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싫어! 나는 구덩이에 담겨 있는 물을 저주해!”'여진은 스포츠 센터 수영장 안에서 푸른 물결을 일으키며 가쁜 숨을 몰아 내쉬는 사람들을 향해 쌀쌀 맞고 새침한 눈길을 보냈다. 그녀는 단지 수영하기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물 안의 사람들을 싸잡아 매도하고 있었고, 그것으로 성에 안 차는지 그들을 향해 살벌하고 음산한 냉기를 퍼부었다. 이곳을 냉기로 급속 냉각해 빠져나가기 위한 여진만의 생존전략이었다.'“불쾌함은 버리고 우선 물하고 친해지도록 노력해 봐.”'수영은 그만의 부드럽고 자상한 타이름으로 여동생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오빠아.”'“해야 해.”'다정하지만 강한 어조에 여진은 수영장 바닥이 균열이 가도록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순간, 빨딱 고개를 쳐든 여진의 콧등에 익살스런 주름이 잡혔다. 나이도 많고 사뭇 바쁜 큰 오빠의 애원을 강하게 거부하느라 물이 펄펄 끓는 주전자 뚜껑처럼 씩씩 하얀 콧김을 내뿜다가, 애원하듯 곱게 눈살을 구겼다.'지난 육년간 그들에게 일어났던 험난한 여정이 그 막을 내리고 있었다. 새로운 시작과 출발……. 세계적인 심장 전문의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큰오빠는 짧은 인턴 생활을 과감히 청산하고 비즈니스맨이 되었고, 둘째 오빠도 미생물학 박사의 꿈을 접고 화학회사 사장님이 되었다. 또한 여진도 하버드 법대생의 꿈이 세발의 총알에 산산 조각 나는 호된 홍역을 치러야 했다. 육체에 남은 지난 시간들의 상흔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지친 영혼만이 앞으로 그녀가 점령해 이겨내야 할 숙제처럼 남겨 졌다. '“숨 쉬는데 전혀 지장 없어. 이것 봐……후아, 후아. 잘 쉬지? 밥도 잘 먹고, 걸어 다니는 것도 무리 없어. 폐활량도 이 정도면 낙제는 면한다고. 내 위도 서서히 만족할 만큼 무식한 밥통으로 변해 갈 테니까. 꾸준히 물리 치료 받으면 장시간 서 있는 것도, 걷는 것도 큰 무리는 없다고 했잖아.”'법대를 다니면서 간간히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오빠의 결혼 선물을 사러 보석상에 갔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강도들에 의해 여진의 척추는 망가지고 폐 한쪽은 찌그러지고 위는 80% 가까이 절제해 내는 사고를 당했다. 심각한 장기 손상으로 아기씨가 다니는 두개의 길 중 하나인 자궁 속 나팔관 하나도 잃어야 했다. 그렇게 삼년이란 시간을 병마 아닌 병마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해야 해.”'간곡한 애원이자 오빠로서의 부탁. 수영은 한 치의 물러남도 없는 굳건한 패기로 짧고 간략하게 교통정리를 끝냈다. 해야 한다면 해야 한다. 수영은 쇠심줄 같은 고집으로 결혼 반대라는 패를 던진 장인에게서 결국 항복의 백기를 받아낸 강한 의지의 남자였다.'“나 물에 빠져 죽으면 오빠만 손해일 걸?”'하기 싫어 몸을 빼던 여진은 오빠의 약점을 공략했다. 세상에 단 하나의 두려움, 가족을 잃는다는 것. 더구나 엄마의 생명을 담보로 태어나 오빠의 손으로 손수 길러냈다 해도 거짓이 아닌 여진의 일이라면, 수영에게는 더욱 더 중차대한 사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