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남자의 입술이 그녀의 바싹 마른 입술을, 싸한 치약 냄새가 풍기는 입술을 감쳐물고 있다. 느릿느릿 남자의 입술이 헤집어 다니고 있다. 온몸의 감각이 전부 다 이 좁디좁은 입술로 옮겨지고 있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냥 죽은 것처럼 가만히 있으면 되나……라고 느낄 새가 없다. 가만히 닿기만 하고 한동안 가만히 있던 그가 다시 움직거리기 시작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기분이 괜찮은데. 정말인데……. 허리를 감은 팔에 힘이 들어가는 걸 알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아, 이럴 땐 이 거추장스러운 손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그러나 싸한 향수 냄새가 머릿속을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천천히 그림을 그리듯 다른 사람의 입술이 배회하고 있다. 여전히 뱃속 끝은 간질거리고 허공을 움켜잡던 손에는 매끄러운 남자의 슈트 자락이 잡혔다. 그의 몸이 자신의 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삼킬 듯 조용하기만 하던 움직임이 커지는 것 같다. 머릿속이 하얗다는 게 이런 건가. 하얀 머릿속을 파고들듯 어느샌가 벌어진 입속으로 뭔가 말캉한 것이 스며들듯 파고들었다. '아……. 아, 이런.'무언가 자신의 아닌 것이 자신의 안에서 슬슬 서성이고 있다는 것은 이런 느낌인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어설픔이 점막을 타고 전해질 것만 같다. 처음에는 천천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뻣뻣한 그녀의 혀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는 잠시 그가 몸을 빼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서성거리던 것도 사라져 버렸다. 아, 뭐 이런 느낌이 다 있어……. 어느새 눈을 감았었나. 매끄러운 입술이 떨어져 나가고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남자의 어깨 자락을 잡은 채였다. 우선은 눈을 떠야만 하는데…….' '지선은 얼른 손에 느껴지는 매끄러운 감촉의 천에서 손을 떼고는 입을 막고 아직도 자신의 허리를 감은 채 자신의 체중을 지탱해 주고 있는 남자의 팔뚝에서 벗어나 자신의 척추로 몸을 지탱해야 했다. 지선은 화들짝 물러나려고 했다. 이게 무슨,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그러나 그 뒤에 생각이 이어지질 않았다. 그가 다시 팔에 힘을 주어 지선을 당긴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입을 막고 있는 손을 걷어냈다. 그리고 그 손을 다시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는 아까와는 다르게 아니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도록 그녀의 입술을 물어왔다. 놀란 것인지 혹은 그사이 익숙해진 것인지 지선의 입술이 그의 뜨거운 숨결에 저절로 벌어졌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마치 그녀의 온몸을 휘어 감듯이 그녀의 혀를 휘어 감았다. 지선은 매끄러운 슈트가 자신의 손안에서 구겨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경고가 마치 한여름 밤의 폭죽처럼 머릿속에서 펑펑 터져 버리고 있었다. 그의 커다란 손이 지선의 자그마한 얼굴을 감싸 안으면서 그녀의 고개를 옆으로 뉘였고 옆으로 기울어진 그의 얼굴은 달착지근하게 그녀의 혀를 녹이고 있었다. 매끄럽고 달착지근한 숨결에 머릿속이 점점 하얗게만 탈색돼 가는 것이 느껴졌다…….' ' ' 그가 고개를 뗐을 때, 지선은 자신이 무슨 100미터 달리기라도 한 듯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을 알고는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남자가 내려다보는 눈빛과 마주치다니. 차라리 눈을 감고 있다 고개를 숙일걸. 지선은 화들짝 놀라 그의 슈트 자락을 잡고 있던 손을 풀고는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그리고는 순간적으로 또다시 입으로 손이 가고 말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버석하게 말라 있던 자신의 입술이 촉촉하게 젖어 있는 게 손끝에 느껴지자 정말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에 갑자기 들어와서 저 남자 뭘 한 거지?   ' '“보고 싶어서 왔다는 건 그냥 실없는 소리가 아니었어.”'남자의 목소리가 지선을 현실로 되돌아오게 했다.'“내일도 모레도 보고 싶을 거니까. 잘 자고. 내일 보자고. 늦은 시간에 불쑥 찾아와서 미안했어. 전화 많이 했었는데 말이지. 그럼 가지.”'남자의 말이 이제야 귀에 들리고,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아, 뭐라고 이제 간다고? 이렇게 해놓고? 막 현실로 돌아온 시각에 비친 그는 마치 이 방에 지금 들어왔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저 왼쪽 팔뚝에 형편없이 구겨진 슈트만 아니라면 지금 방금 있었던 일이 자신의 과대망상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무슨 일이 있었었나? 남자가 몸을 돌려서 쓰레기봉투 사이에 있는 자신의 신발을 찾아 신고 문을 열고 있는데도 지선은 아직도 얼음이 된 채 움직임도 없이 손으로 입만을 막고 서 있을 뿐이었다.'“문단속 잘 해.”'그 말만 남기고 남자는 문이 열리자 새어드는 찬바람 한 조각을 지선의 뺨에 선사하고는 사라졌다. 얇은 철판 사이로 들리는 발자국 소리가 잦아들고 아무런 소리가 없을 때까지 지선은 그 상태로 입을 두 손으로 막은 채 서 있을 뿐이었다.' '지금 무슨 일이 있었나? 유난히 일찍 퇴근한 덕에 청소란 걸 하고 열심히 맛대가리 없는 카레를 먹고 큐브질을 했을 뿐이었다. 술을 먹은 것도 졸았던 것도 아닌데 지금 이 뺨에 느껴진 찬바람 한 가닥은 뭐이며 입술에서 사라져 가는 타인의 체온은 대체 무엇인가? 지금 허리께에서, 턱 근처에서 사라져 가는 온기는 실체가 있는 것이란 말인가.' ' '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집 따위는 없었으면 좋겠다.'한 십 년 전쯤에는 늘 하루에도 수백 번씩 머릿속에 떠오르던 말이었다. 집을 나오고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 자취방을 전전하고, 배낭여행을 떠나고 낯선 땅의 낯선 룸메이트와 거처를 함께하고……. 성장하고 나이 먹는 게 좋았던 유일한 점은 이제 더 이상 의무적으로 그 집이라는 델 가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어느샌가 집이라는 의미를 잊어 가고 있다가 마련한 게 작은 원룸이었다.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회사를 만들고 일을 하고 공사장의 먼지를 마시고 완공식의 화려한 테이프를 끊고 일명 사회적 성공이라는 계단을 밟아 올라가면서 그는 비로소 집이라는 올가미에서 벗어난 듯싶었다. 그에게 집이라는 것의 의미는 자신이 하는 일인 완벽한 인테리어로 쉴 수 있는 공간 몸을 뉘일 수 있는 공간의 의미 밖에는 없었다. 마음 편히 몸을 뉘일 수 있다면 어디든지 집이라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세계를 떠돌면서 느꼈었다. '그런데 겨우 고양이 털 때문이라니. 참파의 양떼들이 더글거리는 외양간에서도 등만 대고 머리만 괴일 수 있으면 얼마든지 단잠에 들 수 있었다. 뼛속으로 시리게 파고드는 고산의 찬바람 따위도 젊은 나이에 벌써 새카맣게 타들어가 주름진 얼굴을 지닌 사람들만큼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이기지 못하는 척 하는 건 그걸 빌미로 기대고 싶은 무언가를 발견해서인가? ' '어릴 적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바이크의 액셀을 최대한 당기고 두 손을 벌려 쏟아져 부딪치는 바람을 맞고 싶은 생각도 든다. 차가 줄어든 대로가 보이자 그는 차창을 내렸다. 찬바람이 머릿속을 휘몰아친다. 손을 들어 목에 단정하게 매어져 있던 넥타이를 잡아 흔들었다.  '목에 맨 것은 헐거워지는 것만 같은데 마음의 매듭은 여전히 꽁꽁 묶여 있다. 스스로 무엇을 하러 간 것일까? 그냥 그런 여자쯤은 간단하게 바로 침대 위에 눕히고 제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러나 아무것도,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스스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그가 스스로 말했듯이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을 자신이 있기에 그 깔끔한 도면을 열심히 그리고 있는 여자한테 그런 후안무치한 제의를 할 수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추운 병원의 바닥에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하얀색 나일론 한복을 걸친 여자의 얼굴에서 느낀 것은 무엇이었나. 그냥 잠시 어깨를 빌려 주는 것조차 미안스러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무엇이 이 작은 여자가 깊고 깊은 산속에서 차가운 얼음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으니 네가 데리러 가야 한다고 등 떠밀었을까. 그 무엇이 열에 들뜬 여자를 자신의 침대에 눕힐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