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남자에게 취하다

“야야, 그만 마셔 봐.”

“왜 이래, 안 취했는데.”

“나도 알아, 너 안 취한 거, 근데 그만 좀 먹어. 주위에서 자꾸 쳐다보잖아.”

친구의 말에 작은 포장마차 주위를 둘러보니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과 시선이 마주치자 조용히 술잔을 내렸다.

그럴 법도 하지, 옆에 있는 두 병의 초록 술병이 불과 40분 안에 생긴 것이었다.

“진짜 술에 안 취한다는 게 단점이자 장점이다.”

“단점이 뭔데?”

“술에 취한 걸 8년 넘게 못 봐서 재미없는 거지, 술에 취하면 애교도 부리고, 술에 취해 솔직하게 얘기하는데 넌, 쯧쯧.”

숟가락을 들고 얘기하던 친구는 혀를 차며 말했다.

“장점은.”

“장점? 술에 안 취한다는 거?”

“그게 장점이냐? 난 지금 취하고 싶다고.”

“야야, 술 못 먹는 여자들 들으면 술병 들고 쫓아와.”

“쫓아올 여자가 없어서 날 쫓아오니?”

그녀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다시 잔을 들이켰다.

“이모,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이년아, 술 안 팔아. 어서 나가.”

“왜요! 술값 따박, 따박 내는데요!”

“너한테 술 파는 게 재미가 없어서 그런다. 왜!”

‘다 재미없대! 내가 개그맨도 아니고!’

여자는 결국 친구의 남은 술을 들고 와 잔에 따라 마셨다.

“그래서 헤어졌어?”

“그래, 결국 헤어졌다.”

“지랄!”

그녀의 말을 듣고 욕을 퍼붓는 친구는 다시 술을 들고 와 자신의 잔에 따랐다.

“윤희야, 세상엔 남자 많아. 언니가 소개해 줄까?”

“전 남친, 해민이 네가 소개해 줬잖아.”

“그래서 욕하고 있어. 미안해.”

낮게 욕을 읊는 해민의 모습에 피식 윤희는 술잔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너 잘못 아냐, 우리 문제인걸.”

“다시 만나자 하면 만날 거야?”

“헤어지자고 했으니 그걸로 끝이지.”

“괜찮아?”

‘아니, 전혀.’

윤희는 해민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살짝 미소만 진 채로 술을 마셨다.

-

터벅터벅 걸어가는 윤희는 집으로 가는 길에 술을 더 사기 위해 집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초록색 병 두 개와 오징어를 사서 계산대에 올리는데,

“신분증 주세요.”

자신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는 남자 아르바이트생을 보는 윤희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술을 사주겠다는 해민의 전화에 핸드폰만 들고 나온 윤희는 나이가 먹으면서 신분증을 검사하는 일이 없어서 신분증 따로 챙겨 나오지 않았다.

평소에 검사를 하고 싶어도 하지 않았는데, 왜 하필 이 타이밍에 검사를 한다는 건지.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걸까, 슬퍼해야 하는 걸까.

“아, 지갑 놓고 왔는데…… 저 스물여덟이예요.”

“그래도 신분증 필요해요.”

‘아 놔, 젠장.’

결국 번거롭게 집을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하게 생겼다.

“저기요.”

집으로 향해 걸어가는데 귓가에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블랙 색상의 검은색 세 줄이 그어져 있는 브랜드 트레이닝복 세트에 그 브랜드 슬리퍼에 그 브랜드 모자에 하얀 마스크를 쓴 남자가 서 있었다.

‘옆집?’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윤희의 옆집 남자였다.

남자는 검은색 봉투를 윤희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가져가세요. 제가 계산했어요.”

“왜요?”

“번거롭잖아요.”

번거롭긴 했지만 뭐, 운동 삼아 갔다 오자 했는데, 옆집 남자가 계산해 주다니 굳이 집으로 갔다 오는 번거로움이 생기지 않게 되었다.

마음 같아선 넙죽 고맙다고 하고 싶지만 그래도 이웃이기에 윤희는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돈은…….”

“저번에 소음 소리 그걸로 퉁 쳐요.”

남자의 말에 윤희의 머릿속으로 일주일 전 3일 동안 자꾸만 잠잘 시간인 새벽녘에 옆집에서 쿵쿵쿵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한 기억을 떠올렸다.

‘잠 좀 자게 그만 좀 하시면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