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승아는 유리창에 얼굴을 바싹 붙이고 정신없이 비행기 바깥을 구경했다. 장난감처럼 작은 섬 위에 흰 구름이 솜처럼 잔뜩 뭉쳐서 떠 있었다. 어떻게 섬 바로 위에 만들어 놓은 것처럼 구름이 떠 있을 수 있는지 신기했다.'공항에서 간신히 마지막 남은 표를 구입해서 창가 표를 얻을 수 없었던 승아는 누군지 모르지만 자신의 옆자리 승객이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은 것을 고맙게 생각했다. 첫 비행에 이런 행운이라니 좋은 조짐이다. '승아는 28살이라는 나이가 될 때까지 한 번도 비행기를 타 본적이 없었다. 지금 타고 있는 비행기가 승아가 탄 첫 비행기였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어떻게 남길까 고민하던 승아는 자신의 엠피쓰리가 녹음기 겸용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한참동안 녹음 방법을 생각하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녹음기능을 켤 수 있었다. 승아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아아. 첫 비행기를 탄 느낌. 하늘을 나는 기분은 메스껍고 흔들린다. 창가에 비친 구름이 생각만큼 예쁘지 않다. 하지만 천국에 온 기분을 조금은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아직은 천국이 그립지 않다.”'창에 비친 희미한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깨까지 오는 푸석한 머리칼에 갈색 뿔테 안경을 쓴 평범한 얼굴, 뺨이 홀쭉하고 몸은 대꼬챙이처럼 말랐다. 그녀의 얼굴에서 그나마 봐줄 만한 것은 완벽한 달걀형의 작은 얼굴과 반짝반짝 빛나는 영리한 눈동자뿐이었다. 163의 키인데도 마르고 몸집이 작아서 그런지 창에 비친 모습이 꼭 초등학생처럼 보였다. '이상할 정도로 늙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어쩌면 그렇게 하나도 변하지 않을 수 있냐고 놀라곤 했다. 너만 보면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 했다. 아마도 승아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은 그녀의 생체 시계가 멈춰버리는 마법이 일어났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마법일까? 아니면 저주일까?’'착륙을 알리는 기내방송이 들리고 비행기가 제주 공항에 착륙 했다. 다른 승객들과 함께 천천히 비행기를 벗어나며 승아는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실내에서 벗어나 계단을 내려가는 기분이 아주 상쾌했다. 약간 어지럽지만 컨디션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는 것은 자살 행위라고 했던 주치의의 무서운 얼굴을 떠올리며 승아는 자신의 뇌혈관은 정말 신축성이 좋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기적의 인간이 못해낼 일이 뭐가 있겠어?’'처음 병의 진단을 받았을 때도 그 의사는 굳은 얼굴로 일 년을 넘길 수 없을 거라고 했었다. 그 이후로 10년이 지났지만 승아는 살아남았다. 기적적인 일이었다. 그녀의 사례가 논문에 실리고 강연 제의도 몇 번 받았었다. 한 때 르포기자가 쫓아다니기도 했었다. 완치가 아니라 그냥 상태를 유지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데 남보다 오래 살았다는 것으로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 이상했다. 사형수가 사형될 때까지 길면 10년은 걸린다는데 자신의 10년은 사형수의 십년과도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승아는 자신이 탄 비행기는 아니지만 눈에 비치는 비행기를 디카에 열심히 담았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연거푸 사진을 찍어대는 승아에게 인심 좋게 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