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버린 여자

“아아…….”'“이런 당신 모습이 난 너무 좋아!”'“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데요?”'“……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당신의 진짜 모습처럼 보여!”'“……말은 그만하고 집중 좀 해요! 우린 목적이 있잖아요?”'“오호! 알았다고!”'그녀의 온몸에 나의 입술 자국을 남기며 난 그녀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그녀의 알몸은 나를 꿈꾸게 했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그녀의 온몸이 나를 미치게 했다. 처음 그녀를 안은 날. 주뼛거리며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오던 그녀를 안고부터 난 이상하게 그녀를 보기만 해도 끓어오르는 욕망에 나를 통제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항상 너무나 이성적인 모습으로 나를 미치게 만들곤 했다. 그런 그녀이기에 내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인 침대에서 만큼은 절대 그녀를 쉽게 놓아 주고 싶지 않았다. 내 몸 아래서 타오르는 그녀를 보는 순간이 내게 유일한 기쁨이었고 삶의 낙이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였다. 한 달에 3일 그녀가 나의 지배를 받는 유일한 순간이 바로 지금뿐이라는 것을 나도 그녀도 알고 있다. 그녀가 나를 택한 이유가 비로 지금의 내 모습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내게 육체적인 관계를 요구했고 난 그녀의 그 요구조건을 받아 들여 계약을 맺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난 그녀라는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 그녀의 몸도 마음도 전부 다 가지고 싶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내게 마음 한 자락 나누어 줄 태세가 아니다. 그녀의 귓불을 혀로 애무하며 난 그녀에게 속삭였다.'“당신은 불같은 여자야! 그런 당신이 왜 이런 방법으로 인생을 허비하는지 난 알 수가 없어! 얼마든지 사랑받으면 살아갈 수 있는데도 이런 종족보존의 본능에 충실한 것 같은 행동을 하면서까지 후계자를 갖기를 바라는지…….”'“말은…… 말은 그만하라고 했을 텐데요! 당신은 계약조건에 충실하면…… 아! 그래요. 그러면 돼요.”'“충실하게 씨내리의 역할을 다하라고? 예, 알겠습니다.”'그녀에게 늘 하는 말이었지만 내가 그녀를 이해할 수 없는 한 어쩌면 우리 둘의 관계가 지속 될수록 이런 얘기는 계속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난 언제나 그렇듯이 그녀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붓고 나서야 침대에 편안히 누워 담배 한 개비를 피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최대한 빨리 나의 흔적을 지우고 싶어 하는 것처럼 우리의 관계가 끝나자마자 욕실로 달려갔다. 그녀는 조금 지나면 말간 얼굴로 다시 욕실 문을 열고 나올 것이다. 그리고 곱게 단장을 하고 먼저 가겠다며 이곳을 나갈 것이다. 지난 3일 동안 내가 그녀를 안고 뒹굴던 이 침대는 쳐다보지도 않고…… 그리고 내 얼굴도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항상 똑같은 모습이다. 내 아내라고 불리는 저 여자, 한다진. 늘 반듯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여자. 그러나 결코 내게 마음 한 자락 내어 주지 않는 얼음 같은 여자.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런 그녀가 내 마음에 들어와 버렸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운 날에는 내 마음은 기쁨으로 넘치고 그녀의 얼굴에 짜증이 묻어나는 날에는 내 마음은 지옥으로 곤두박질했다. 그녀와 소위 말하는 계약결혼이란 것을 한 지 벌써 1년이 흘렀건만 그녀와 나의 거리는 항상 일정했다. 더 다가오지도 않고 더 도망가지도 않는. 아무리 계약 결혼이긴 했지만 그래도 부부라는 이름으로 묶여 지낸 시간동안 그녀는 자신의 곁을 내어 주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이 원할 때 내게 와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고 다시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오늘도 그녀는 내게 온 목적을 달성했고 항상 그래 왔듯이 저렇게 곱게 단장을 하고는 이 방을 나갈 것이 틀림없다. 물론 내게서 그녀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날에는 영원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임을 나도 그녀도 알고 있다. 그녀와 소위 결혼이라는 것을 하던 날, 내가 사인한 그 계약서의 내용처럼…….'''처음, 그녀를 만난 날을 잊을 수가 없다. 하얀 블라우스가 언뜻 내비치는 은회색 투피스를 입고 소파에 앉아 있던 그녀는 영락없는 총수의 비서였다. 그녀가 세계적인 기업인 엔젤의 총수라고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미팅을 하러 간 몇몇 기업의 회장들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불행히 그녀는 엔젤의 총수였고, 어리석은 우리는 그녀가 총수임을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엔젤로부터의 한국기업 투자 건은 물 건너가고 난 후였다. 총수 비서에게 선심을 얻어 보고자 한 쓸데없는 농담들로 그녀에게 한국기업에 대한 좋지 않은 생각만 잔뜩 심어놓은 후라 더 이상 어떠한 접촉도 불가하다고 판단하고 투숙 중이던 호텔을 체크 아웃하려고 로비에 내려왔을 때 나를 기다린 것은 엔젤의 비서실장이었다. 그녀 못지않게 딱딱해 보이는 모습의 남자 박두현이었다. 그를 따라 간 곳에서 그녀를 다시 보게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난 한다진의 법적인 남편이 되었다. ‘자신의 후계자가 될 아들을 낳을 때까지’ 라는 내가 살아온 30여 년 동안 상상해 보지 못한 조건으로 난 그녀의 남편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 일 년 동안 난 그녀의 남편으로 한 달에 서너 번 그녀 곁에 있게 되었다. 세계적인 그룹인 엔젤이 한국에 본사를 두는 엄청난 경제파급 효과와 함께…….'“우린 또 언제 보게 되지?”'“이젠 적응할 만도 한데…….”'“항상 연락이 오면 뛰어오는 그런 삶이 쉬운 것은 아니지…….”'“머리를 조금 쓰면 그 날짜들이 일정한 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거예요.”'“룰?”'“다음 달에 우리가 만날 날을 미리 계산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군요.”'“숙제 같군!”'“숙제라…… 당신은 내가 준 첫 숙제도 아직 풀지 못한 것 같은데…… 이번에도 풀지 못할 지도 모르겠군요. 먼저 가죠.”'남자와 좀 전까지 참대에서 뒹군 여자가 아닌 너무나 단정한 모습의 엔젤 총수 한다진으로 돌아간 그녀는 나에게 “먼저 가죠.”라는 말 한마디를 던지고는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처음 당신이 나를 본 그날 난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잃어버렸다…….”'또다시 읊어도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법적인 남편이 되어 자신에게 후계자를 낳게 해 달라고 한 그날 내게 던진 말이었다. 왜 많은 사람들 중에 나 강대하여야 하는지를 물었을 때, 난 그날도 그녀의 대답에 답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일 년이 다 되어 가는 오늘까지도 난 알지 못한다. 그녀가 내어준 그 풀지 못한 숙제의 해답을…… 어쩌면 영원히 풀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녀가 말해주지 않는 한. 그렇지만 가끔씩 그녀가 보고 싶을 때면 그 풀리지 않는 숙제가 떠오르곤 했다. 그 말을 하던 그녀가 너무나 아파 보였었기 때문이었다.

미리보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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