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보호 받는다는 건
우리의 시선이 홀린 듯이 승원의 손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재킷을 벗고 걷어 올린 셔츠 아래로 보기만 해도 더운 깁스가 되어있었다. 이 와중에 승원은 블랙셔츠 밑으로 보이는 하얀 깁스를 남성미를 부각시키는 패션아이템으로 소화시켰다.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승원을 돌아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의도치 않게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되어 버린 지금, 선글라스에 가려진 눈빛이 불쾌해졌다.
우리는 승원의 손에만 집중한 사람들이 승원을 힐끔거리는 것도, 승원의 상태도 알지 못했다. 문득 승원의 멀쩡한 손에 무심히 들린 재킷이 눈에 띄었다.
“이리 줘요.”
우리는 재킷을 가져와 잘 정리해서 자신의 팔에 걸었다.
“깁스 풀 때까지 손쓰지 마세요, 내가 다 해줄 테니까. 나만 믿으세요.”
“내 손 이렇게 만들 때도 나만 믿으라고 했던 거 같은데.”
헉! 제대로 허를 찔렸다. 우리의 적나라한 표정에 불편했던 승원의 눈빛이 여유로워졌다.
“큼! 한 번 더 믿어 봐요. 잘해 볼게요.”
머쓱하게 웃으며 말하는 우리 때문에 승원이 설핏 웃었다. 포기란 걸 모르는 여자 같다.
“이쪽이에요. 조심조심.”
우리는 이동하는 내내 승원의 깁스한 손이 어딘가에 부딪칠까, 누구에게 스칠까 경계하고 보호했다. 승원은 자신보다 한참 쪼그만 여자가 저보다 큰 자신을 보호한답시고 데리고 다니는 것이 묘하게 웃겼다. 누군가에 보호 받는다는 건, 꽃가루가 코끝에 닿는 것처럼 간지러운 것인 모양이었다. 승원이가 금세 시들어 버릴까 애지중지하던 보랏빛 은방울꽃잎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한마디로는 정의할 수 없지만, 승원은 심장 제일 안쪽 구석에 촛불 하나가 켜진 기분이었다.
우리와 승원이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3층 로비로 나왔을 때, 대기자용 의자가 놓인 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 얘기하면, 웬 중년여성이 일방적으로 성을 내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큰 소리에 사람들이 기웃거리며 모여들었다.
“누가 싸우나 봐요. 정숙해야 할 병원에서 저건 좀 심했다.”
길게 목을 빼고 보는 우리와 달리 승원은 관심이 없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에 우리와 승원은 소란의 현장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어라… 잘못 봤나? 문득 걸음을 멈춘 우리가 소란스러운 상황을 돌아봤다. 우리가 멈추니 승원이도 걸음을 멈췄다. 심각한 얼굴로 집중해서 보는 낌새에 우리의 시선을 쫓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해 안달난 사람처럼 소리치는 중년여성의 화난 뒷모습과 몰려있는 사람들. 승원이 끔찍이도 싫어하는 장면이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 준기가 기다리고 있는 고요하고 평온한 자신의 차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중년여서의 성난 움직임을 피해 그녀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확인하느라 바빴다. 겨우 중년여성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던 상대방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두 눈을 꼭 감고 심장께를 손으로 꼭 누르고 있는 하얗고 여린 인영은 우리도 본 적 있는 모습이었다. 저 모습은 언젠가 승원이를 애가 타게 기다리다가 뛰쳐나가는 바람에 일어날 뻔한 충돌로 말미암아 새론이가 보였던 반응과 같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기 새론이 아니에요? 맞죠?”
진짜 새론이었다. 새론은 뭔가 크게 놀란 듯 보였다. 소리치며 다그치는 중년여성 때문에 겁에 질린 듯도 했다. 무엇보다 그때처럼 심장이 아픈 것 같아서 덜컥 걱정이 됐다.
“가서 좀 말려 봐요.”
“갑시다.”
우리의 물음에 힐끗 확인한 승원은 야멸찼다. 가자는 말과 함께 우리를 앞서나갔다.
“그냥 가면 안 되죠. 애가 곤란한데.”
우리가 다급하게 승원을 돌아보며 손을 잡아 세웠다. 승원은 갑작스레 손에 전해진 온기에 우리의 손이 머문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어쩌라는 건지…. 우리와 눈이 마주 친 순간, 거친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왜 말을 안 해! 너 나 무시하니? 야!”
중년여성이 새론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밀치듯 쳤다. 여린 새론이 힘에 밀려 뒷걸음질 쳤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아줌마! 치지 마세요!”
로비가 울릴 듯한 사자후를 내지르며 우리가 달려갔다. 승원의 비어버린 손바닥에 바람이 부딪쳤다.
새론의 앞을 막아선 우리는 고개 숙인 채 움츠리고 있는 새론이부터 살폈다.
“괜찮니?”
새론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몸은 부르르 떨렸다. 우리는 들고 있던 승원의 재킷을 새론의 어깨에 둘러주며 속삭이듯 말했다.
“걱정하지 마. 오빠도 여기 있어.”
동그래진 눈이 우리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어깨에 둘러진 옷은 승원의 옷이 맞았다. 우리가 안심을 시키듯 웃어주고는 승원이 있는 자리를 가리켰다.
“…어? 어디 갔지?”
미리보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