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왕의 딸인 연화 궁주는 남동생과 궁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왕권이 약해지고 신변의 위협이 느껴진 부왕은 궁주에게 사촌오빠와의 정략혼을 강행한다. 그것도 왕자의 정실도 아닌 후처로 가야 하는 운명에 처해진다. 궁주는 부왕과 남동생을 살리기 위해 원하지 않은 정략혼을 한다. 하지만 그 혼인은 인질에 가까웠다. 왕자는 궁주를 별궁에 가두어 놓는다.

<본문 중에서>

“싫어요. 저는 예림공과 혼인하기 싫사옵니다. 예림공은 이미 부인도 있지 않았사옵니까? 아무리 왕실이 근친혼을 한다 하더라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되옵니다.”

그러자 부왕은 연화 궁주의 손을 잡으며 부탁하기 시작했다.

“궁주야 정말 너에겐 미안하구나. 하지만 너의 남동생의 생명을 구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제부터 자네는 연화 궁주가 아닌 연화 궁부인으로 불릴 걸세. 그건 알고 있는가?”

궁주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형님!”

“그리고 네가 잊은 게 한 가지 더 있다. 겉으로 보기엔 네가 나의 후처지만 넌 나의 인질이다. 명목상 너를 나의 후처로 보냈지만 사실 너의 아비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 남동생을 살리기 위해 널 인질로 보냈단 말이다. 그건 알고 있느냐?”

그녀가 몸을 떨면서 대답하지 못하자 예림공은 갑자기 그녀의 머리채를 휘어잡으며 말했다.

“네 분수는 네가 알라는 뜻이다. 괜스레 왕의 딸이네 하고 함부로 거드름 피우지 말고. 그리고 너는 나의 정실부인으로 들어온 게 아니라 후처로 들어왔으니 그에 대한 대우는 마땅히 해주어야지. 실질적으로 인질이고 후처니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아야지 안 그러냐?”

“알겠사옵니다. 왕자님!”

“네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너의 아비와 남동생의 목숨이 달려 있느니라. 그러고 보면 네 아비도 참 불쌍하다. 얼마나 불안했으면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을 이렇게 인질로 보내다니.”

“왕자님, 그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너의 아비는 나란 인간을 잘 모르는 것 같으니 오늘 밤 나란 놈에 대해서 또다시 상기시켜 주어야겠구나.”

“너 또한 나에 대해 모르지 않느냐?”

“그렇긴 하옵니다.”

“그렇다면 알게 해주어야지.”

“왕자님!”

“명령이다. 지금 내가 보는 앞에서 저고리부터 벗도록 해라. 전부 다 벗어라.”

<프로필>

글쓰기는 나에게 생명이고 에너지이고 사랑이다. 글쓰기는 나를 항상 자유의 세계로 이끈다.

<이북출간작품>

<장경궁주 : 노비와 사랑에 빠진 왕비>, <사랑과 욕망>, <사랑과 집착사이>

목차

1회 정략결혼

2회 끔찍했던 신혼 첫날밤

3회 짐승보다 못한 왕자

4회 무능한 부왕을 탓하거라

5회 힘없는 왕의 딸로 태어난 걸 원망해야 할 것이야!

6회 생각하기 싫은 지난날의 과거

7회 궁녀 박 상궁의 행패

8회 복수할 것이야!

9회 지금까지 날 거쳐 간 계집치고 만족하지 않은 계집은 없다

10회 박 상궁이 받은 처벌

11회 낯선 남자의 정체

12회 흔들리는 마음

13회 기생 매향

14회 궁주의 오라비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15회 태자를 당장 잡아 오너라

16회 그 꽃은 궁주를 닮았나 봅니다

17회 별궁에서의 첫날밤

18회 빛나는 별

19회 궁주의 재입궁

20회 오늘 밤 합궁도 해야 할 것이야!

21회 후비가 된 매향

22회 매향의 과거

23회 태후의 죽음

24회 예림공의 어린 시절

25회 왕을 폐위시킬 명분

26회 예림공의 최후

27회 왕비만을 살려 주시게

28회 사랑을 위해서라면

1회 정략결혼

개경에서 팔관회가 있는 날이었다. 화려한 복장을 하고 얼굴에 분을 바른 아름다운 여인이 행사장에 나타나자 모두들 시선은 그녀를 향했다. 살결은 백옥처럼 하얗고 입술은 앵두처럼 빨간 입술 이목구비가 너무나 뚜렷했다. 그리고 그녀의 신분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걸친 의복을 보아서 아주 신분이 높은 집안의 여인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사내들은 그녀가 머리를 올린 것을 보고 약간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모든 게 완벽했지만 머리를 올린 그녀를 보면서 귀족의 부인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머리를 내렸다면 어느 집안의 규수인지 알아봐서 쫓겨날망정 청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희망조차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사내들을 쳐다보면서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도 내가 마음에 드는 자 용기를 내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가 비록 머리를 올리긴 했지만, 지아비가 없는 과부입니다.”

그녀가 과부라고 팔관회 행사장에서 큰소리로 말하자 그녀를 넋 잃고 바라본 수십 명의 사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내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과부라고 하잖아. 그럼 희망은 있는 게 아닌가. 저렇게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뭐가 부족해서 혼자 살겠어.”

사내들은 그녀 옆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전남편 사이에서 자녀는 있습니까?”

그 질문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사내들에게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러자 사내들이 웅성웅성 거리면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느 가문의 부인이십니까? 빠른 시간 내에 저희가 찾아뵙겠습니다.”

많은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인기가 높아지자 그녀는 너무나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기분을 즐기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을 못마땅하게 보는 중년의 여인이 있었다. 중년의 여인은 더 이상 가만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젊은 여인에게 다가가 말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데 이런 행동을 하시는 것이옵니까?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중년의 여인이 다가오자 젊은 여인은 약간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사는 것 자체가 재미가 없는데 이렇게라도 즐겨야겠네.”

“궁주(고려 시대 왕의 딸이나 와의 후궁에게 썼던 칭호)님,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잊으셨사옵니까? 왕의 여인이었던 사람은 절대 귀족과 재혼하실 수 없다는 걸 잊었단 말씀이옵니까?”

왕의 여인이었다는 소리를 듣자 젊은 여인에게 몰려들었던 사내들은 한두 사람씩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마마라는 칭호도 당황스러운데 왕의 여인이라는 말에 갑자기 진이 빠진 듯 그들은 한두 사람씩 자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사내들이 전부 자리를 뜨자 젊은 여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중년의 여인에게 호통을 쳤다.

“김 상궁, 대체 자네는 꼭 이럴 때 와서 재를 뿌린단 말인가?”

“궁주님, 농이 너무 지나치시니 않사옵니까?”

“알았네.”

“얼른 별궁으로 들어가셔야 하옵니다.”

“여기서 더 놀다 가면 안 되겠나?”

“궐에서 내관이나 상궁이라도 나오면 큰일 나옵니다. 폐하나 왕비께서 감시할 수도 있사옵니다.”

“난 이제 두려운 게 없는 사람이네. 내 주위에 소중한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지.”

하지만 이내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죽을 때 죽을망정 그 연놈들의 종말을 보고 죽어야지. 부왕과 왕비 그리고 남동생까지 그리 만든 놈을 내가 그냥 둘 순 없지.’

결국 연화 궁주 유 씨는 팔관회의 행사를 더 보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자신의 별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연화 궁주가 중년의 여인인 상궁과 점점 사라지자 그녀를 유심히 보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는 연화 궁주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그 사내는 옆에 있는 내관을 향해 명령했다.

“정말 반반한 계집이구나. 저런 계집과 하룻밤을 지낼 수 있다면 밤새 놀 수도 있지 않겠느냐?”

“왕자님, 송구하오나 보아하니 머리를 올린 것을 보아 혼인을 한 여인이고 신분 또한 낮은 집 처자가 아닌 듯 보였사옵니다.”

그 말에 왕자라는 사내는 내관을 향해 호통을 쳤다.

“네 이놈, 내가 언제 혼인 여부를 따졌다더냐. 내 눈에 들어오기만 하면 내가 유부녀라고 가렸다더냐?”

“하오나 유부녀는 이제 가리셔야 하옵니다. 혼인하지 않은 처자는 첩이라도 삼을 수 있지만 혼인한 처자는 아무리 그래도 복잡해지지 않사옵니까?”

“신분이 높다 한들 왕자인 나보다 높겠느냐. 난 이 나라의 왕자다. 왕의 여인만 아니라면 내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내 눈에 들어온 여인은 내 손길을 벗어날 수 없음이야.”

“하오나 남편이 있는 여인이 왕자님께 쉽게 허락하겠사옵니까?”

그러자 왕자인 그는 큰소리로 내면서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처음부터 나에게 쉽게 허락하는 여자는 재미가 없지. 싫다는 여자 결국 스스로 옷을 벗게 하는 게 나의 특기가 아니더냐. 하하하.”

“하지만…….”

“어서 저 처자에 대해 알아보고 오너라. 난 한번 내 눈에 든 여인은 그냥 고이 돌려보낸 일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을 네놈이 더 잘 알지 않느냐.”

왕자 서림공은 지금까지 자신이 원하는 여자는 무조건 자신의 여인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사람 예외가 있었다. 자신의 아내인 정화 궁비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자신의 아내는 이복 남매였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어머니와 후궁이었던 정화 궁비의 어머니와는 친했기에 친남매처럼 지냈다. 그리고 핏줄도 어머니만 달랐지 아버지는 같았다. 자신이 어른이 되어 귀족 집안의 규수가 마음에 들어올 때쯤 부왕인 아버지는 정화 궁비와 족내혼이면서 정략혼인을 시켰다. 혼인을 했지만 처음부터 남매였듯 혼인 후에도 여전히 남매처럼 지내고 있었다. 아내와 남매처럼 지내다 보니 일상적인 남녀의 사랑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는 저잣거리와 기방을 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여자를 유혹해 자신과 하룻밤을 보내는 걸로 낙을 삼고 있었다. 일단 자신의 눈에 들어오면 그 여인과 기필코 잠자리를 하는 게 그의 취미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