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번호 1번- 고주망태와 만나다''''지하철. 구체적으로 2호선이다. 뜨뜨뜩- 현재 시각 12시 26분을 경과, 낮술 먹은 고주망태 발견. 양 어깨를 들어 안전손잡이에 손목을 끼워 넣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남자는 푸르르르, 소리를 내며 사방에 술 냄새를 풍기고 있다. 왼쪽 입술로는 희멀끔한 침이 흐를 듯 말듯 긴장을 야기 시킨다. '양미간을 찌푸린 혜은이 코를 막고는 손바닥을 휘저으며 냄새를 물리쳤다. 그러나 남자의 입과 코에선 고약한 술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혜은은 눈살을 찌푸린 채로 그의 낯짝이 어떻게 생겼을까 싶어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어맛!”'그녀가 놀란 건 괴이한 생김새 때문이 아니었다. 눈 뜨고 자는 남자를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흰자위 여기저기에 빨갛게 올라온 실핏줄을 보니 여간 취한 모습이 아닌데 검은 눈동자는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괴기영화속의 생각 없고 멍청한 좀비를 연상케 했다. 그럼에도 푸르르르, 소리를 연발하니 필시 자리에 서서 졸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이 남자, 확실히 눈 뜨고 자는 남자다. '그녀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뜨악!”'혜은이 발견한 것은 그의 허리벨트 그리고, 하각 10Cm를 점령한 지퍼. 그것도 벌어진 지퍼. 열린 동굴로 하얀 팬티에 그려진 빨간 하트 반쪽이 보였다. 그 하트 밑으로 'elcom'까지의 글자가 보였다. 뭘까. 궁금하다.'[어머, 내가 지금 뭘 생각하는 거지? 이런 대낮에 술이나 먹는 망나니한테…….]'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팬티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고개를 지퍼 앞으로 내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elcom'이라는 글자의 해답을 연구하던 와중에 고개가 자연스럽게 앞으로 젖혀졌던 거였다. 그런데 모양새가 꼭 냄새 맡는 강아지 포즈마냥 남우세스럽다.'고개를 옮기려던 찰나, 혜은은 입을 다물 수 없는 충격에 빠졌다.'그의 지퍼 안쪽이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동시에 반쪽모양이던 하트가 한 덩어리로 변했고 글자 역시 점점 선명하게 튀어나왔다.'[Welcome.]'환영이다. 고개를 내밀고 있는 혜은을 환영한다는 고주망태의 환영인사다.'[이 자식, 대체 뭐하는 놈이야?]'“다음 내리실 정차 역은 교대, 교대 지하철 앞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한 정거장을 더 가야 내릴 수 있건만 혜은은 창피하고 부끄러운 나머지 후다닥 지하철을 빠져나왔다. '“어맛!”'오늘은 연신 어맛, 타령이다. 뒤늦게 내리는 바람에 한쪽 발목이 지하철 문에 끼고 만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 설치한 스크린 도어가 목을 조이기 위해 서서히 닫혀오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단두대나 마찬가지였다.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목숨이 오락가락 한다는 사실보다는 지금의 창피한 상황에 더 집중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두 팔로 힘껏 문을 열어젖혔다. 겨우 통증을 이겨낸 그녀가 다시 지하철 안으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