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자지 않으려 노력했건만 채연은 비몽사몽간에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입국하자마자 정신없이 휘몰아쳤던 일들로 인해 몸과 마음이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해서인지 눈조차 뜰 기운이 없었다. '침대에서 뭉그적거리는 자신의 나태함에 어이없어하던 채연은 이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해내고는 그대로 얼어붙었다.'그의 별장에 들어온 후, 의식적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피했다. 그래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슨 생각에 이곳까지 따라왔는지, 채연은 자신의 무모함에 치를 떨었다. '싫다고 발버둥을 쳤었다. 하지만 빠져나오려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었기에 마음에 드는 죄책감은 모든 생각을 멈추게 만들었다. '시간도 날짜도 어느 순간부터 세지 않았다. 이 좁은 공간에 갇힌 이후로 그녀가 한 행동은, 아무 생각 없는 인형처럼 멍하니 넋을 놓고 있다 지쳐 깜박 졸다 일어나 기계적으로 밥을 먹고 멍하니 있었을 뿐이었다. '풍경이 멋진 산장에 왔지만 방구석 침대에 온몸을 뉘이고 꾸벅꾸벅 졸다 깨다를 반복하던 그녀였다. 문소리가 나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영천댁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것도 눈꺼풀을 닫았다 다시 올리면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으로 변했다.'다만 그가 나간 뒤 필요 없다는데도 자꾸 반복적으로 들이는 스프는 영천댁의 정성이라기보다는 그의 지시 같아 괜한 반항을 불러일으켰다. 침대 맡에 무릎을 끌어안고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길에는 삶의 생기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공허했다. '똑똑똑. '문을 두들기는 노크 음에 채연은 몸을 흠칫 움츠렸다. 혹시 그가 온 것은 아닐까 가슴이 방망이질을 했고, 경계가 어린 음성은 날카롭게 흘러나왔다.'“누구세요?”'“저기, 저녁 식사는 어떻게 하실지….”'조심스러워 하는 영천댁의 목소리에 긴장했던 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나갔다. '그가 아니었다. '벌써 오늘만 하더라도 몇 번째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해서 채연은 무릎을 끌어안고 동그랗게 말았던 몸을 천천히 풀었다. 채연은 기운 빠진 몸을 이끌고 흐느적거리며 침대를 내려와 약에 푹 젖은 여자처럼 비틀거리며 문을 열었다.'“벌써 저녁때인가요?”'영천댁이 눈에 비친 불결한 몰골이 창피해 채연은 얼굴을 살짝 돌렸다. '“아휴, 너무 오래 주무셔서 제가 다 걱정이었다니까요? 혹시나 어디가 아프신지 자꾸 들여다보기도 그렇고 음식도 안 드시니… 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요. 솜씨는 없지만 한 번 해드릴 테니.”'문을 열자 시골 아낙답지 않게 깔끔한 차림새를 한 영천댁의 걱정타령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먹는 음식을 해주겠다며 말하라는 말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처음이었다. '“죄송해요, 괜한 걱정을 드렸네요.”'채연은 하루 종일 세수 한 번 하지 않은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어색하게 대답했다. 별장에 들어와서 갈아입지 못한 바지는 이미 무릎마저 튀어나왔고, 블라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무딘 손길로 펼 수 있는 주름이 아니었기에 채연의 입에서는 불만의 한숨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