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저 아니에요!

백 선생은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앉은 자리에서 서둘러 일어섰다. 오전까지 마무리 지어야 할 서류를 서둘러 해치운 뒤 기분 좋게 일어서던 참이었다. 자신이 다니던 여고에는 축제 따위 없었다. 대학에 가서야 경험할 수 있는 축제를 고등학교에서 누릴 수 있다니…!

“정말 멋진 교장 선생님이지 않아요?”

백 선생은 함께 축제 구경을 나서기 위해 기다리고 서 있던 김 선생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이야기했다.

“갑자기 교장 선생님이 왜…?”

김 선생 역시 간만의 밝은 분위기에 표정이 한껏 들떠 있었다. 그리고 재미있다는 듯 백 선생의 질문에 응대를 해 주었다.

“하도 성적, 성적 하시길래 꽉 막힌 분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시다니요. 정말 멋진 것 같아요. 그죠, 김 선생님?”

김 선생은 부인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흔쾌히 동의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싱글거리고 있었다.

“뭐, 이런 면에서는…. 그만 감탄하고 어서 나가요, 우리.”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교무실을 빠져 나가던 두 선생은 마침 다가오고 있는 교장을 발견하고서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교장은 싱글벙글하고 있는 두 여선생에게 환하게 웃어주었다.

“때마침 잘 만났군요, 백송이 선생님.”

교장이 자신을 가리켜 들뜬 목소리를 내고 있었음으로 백 선생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분이 바로 지후의 담임선생님입니다. 올해 우리학교에 처음 발령을 받고 온 신참이랍니다, 허허허….”

넉살 좋은 웃음과 함께 교장이 소개하며 바라본 이들을 백 선생도 바라보았다. 고급 슈트를 차려입은 중년의 남성과 역시 고급 투피스를 차려 입은 그의 아내인 듯한 여성이 함께 서서 백 선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렇습니까? 이거 처음 뵙겠습니다. 명지후 아빠 되는 사람입니다.”

서글서글한 눈매를 하고서 중년의 남성이 인사를 해 왔다. 지후의 아빠라면… 대화그룹의 명희석 사장? 그는 탁월한 리더십과 진취적인 사업수단으로 대화그룹을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기업으로 이끈 명신철 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큰 아들이 반백의 나이에도 장가를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명 회장이 둘째 아들에게 그룹의 사장자리를 내주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 둘째 아들에게 딸이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명 회장에게는 상당히 아쉬운 현실이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핏줄을 중시하는 명 회장에게 있어서 하나밖에 없는 손녀인 지후는 소중했다. 그런 지후가 그룹 내에서 아주 귀중한 대우를 받고 있음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다.

어쨌든 백 선생은 조금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 함께 고개 숙여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백송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백 선생은 옆에 서 있는 여성에게도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나 차가운 눈빛을 한 그녀는 그저 고개를 까딱했을 뿐, 더 이상의 말이 없었다.

“자, 이쪽으로들 들어가시지요. 백 선생님, 바쁘시지 않다면 차 대접을 좀 부탁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아, 교감 선생님이 아이들처럼 신이 나서 축제 구경을 가시고 안 계시지 뭡니까?”

방문자들을 교장실로 안내하면서 교장은 백 선생에게 이야기했다. 백 선생은 순간 울상이 지어졌지만, 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눈으로 김 선생과 작별인사를 한 백 선생은 무리를 따라 교장실로 들어갔다. 교장이 신이 나서 손님들을 맞으며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안, 백 선생은 속으로 한숨을 집어삼키며 커피를 탔다.

“늘 학교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운영하시는 학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후 학생을 저희 학교에 보내주시고, 또 홍보를 잘해 주신 덕에 유명 연예인까지 입학을 하는 유명학교가 되었으니 감사한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허허허….”

교장의 아부가 듬뿍 담긴 인사치레에 명 사장은 두 손을 내저어 보였다.

“학교야 지후가 원해서 온 거고, 조민세가 이 학교를 선택하는 데에 저희가 손쓴 건 하나도 없습니다. 학교가 좋은 거고, 교장 선생님께서 훌륭하신 거지, 저희는 뭐, 칭찬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도 학교 분위기가 활기찬 게 아주 보기가 좋습니다. 하하하….”

백 선생은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명 사장과 사모를 힐끔 바라보았다. 명 사장의 표정이 온화한 데 비해 사모의 얼굴은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주전공이 뭐죠?”

역시나 쌀쌀맞은 목소리가 거만함을 옷 입고 백 선생에게 닿았다. 백 선생은 그녀의 앞에 단정히 앉으며 답했다.

“영어입니다.”

“그래요? 언어연수는 어느 나라에서 받으셨어요?”

여전히 싸늘한 목소리가 싸늘한 눈매로 물어오고 있었다. 백 선생은 살며시 미소 지으며 답했다.

“한국이요.”

싸늘한 눈매가 어이없음을 덧입고서 가늘어지고 있었다.

“유학… 안 다녀오셨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