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아니면 할 사람이 또 누가 있냐?”'“하여간 자식.”'창환은 토모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봤다. 하여간 이 녀석은 귀찮은 일은 자꾸만 자신에게 미루고 있었다.'“오늘은 네가 담당이잖아. 원래 너희들은 자기 일은 자기가 하고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것이 기본 요소 아니야?”'“괜찮아. 괜찮아.”'전혀 괜찮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토모는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면서 창환의 어깨를 두드렸다. 창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욕실로 들어갔다. 아니 자기 때문에 변기가 막혔는데 왜 늘 자신을 찾는 것인지.'“이번이 마지막이라고.”'“알았어. 알았다니까? 내가 오늘 저녁에 맛있는 오코노미야끼를 쏠 테니까 그리 걱정은 하지 말라고.”'“그런 걸 걱정하는 것이 아니잖아.”'창환은 깊이 심호흡을 하고 뚫어뻥을 집어 들었다. 유쾌하지 못한 일주일의 시작이었다. 두 사람 중에서 늘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창환이었다.'“으악! 토모 이거 장난 아니잖아!”'“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다음부터는 끊으면서 눌게.”'토모의 능청스러운 대꾸에 창환은 코를 틀어막고 작업을 시작했다.''3월의 햇살은 따사로웠다. 2학년이 되어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더군다나 창환은 군대까지 다녀온 터라 이 여유로운 햇살이 낯설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아직 수업이 시작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미리 복학 신청도 하고 할 일이 많았다. 햇살을 더 느끼고 싶었지만 아침에 가는 것이 붐비지 않을 터였다. 더군다나 이쪽에 있는 사람들은 한국의 군대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도 못 하고 있으니까. 귓가를 간질이는 바람을 타고 언덕을 내려가는 중이었다. 순간 저 멀리서 누군가가 보였다. 자전거로는 피할 수가 없는데, 저쪽에서 피해야 하는데, 벨을 아무리 울려도 반응이 없었다. '“저기요! 좀 비키라고요! 이봐요!”'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상대방에서 반응이 없었다. 창환은 어쩔 수 없이 창환은 핸들을 있는 힘껏 꺾었다. 그리고 쾅!'“괜찮아요?”'“흐음.”'온몸이 쑤시지 않는 곳이 없었다. 다행히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죽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도와주세요! 여기 사람이 쓰러졌어요! 사람이 쓰러졌다고요!”'-괘, 괜찮으니까 가만히 있어요.'“일본 사람이 아니에요? 아 일본 말을 못 하는 건가? 이 사람 지금 어느 나라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중국말은 아닌 것 같은데.”'그제야 창환은 자신이 한국말로 대답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을 뜨니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 하나가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예쁘다. 혹시 천국에 온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다리에 찌르르하고 통증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체인에 물린 것인지 뼈가 드러난 채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젠장.”'“기다려요. 내가 가서 앰뷸런스를 부를게요. 내가 휴대전화가 없어서. 그러니까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요.”'횡설수설 혼자서 떠들던 여자가 멀리 뛰어가고 있었다. 창환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상체를 일으킨 후 가방에서 전화기를 꺼내 응급전화를 걸었다. 대충 현재 위치를 설명한 후 다시 자리에 누웠다. 머리가 핑핑 도는 것이 단순히 다리만 다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허리도 뻐근하고 어깨도 묵직하게 느껴졌다. 단순한 타박상으로 그치면 다행일 텐데 벽에 너무 세게 박은 것 같았다.'오늘 학교에 가서 복학 신청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경제적으로 안정하기 위해서 미리 신청을 해야 할 서류들이 있었다. 한국은 이미 복학이 끝난 상태라 한국에서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지금 복학 신청을 해야 하는데. 아직 날짜가 다소 남아 있기는 했지만 한국의 학기는 3월에 시작을 하기에 그 전에 받는 것이 절차상 편했다. 조금이라도 의식을 찾기 위해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창환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타박상 외에는 딱히 문제가 보이지는 않는군요. 다리도 걷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보기에는 심하게 보여도 참 운이 좋군요. 상처만 아물면 재활 같은 거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입니다.”'“고맙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익숙하면서도 낯선 냄새. 그리고 일본어들. 흩어져 가는 정신을 다시 붙잡고 가늘게 눈을 떴다. 기억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여자가 그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가, 그가 눈을 뜨고 눈이 마주치자 밝게 미소를 지었다.'“일어났어요?”'창환은 가만히 여자의 얼굴을 살폈다. 잠시 창환을 응시하던 여자가 박수를 치더니 황급히 어딘가로 뛰어갔다. 창환은 잠시 더 의식을 찾고는 조심스럽게 상체를 일으켰다. 늘씬하게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몸이 쑤셨다. 대충 자신을 살펴보니 머리가 어지럽기는 했지만 눈에 보이는 상처는 다리뿐이었다. 팔에도 군데군데 멍이 들어 있기는 했지만 다리처럼 큰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전화!”'주위를 둘러봤지만 자신의 소지품이 보이지 않았다.'“저기요. 간호사 없나요?” '“아, 일어나셨네요. 뭐 필요하신 것 있나요?”'간호사가 밝게 미소를 지으면서 창환에게로 다가왔다.'“제 소지품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전화기를 사용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여기서 사용해도 괜찮죠?”'“널스 스테이션에서 보관 중입니다. 지금 바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대신 짧게 사용을 하셔야 합니다.”'“네.”'간호사가 가방을 가져다주자마자 창환은 황급히 휴대전화를 꺼내 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다시 전화기를 가방에 던져 놓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 꼭 올 필요는 없다고 하니까 조금 바쁘기는 하더라도 내일 다 해결할 수 있을 거였다. 크게 다친 곳은 없다고 하더라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 평소에 자주 있던 두통과는 달랐다. 창환은 눈을 감고 가만히 심호흡을 했다. 온몸이 살아 있다고 말을 하는 것처럼 쑤셨다. 창환은 아랫입술을 가만히 물고 고통을 참았다.'“저기 일어나 봐요. 의사를 모셔왔어요.”'눈을 감았던 창환이 자신의 앞을 확인했다. 의사와 어떤 여자가 있었다. 근엄한 표정의 의사와 약간의 이야기를 나눈 후 영양제를 다 맞고 난 이후에 퇴원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여자는 계속 긴장된 표정으로 창환을 보고 있었다. 의사가 갔음에도 여자는 계속 창환을 바라보고 있었다.'“무슨 일입니까?”'결국 참다못한 창환이 먼저 입을 열었다.'“어? 일본말을 할 줄 아는군요. 다행이다. 말이 안 통할까 봐 걱정을 했어요.”'여자의 밝은 미소를 보면서 창환은 당혹스러웠다. 설마 이 여자 아까 그 자전거 앞에 있던 여자였나?'“여태 있었던 겁니까?”'“네. 당연하죠. 다친 사람을 두고 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런데 평소에 지병이 있었어요? 혼자서 넘어져서 얼마나 놀랐다고요.”'“내가 혼자서 넘어졌다고요?”'여자의 말을 듣는 순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 나올 뻔 했다. 창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미간을 찌푸리자 여자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창환은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고 입을 열었다.'“내가 무슨 말이라도 잘못한 거예요?”'“내가 다친 이유가 바로 당신 때문인데, 지금 나 혼자서 넘어졌다고요? 내가 지병이 있냐고 묻는 겁니까?”'“나 때문이라고요? 내가 뭘 어떻게 했다고요?”'여자가 자신을 가리키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내가 당신을 떠밀기라도 한 거예요?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나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나 때문이라고 그래요?”'“당신을 피하려고 핸들을 틀다가 다친 거라고요. 아니 그렇게 벨을 울렸는데도 왜 돌아보지를 않아요? 조금만이라도 피했으면 안 이랬을 거 아닙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기에 주변에서 나는 소리를 하나도 듣지 않습니까?”'“아 미안해요.”'여자가 입을 가리고 금세 눈물이 고인 채 창환을 바라봤다. 왜 이러는 거야?'“아니 내가 무슨 나쁜 이야기를 했다고 그러는 겁니까?”'“그쪽 때문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