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라드를 부축해 밖으로 나온 미샤의 눈에 첨탑 밖으로 몸을 던지는 야나의 모습이 들어왔다. 달의 그림자 사이로 떠 있는 작은 몸 주변에 회오리처럼 몰아치고 있는 바람의 존재가 지상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수아의 각성을 본 뒤, 야나의 각성을 보게 된 미샤가 목울대 너머로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것을 삼켜냈다.'그녀가 스스로 마녀가 되기를 선택했다.'자연이 수아를 선택해 마녀가 되게 했다면, 야나는 스스로 마녀가 되기를 선택했다. '그녀의 선택을 기다려 주고 있었던 바람. 그것이 불어오고 있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야나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에 반해 바람의 한 가운데 있는 야나는 시간과 공간이 멈춘 그 곳에서 여전히 반짝이는 별들이 가득한 하늘을 보고 있었다. ''[ 아이야. ]''수아가 들었다던 그 목소리가 야나에게도 들렸다.'“네, 어머니.”'그녀의 바람이 야나에게 물었다.''[ 너 또한 희생의 마녀가 되려 함이냐. ]''그녀가 말하는 희생의 마녀가 자신의 어머니임을 알 수 있었다. '“내게 어머니의 힘을 주셔요. 그 힘이 필요한 자들이 있습니다.”'자유를 갈망하는 자가 아래서 야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가 마녀가 되지 않기를, 저주를 풀기 위해 목숨을 걸지 않기를 바랐던 남자. 그 남자의 마음이 야나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흘러넘치고 있었다.''[ 결코 평탄치 않을 길을 걸어갈 준비가 되었느냐. ]''“평탄한 길이 되길 바랐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거예요.”''[ 네 피를 계약의 증거로 받겠다. ]''망설임 없이 야나가 자신의 손목을 물어뜯었다.'붉은 피가 허공에 머물렀다가 이내 바람결에 사라지는 것을 본 뒤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새로운 딸아, 계약은 이행되었다. 네 목숨이 다 할 때까지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에 있는 모든 것들이 널 섬길 것이며, 또한 너는 내 아이 중 하나로 날 섬기게 될 것이다. ]''그녀의 손끝에서부터 바람의 존재가 느껴졌다. 무(無)의 공간인 그녀가 둘러싸인 얇은 막에서 느껴지는 바람의 존재가 온몸을 뒤덮었다. 몸을 타고 흐르는 생소하고 이질적인 힘이 이제 자신에게 머무르리라.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없는 만큼 이 힘이 야나에게는 필요했다. 콘라드가 목숨을 건 그 순간 필연적인 선택임을 깨달았다.'그녀를 선택한 ‘바람’은 마녀들이 존재하기 전부터 이 땅에 머물렀음에도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희생하는 마녀를 거의 보지 못 했다. 그 마녀들은 종국엔 숨을 달리하기도 했고, 그녀가 준 자연의 힘을 영원히 잃기도 했다.'‘바람’이고 의지인 자신이 이 아이의 운명 또한 알았기에 머물러 있을 뿐, 아이의 어머니처럼 쉽사리 아이를 선택하지 못했다. '야나의 몸에 완전히 바람의 힘이 자리 잡자 그녀를 둘러싼 막이 순식간에 걷혔다. 그 광풍 속에 온전히 몸을 맡긴 야나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한 장의 꽃잎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몸이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