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북방의 황량한 바람이 노역장으로 끌려가는 노예들의 육신을 칼인 듯 도륙했다. 5월이라고는 하나 북방의 밤은 아직 춥고 매서웠다. 그 잔인한 추위와 배고픔에 노역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어나가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시체를 제대로 묻지도 않았다. 길이며 산에 그냥 버려 까마귀밥이 되고 들짐승들에게 뜯겼다.

그리 죽음을 옆에 달고 겨우 노역장에 도착해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고된 노동과 지키는 군사들의 무자비한 폭력, 추위와 배고픔 속에 죽어나가는 이들이 하루에도 수십은 되었다. 그 시체가 섞어나가는 악취가 밥 냄새보다 더 익숙한 곳. 그곳에서의 하루하루는 죽음으로 직행하는 날들이었다.

호령이 작은 아이를 감싸 안고 병졸들의 채찍을 모두 막아내고 있었다. 열이나 되었을까. 이 어린 아이는 무슨 잘못을 저질러 대역 죄인들이 득실거리는 이 죽음의 땅으로 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아이는 과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꾹 다물린 아이의 입술이 과거를 모두 잊은 그의 가슴 같았다.

여인도 있고 계집아이도 있다. 그들에게도 병사들의 난폭함은 다르지 않았다. 아니 계집들에겐 더 살벌한 곳이 그곳이었다. 열이 채 되지 않은 아이까지 놈들에게 끌려가 겁간을 당한다. 짐승 같은 놈들. 그놈들의 더러운 욕망에 짓이겨져 신음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은심이 떠올랐다.

그 아이는 어찌 지내고 있는지. 김주태 그자의 더러운 욕망에 찢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움에 목이 메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사내아이가 우걱우걱 주먹밥을 씹어 넘겼다. 한 덩이를 다 먹어치우고도 아이는 배가 부르지 않다. 호령이 남은 주먹밥을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어른도 참기 힘든 허기를 이 작은 아이가 어찌 견딜까. 안쓰럽다.

“저런 물색없는 놈을 보았나? 그리 안 먹고 그리 처 맞고 그리 일만 하다가 저놈보다 네놈이 먼저 뒤진다.”

누군가가 그를 타박했다. 호령은 말없이 구석에 가 앉았다. 쥐 죽은 듯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서 이리 죽을 수는 없다. 어떻게 해서든 이 지옥을 빠져나가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조심조심 주변을 둘러보는 그의 눈동자엔 삶의 의지가 가득 박혀 있었다.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은심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의 목적은 오직 그것이었다. 애정하는 은심에게로 돌아가는 것. 그러기 전에는 절대 죽을 수 없었다.

잠시의 휴식이 칼같이 끊어졌다. 노예들은 또 무거운 돌과 흙을 나르느라 허리가 끊어졌다. 그 고된 노동을 이기지 못한 이들이 오늘도 삶과 작별한다. 붉게 넘어가는 석양이 혼을 데려간다.

밤이 찾아오고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져 손발이 얼어붙을 지경이 되어도 노역은 멈추지 않았다. 그 힘겨움에서 놓여나는 길은 오직 하나, 죽음뿐이다. 그러나 누구도 섣불리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다. 더러는 타의로, 더러는 자의로 악착같이 버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부여잡으며 눈을 감고 다시 눈을 뜨는 곳.

호령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살아나가야 한다. 살아나갈 수 있다. 그리해야만 한다. 그리 악착같이 희망을 붙잡았다. 북방에 칼날 같은 바람이 가슴을 벤다.

“무명이 그곳에 없다니, 그것이 대체 무슨 말인가? 그 아이가 벌써 죽기라도 했단 말인가?”

동준을 바라보는 사또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공아도 현기증을 느끼며 휘청했다. 그 아이가 노역장으로 끌려간 것이 불과 며칠이라고 벌써 죽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그리 허망하게 가 버릴 아이가 아니다.

“최근엔 그곳으로 끌려온 자가 없었다 하옵니다.”

“없었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노역장은 볼강현이다. 주태도 분명 그리 말했다. 그놈이 볼강현 노역장으로 끌려갔다고. 한데 끌려온 자가 아무도 없다니. 하면 그놈은 대체 어디로 끌려갔단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그럼 그놈이 대체 어디로 끌려갔단 말인가?”

사또가 답답한 듯 이맛살을 찡그렸다.

“그놈을 끌고 갔다는 관졸들에게 뇌물까지 쥐어주며 물어보았지만 그자들도 하나 같이 볼강현으로 끌고 갔다 하옵니다.”

주태에게 먼저 뇌물을 받았으니 관졸들이 바른 말을 할 리가 없었다.

“한데 그곳에선 죄수를 받은 적이 없다 하니.”

땅으로 꺼진 것도 아니고 하늘로 쏟은 것도 아닐 텐데 흔적조차 없으니 가장 답답한 것은 동준이었다.

툭. 소리에 세 사람이 돌아보았다.

열린 문틈으로 바닥에 주저앉은 은심이 보였다. 그 아이의 얼굴이 이미 눈물로 젖어 있었다.

은심이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툭하면 그리 넋을 놓고 앉아 곧 죽을 사람처럼 군다. 제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도 모르는지 젖은 눈으로 정면을 응시한 채 숨을 쉬지 않는 사람처럼 군다. 사또가 그 모습을 안타까이 바라보며 한숨을 몰아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