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마황의 연인 3권 (완결)

마황과 대공작이 반려의 서약을 맺은 지도 어느새 두어 달이 지나갔다. 그동안 마황성에는 제법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반려라는 이름으로 묶여버린 마황과 대공작이나, 마황의 일처리 방식이나……. 모든 것들이 마황과 대공작 부부를 중심에 두고 있는 것들이었고, 마족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적응을 해야만 했다. '자그마치 서열 1, 2위를 나란히 차지하고 있는 그들이었고, 엄청나다 못해 끔찍하기까지 한 커플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마족들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대충 적응해버린 상태. 모든 마족들의 머릿속에는 체념 어린 한숨이 뿌리 깊게 박혀있었다.'그 모든 것들의 이유인즉슨, 껄끄럽다 못해 천족 깃털로 만든 방석에라도 앉은 양 험악하기 그지없는 마황과 대공작의 관계 때문이었다. 서약식 전까지만 해도 제법 얼굴 맞대며 이런 일, 저런 일 함께 처리하곤 했던 그들은 완전히 180도 돌변해서 서로를 보려 하지 않았고, 업무 처리도 따로 했다. '디아가르트가 그의 선에서 80퍼센트 이상 서류를 처리하면 아르카스가 그것을 마황에게 전달했고, 마황은 결재한 서류를 로위나를 통해 다시 아르카스에게 돌려주곤 했다. 덕분에 아르카스와 로위나의 애정 수위만 눈에 띄게 높아졌고, 정작 갓 결혼한 신혼부부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어쩌다가 서열 100위 안의 최고위급 마족들이 자리에 모일 수밖에 없는 일이 있어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유르미아와 디아가르트는 결코 함께 나오려 하질 않았고, 제각각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모자란 듯, 그들은 극과 극으로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서로를 철저히 무시했다. 이따금씩 말을 주고받아도 그것으로 끝이었다. 필요한 말 이외에는 거의 하질 않으며, 설령 한다 해도 서로에게 화살을 날려대며 물어뜯는 말들이 전부인 상황. '그러나 마족들이 더더욱 당황스러웠던 점은, 그 험악한 와중에서도 마황과 대공작이 꼬박꼬박 일주일에 두어 차례 동침은 잘도 한다는 것이었다. 서로가 아주 싫은 것은 아닌가 보다고, 그래도 속궁합은 제법 맞는 모양이라고 누군가 입방정을 떨며 주절거렸지만…… 얼마 후 밝혀진 사실들은 더더욱 참담했다. 저 이계에서 배운 <여자가 가장 임신하기 좋은 기간>을 계산한 유르미아가 날짜를 정해두고 디아가르트와 동침한다는 것이었다. '철저히 아이만 만들기 위한 계산적인 관계. 반려로서 서로에게 원하는 것은 전혀 없으며, 감정 따위는 더더욱 없다. 그것이 유르미아와 디아가르트의 현 주소였던 것이다. 은근슬쩍 어린 마황과 감정 결핍의 대공작간에 오가는 은밀한 애정 전선을 기대했던 마족들은 크게 실망했고, 마황전대와 유사모의 마족들은 걱정 어린 표정을 떠올려야만 했다. 저런 식으로 서로에게 칼을 들이대며 분노해봤자 종국에는 그들 자신만 상처 입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건 말건, 정작 당사자인 유르미아와 디아가르트는 서로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다. 심지어는 세상에서 가장 은밀하다는 부부 관계를 가지는 순간조차.'''탁. 노크도, 간단한 인사말도 없이 누군가 처소로 들어섰지만 유르미아는 놀라지 않았다. 대신에 그녀는 어둠 속에서 기계적으로 옷을 벗었다. 얼핏, 디아가르트가 짧게 진저리치며 이를 악무는 것이 보였지만 유르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녀는 몇 개의 속옷을 남겨둔 채 침대에 앉아버렸고, 그는 그런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디아가르트는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묵묵히 옷을 벗었다. 검은 망토와 엷은 갑주가 끌러지면서 그의 미끈한 상체가 드러났다. 여느 여마족이라면 그 수려한 외모에 감탄하며 찬사를 보내기라도 하련만, 아쉽게도 유르미아는 그런 것 따위를 감상할 기분이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일반적인 부부가 그러하듯 서로의 몸을 나누며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가지기 위한 생식 행위 그 자체였기에. '디아가르트가 침대에 걸터앉자, 순간적으로 유르미아의 어깨가 가늘게 경련했다. 몇 번을 거듭해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행위.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바로 그때, 디아가르트가 손을 뻗어 그녀의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아주 습관적으로 그러시더군요. 그러지 마십시오.]'심장이 멎어버린다는 것은 바로 이런 때에나 쓰이는 표현이리라. 갑작스런 그의 손길에 놀라 얼어붙었던 것도 잠시, 유르미아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네가 무슨 상관이야?]'[예,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마족들이 마황 폐하의 입술을 보며 저와의 동침 횟수를 헤아리는 건 짜증납니다.]'정말로 짜증난다는 듯 디아가르트는 이를 갈며 욕설을 중얼거렸고, 유르미아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잔뜩 물어뜯은 그녀의 입술을 보며 동침 횟수를 헤아린다고? 젠장, 빌어먹을. '[그럼, 뭘 대신 깨물며 견딜까? 남자인 너야 좋기만 할 테지만 난 아니거든? 확 널 물어버려?] '[마음대로 하십시오.] '망할 자식. 유르미아는 입술을 떼며 뭐라고 더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디아가르트가 그녀의 몸을 낚아채서 침대에 눕혀버렸고, 그녀는 하나씩 몸에서 떨어져나가는 속옷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개자식. 유르미아는 가늘게 떨리는 손을 디아가르트의 하의에 가져갔다. '비록 일주일에 두세 번, 아이를 갖기 위한 관계가 전부라고는 하지만 나름대로는 그들의 밤 생활에도 서로에 대한 예의란 것이 있었다. 유르미아도, 디아가르트도, 약속이라도 한 듯 속옷만큼은 절대 자신들의 손으로 벗지 않았고 그것만은 꼭 상대가 벗겨주었던 것이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묶여버린 서로에 대한 마지막 배려, 혹은 존중이라고 해야 할까. 언뜻 보기에는 조금 웃기기도 했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그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진지했다. '사락사락. 결 좋은 시트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사이로 뜨거운 열기가 번져나갔다. 가까스로 비명을 삼킨 유르미아는 미간을 찡그렸다. 몇 번을 거듭해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관계. 여전히 그의 몸이 그녀에게 닿는 것이 불편했고, 온몸이 지독히도 아팠다. '‘젠장, 젠장……!’'유르미아는 견딜 수 없는 통증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손은 침대 시트를 움켜쥔 채 바짝 힘이 들어가 있었다. 금방이라도 고통 어린 신음이 흘러나올 것만 같은 기분에, 몇 번이고 이를 악물었는지 모른다. '남자와 몸을 맞대고 있는 이 순간, 전신을 강타하는 지독한 고통과 불편한 느낌도 싫었지만 사실은 여자로서의 수치심이 가장 심했다. 좋아하지도 않는데…… 죽도록 미워하는데, 이런 작자에게 은밀한 곳을 허락하고 몸을 섞어야만 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흐트러진 숨결을 토해내면서도 얼음처럼 굳어져 있는 그의 얼굴이, 감정 없이 차갑기만 한 그의 손길이 미치도록 저주스러웠다. '알고는 있었다. 디아가르트 또한 좋아서 그녀를 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비록 몸은 그녀를 안으며 사내로서의 쾌감을 느낄지언정, 머리는 그녀에 대한 분노와 미움으로 차갑게 식어있다는 것을. 그러나…….'단 한 번도 그녀를 미워한 적이 없는 그였다. 저 이계에서도, 마계에 귀환했을 때에도, 황녀였던 그녀를 몰아쳐서 마황이 되도록 교육시켰을 때에도 그 모든 순간들 속에서도 디아가르트는 단 한 번도 유르미아를 미워한 적이 없었다. 그저, 무심하기 그지없는 두 눈으로 그녀를 물끄러미 응시했을 뿐.'비록 그녀가 마황이 된 후, 이따금씩 화를 내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던 디아가르트다. 그런데 지금, 그는 그녀를 죽도록 미워하고 있었다.'또다시 입술을 깨물던 유르미아는 반사적으로 멈칫했다. 마족들이 그녀의 물어뜯긴 입술을 보고 그들의 동침 횟수를 헤아린다 했던가. 저 이계식으로는 꿩이 없으면 닭이고, 마계식으로는 그녀의 입술을 깨물 수 없으면 다른 것을 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어디 한 번 저도 좀 아파 보라지. 그녀는 있는 힘껏 디아가르트의 팔을 깨물었다. 움찔, 거칠게 움직이던 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멈칫하면서 싸늘한 자줏빛 눈이 그녀를 응시했다. '[나쁜 자식……. 너, 죽도록 미워…….]

미리보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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