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신 뭐야, 스토커야?

‘가온’ 매장 4번 피팅룸 앞.

지키듯 앞을 막아선 그녀는 예리한 눈빛으로 피팅룸 문을 쏘아보았다.

‘김우리, 정신 똑바로 차려!’

스스로에게 하는 경고. 우리는 실수를 없애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맘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그리고는 작게 말아 쥔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똑똑.

“….”

똑똑똑.

“….”

왜 조용하지? 이상한 기운에 우리는 몸을 바짝 문에 붙이고 귀를 밀착시켰다. 안에서 들리는 소리로, 보이지 않는 안의 동태를 파악하려는 몸부림이었다.

똑똑똑똑.

좀 더 길게 문을 두드렸지만, 역시 답이 없다. 덜컥 불안해졌다.

‘나란 걸 알고 모른 척하는 건가? 설마 이미 빠져나간 거 아냐?’

문에 달라붙은 탓에 유일하게 자유가 허용된 두 눈을 굴리며 우리는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26년 김우리 인생 중 자그마치 6년 동안 인생을 쓴맛을 보며 살도록 만든 은태영을 겨우 찾았다. 그리고 분명 태영의 뒤를 놓치지 않고 쫓았다. 우리의 눈을 피해서 피팅룸을 벗어날 방도는 없는 게 확실했다. 그렇다는 건, 아직 피팅룸 안에 있어야 한다는 건데….

“똑똑!”

그때, 안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옙! 역시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았어!’

환호와 감격은 잠시 미뤄두고 우리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이때를 놓쳐선 안 된다.

똑똑.

“…….”

언제 답을 했었냐는 듯 답이 없다.

‘어쭈, 안 연다 이거지!’

다시 문을 두드릴 요량으로 손을 번쩍 들 때였다.

철컥!

안에서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금장치가 잠김에서 열림으로 서서히 돌아가는 장면이 그녀의 시야를 채웠다. 시간이 10000배 정도는 느려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며, 천천히 돌아가는 잠금장치를 보고 있노라니 심장이 쿵쿵 날뛰었다. 입안의 마른침이 긴장감을 안고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갔다. 몸에는 갑옷이 둘러지듯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드디어 잠금장치가 ‘열림’으로 완전히 돌아간 순간! 우리는 6년의 기다림을 청산하는 기습전의 요원처럼 비장하고 용맹하게 두 주먹 불끈 쥐고, 두 눈 질끈 감고,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눈을 질끈 감은 탓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제 두 팔이 꽉 차게 남자가 품에 들어왔다. 남자가 놀라는 기운을 느낄 새도 없이, 우리는 왜장을 벼랑 밑으로 안고 떨어졌던 논개언니(?~1593)처럼 손깍지를 끼고 남자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옭아맸다. 우리의 기세에 남자는 쾅! 벽에 등을 부딪치며 결박당했다. 열리던 문은 맥없이 닫혔다.

‘아!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드디어 제가 은태영을 잡았습니다!’

우리는 남자의 가슴에 찰싹 달라붙은 채로 감격에 겨운 포효를 삼켰다. 수갑 노릇을 하느라 쓰지 못하는 손을 대신해서, 머리로 팡! 팡! 그의 가슴팍을 때리며 6년간 쌓인 울분을 토해냈다.

“나쁜 자식아! 니가 나한테서 도망 칠 수 있을 거 같아!”

남자가 몸을 비틀어 벗어나려 하는 것이 품 안 가득 느껴졌다. 많은 움직임이 있지 않았지만 체력이 좋은 건지, 약간의 움직임만으로도 남자를 옭아맨 깍지 낀 손이 풀릴 것만 같았다. 남자의 체력이 여자의 체력을 우선한다지만, 한 맺힌 여자의 간절함은 이길 수 없는 법.

“절대 안 놓쳐. 우주 끝까지 따라갈 거야.”

우리는 남자의 갈비뼈가 부스러질 정도로 힘껏 껴안고 옭아맸다.

“나한테서 떨어져.”

정수리로 서늘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그런다고 주눅들 우리가 아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떨어지란다고 어떻게 떨어지겠니? 게다가 은태영 넌, 그런 말할 자격이 없다고!

남자의 차가운 말은 오히려 우리의 오기에 불을 당겼다. 도리질까지 해대며, 그의 몸을 더욱 꽉 옭아맸다.

“싫어, 절대 안 떨어질 거야.”

“내 몸에서 손 떼. 당장.”

“싫어!”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널 놓겠니. 6년 만에 처음 잡은 건데!

“이봐, 성추행범.”

누가 누구 보고 성추행범이라는 건지. 목소리는 또 왜 이렇게 깔아, 안 어울리게. 우리는 보란 듯이 코웃음 쳤다.

“성추행은 무슨, 너야말로 사기꾸… 운….”

기막힌 듯 태영을 올려보던 우리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창백하리만치 하얗고 서늘한 얼굴, 아메리카노보다 짙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 까만 트레이닝복이 아닌 블랙슈트를 입은 남자. 잡아먹을 듯 나를 보는 멋지고 무서운 당신은 누구?

처음 보는 남자였다. 눈앞의 상황에 사고회로가 멈춰 버린 것도 잠깐. 더욱 짙어져 에스프레소보다 쓰고 독해진 그의 눈빛에 우리는 카페인이 혈관을 타고 들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손가락 끝, 발가락 끝, 온몸 구석구석까지 카페인은 빠르게 흘러 얌전하던 심장마저 질주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온몸을 전율케 하는 짜릿함에 소스라치게 놀라 남자에게서 떨어졌다. 사고가 마비된 와중에 경고음이 머릿속에 울렸다.

위험해, 도망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