 뭐야?”'죽순이는 후미진 지하의 매표소 앞을, 필립스 다이아몬드 LED전구보다 환하게 비춰 주는 지훈의 비주얼에 망연자실, 입을 쩍 벌렸다. '스스로 빛을 뿜어대는 지훈의 친구들이 때마침 나타나 그의 주변으로 둘러섰다. 그렇게 다섯 명의 남자가 모여서자 자체 발광, 황홀한 비주얼에 구경꾼들의 입에서 ‘오오!’ 흥미로운 함성이 터져 나왔다. '순간, 불륜 드라마 주인공처럼 초코 우유를 뒤집어쓰고 애달프게 쓰러져 있던 마리가 발딱 일어서며 소리 쳤다.'“안 나가겠다는데 굳이 우리를 끌고 나가려고 하잖아요.”'“쉬벌, 미췬! 조용히 안 해!”'“꺄악!”'죽순이의 험악한 기세에 놀란 마리가 초코 우유가 묻은 손으로 깨끗했던 얼굴을 감싸자 얼굴이 볼썽사납게 더러워졌다. 이때, 태영이 자신의 머리털을 잡고 있던 보다시리의 배를 롤러를 벗어 콱 찍었다. '“악!”'복통으로 보다시리의 손아귀 힘이 약해진 틈을 이용해 태영은 그녀의 팔뚝을 오지게 물어뜯었다.'“우아악!”'걸쭉한 비명이 터졌다. 태영은 빠득 소리가 나도록 아구에 힘을 주면서 보다시리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실눈을 떴다. '“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