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그럼 이번에는 다른 사람에 대해 한번 분석 해봐요. 그럼 아가씨 말이 맞는다고 인정해 줄 테니까.”'이번에는 여자가 팔짱을 끼며 빙긋 웃었다.'“좋아요, 누굴요?”'그가 그녀를 빤히 봤다. '“아가씨요.”'그녀는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눈썹을 올렸다. '“네? 절요?”'여자는 많이 놀랐던지 한동안 입을 헤 벌리며 그를 응시하다가, 갑자기 깔깔 웃기 시작했다. '“아니, 허구한 사람 놔두고, 왜 저를요?”'“분석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 보여서요.”'“복잡? 전 그냥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그것도 빌딩 청소부 일도 감지덕지해 하는, 사는 게 굉장한 단순한 사람일 뿐이에요.”'“아뇨.”'“네?”'“아니라고요, 아가씨는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닙니다.”'여자의 눈썹이 휙 올라갔다.'“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죠?”'“나도 어려서 셜록 호움즈를 꽤 읽었거든요.”'“아하, 그러세요?” '여자가 다시 팔짱을 꼈다. '“그럼 말해 보세요, 제가 왜 그런 부류가 아닌지.”'“우선, 아가씨가 쓰는 말투에서 그게 느껴져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이 쓰는 말투랑은 거리가 있죠. 오히려 책을 많이 읽었거나, 아니면 적어도 대학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이 쓰는 말투라는 느낌이 강해요.”'잠깐이지만 여자의 눈동자가 흔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픽하는 웃음과 함께 사라졌다.'“대졸이라, 그렇게 봐주시니 거참 영광이네요. 하지만 전 고등학교 중퇴자에요. 그것도 뭐 고1 삼 개월도 채 다니지 않고 그만두었으니, 중졸이라고 해야 맞겠죠. 아, 왜 그만두었냐고요? 집이 엄청 가난해서 고등학교 학비가 버거웠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제 자신, 공부가 너무도 싫었거든요. 그래서 미련 없이 학교를 그만두었어요. 흐음, 말하다 보니 그게 바로 어제같이 생각되네요. 그때만 해도 어렸어요.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첫 일 년간은 정말 날아갈 것처럼 좋았으니까요. 에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악착같이 버텨서 고등학교 졸업장정도는 따놓는 건데.”'도우의 눈매가 좁아졌다. 여자는 과거를 헤매는 사람이 으레 그렇듯 읊조리듯 쉼 없이 말했지만, 그녀가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면서 그의 반응을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계산대가 놓인 탁자를 한번 탁 치며 허탈한 듯 웃었다. '“흐음, 신은 참 불공평한 것 같아요. 같은 셜록 호움즈 팬인데, 아가씨는 맞추고 난 틀리다니, 그쵸?”'그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여자가 팔짱을 푸르고 활짝 웃었다. '“아니에요, 아무래도 오늘 제가 운이 좋았나 보죠, 뭐.”'“아무리 그래도요, 참 기분 울적하네요, 처음부터 틀리다니.”'“너무 그렇게 실망하지 마세요. 그래도 머, 전 재미있었으니까.”'“다행입니다. 재미있었다니. 그런데 아직도 전 이해가 가지 않아요.”'“뭐가요?”'“사실 난 아가씨가 고학력자이지만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편의점에서 일하고 또 청소부도 한다고 속으로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거의 확신하고 있었죠. 내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예전에 읽었던 어떤 책 때문이었습니다.”'“무슨 책인데요?”'“무슨 FBI 프로파일러가 쓴 책인데, 그 책에 의하면 사람의 말투로 그 사람의 학력, 출신, 성격 등등을 알 수 있다고 하더군요. 예를 들어, FBI는 유괴범의 전화 목소리를 분석해, 그의 학력, 고향, 성향 등등을 알아내어 잡아낸 적도 있었다고 하더군요.”'“아!” '갑자기 여자가 박수를 치며 반가워했다. '“나도 읽어봤어요, 그 책. 그거 영화 양들의 침묵의 남자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프로파일러, 조운 더글라스가 쓴 책이잖아요. 제목이 뭐더라, 아, 맞다, 마인드 헌터. 맞죠?”'도우는 그녀를 따라 함빡 웃으며, 팔짱을 꼈다. '“봐요, 내 말이 맞았잖아요. 아가씨는 고학력자라고요.”'여자는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두 눈을 느리게 껌뻑거렸다. '“말도 안 돼, 고작 그 책 하나 읽었다구요? 그 책은 저널이나 학술지 같은 게 아니에요, 그냥 서점에 널리고 널린…….”'그가 한 손을 들어, 여자의 말을 막았다.'“잠깐, 말하는데 미안하지만, 지금도 봐요, 방금 아가씨가 말한 저널이나 학술지 같은 용어는 적어도 대학을 다녀야 자연스레 쓸 수 있는 단어에요. 그리고 방금 아가씨가 말한 책은 서점에 널리고 널린 책은 아니었어요. 제가 알기로는 그 책 미국에서는 베스트셀러였지만 한국에서는 잘 팔리지 않아 절판되고 만 책이었어요. 뭐, 최근에 연쇄살인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서점에서 볼 수는 있지만.”'이제 여자는 가장이라도 웃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물먹은 가죽처럼 빳빳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