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남편과 자신이 몸을 주었던 한 남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녀는, 충격으로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가는 걸 느꼈다. 지금 그들의 대화로 그녀가 확인할 수 있는 건, 남편과 신혁이, 아니 남편과 이주환이라고 부르는 이 남자가 서로 아는 사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바람을 피운 이 남자를 남편이 자신에게 보낸 것이라는 것뿐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녀는 문을 열고 물었다. 충격으로 차갑게 굳어진 눈길로.'“그게, 무슨 말이야?”'“너…….”'“다, 당신.”'그녀의 출현이 놀랍긴 놀라운 모양이었다. 동시에 문 쪽을 바라보던 두 남자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런 문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문밖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이신혁이라는 남자가 아닐 거라고, 그저 목소리가 비슷한 사람일 뿐일 거라고 그렇게도 자신에게 되뇌고 되뇌었던 남자의 얼굴이 자신이 알고 있는 이신혁이라는 남자의 얼굴과 너무나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뿐이었다.'“누가…….”'“여보!”'입을 열며 한 발짝 내딛던 그녀는 충격으로 몸이 휘청했다. 하지만 그녀는 재빨리 문고리를 붙잡았고, 놀란 남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 쪽으로 다가오려 하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눈을 깊게 감았다 뜬 그녀가 말을 이었다.'“설명해 주겠어요, 이 상황에 대해?”'“…….”'“…….”'“내가 문밖에서 들은 이 말들이 모두 무슨 말인지 설명해 달라잖아요. 지금 당장!”'설명해 달라는 그녀의 말에 두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숨 막히는 상황에 놓인 자신의 처지에 화가 난 그녀는 그들을 향해 소리를 내질렀고, 남편이 다시 그녀 쪽으로 걸어오려 움직이자 그녀는 재빨리 한 손을 들어 제지시켰다.'“오지 마.”'“여보…….”'“오지 말고, 말해. 지금 내가 들은 말이…… 무슨 뜻인지.”'그녀의 말에 남편은 엉거주춤하며 자리에 섰고, 난감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자 남편이 차갑게 말했다.'“자네는 그만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군.”'“하지만…….”'“이건 우리 부부 일이네. 그만 가 보게. 그리고 더 이상 만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누구 마음대로?”'남편의 말이 끝나자 듣고 있던 그녀가 흔들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건 그들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남편과 그가 서로 알고 있는 사이라는 사실을 그녀가 알아 버린 이상은.'“당신…… 누구야?”'그녀는 덜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갖은 애를 쓰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슬픔이 가득 담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눈과 그녀의 눈이 허공에서 서로를 향해 얽혀 들었다. 신혁은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듯 입을 달싹였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당신 누구냐고!”'그의 행동에 더욱 불안감을 느낀 그녀는 있는 힘껏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남편이 그녀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그녀를 붙잡으며 말했다.'“여보, 나랑 얘기해. 내가 설명할게.”'“당신 누구냐고, 묻잖아. 당신 누구냐고!”'그녀는 그에게 듣고 싶었다. 그가 누구인지, 도대체 왜 자신의 남편 진료실에서 그녀가 믿을 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그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그런 그녀의 간절한 마음에 부흥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드디어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직하면서도 분명한 그의 목소리가.'“이름, 이주환…….”'“이봐!”'“나이는 스물일곱 살이고 하는 일은, 학생입니다. 한국대학 호텔경영학과에 재학 중인…….”'“뭐, 뭐라고…… 다, 당신,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여보! 정신 차려. 내가 설명할게. 날 보라고!”'남편을 바라보지 않은 채 그의 얼굴만을 바라보며 금세라도 쓰러질 것 같은 아내가 위태로워 보였던 것일까? 남편은 그녀를 붙잡으며 자신을 보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는 들을 수 없었다. 느낄 수 없었다. 이신혁, 아니 이주환이라는 이 남자가 아니면 볼 수 없었고, 이 남자의 목소리가 아니면 들을 수 없었다.'“나는…… 나는…….”'“이봐, 이주환 군! 그만 나가 봐. 어서!”'그는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듯 다시 입을 달싹였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를 붙잡은 채 그에게 나가라고 소리쳤다. 충격으로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린 그녀는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