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음모''''하유미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으며 우혁의 소식을 기다렸다. 아버지의 비서이자 변호사인 한 실장에게 우혁의 소재 파악을 부탁한 게 여러 시간 전이었다. 각처에 심어 놓은 인력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어디 어느 곳에 있는지 알아내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필요하면 언제나 아버지 밑에 있는 사람들을 하유미 맘대로 부리는 재량권이 하유미에게 있었다. 하 사장은 누구보다도 딸의 능력을 인정하는 터라 하유미가 사람을 부리는 일엔 어떤 선도 긋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의 모든 것이 하유미에게 상속될 것이니 유미가 미리 경험한다 해서 나쁠 것이 없다는 쪽이었다. 다행인지 지금까지 유미의 똑 부러지는 성격과 영특함은 하 사장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고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하 사장의 생각을 확고하게 만들었다. '인내심이 바닥난 유미가 다 식은 커피를 거칠게 식탁에 내려놓을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나예요. 나이를 드시더니 총기도 흐려지셨나 봐요. 왜 이리 늦은 거죠?”'“죄송합니다. 해외로 나가시지 않은 점이 다소 소재 파악을 힘들게 만든 것 같습니다.”'“그래서 찾으셨다는 건가요? 아니면 아직 인가요.”'“아마도 최종 목적지는 강원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곳 호텔에서 강우혁 본부장님이 골든 카드를 사용하셨더군요.”'“호텔이라면…우혁 씨 혼자던가요?”'“아, 아닙니다. 그게 저…….”'“괜찮으니까. 빨리 말해요.”'“여자 분으로 동행이 있었습니다. 그 여자의 신원 파악은 아직 못했습니다. 지시를 내렸으니 조만간 파악이…….”'상대방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미가 전화 수화기를 내동댕이쳤다.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날이 선 하유미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독을 품은 모습으로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우혁의 여자들이라면 어김없이 자기 손으로 정리 해온 하유미였다. 그러다 보니 우습게도 강우혁이 여자를 안는 습관에 대해서도 통달한 지 오래였다. 그 중에 하나는 우혁은 결코 여자와 여행 같은 걸 떠나는 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필요하면 즐기고 안았을 뿐 더 이상의 미련도 의미도 두지 않는 것이 우혁의 스타일이었다. 그런 우혁이 여자와 여행을 갔다는 건 엄청나게 불길한 징조였다. 하유미 자신도 우혁과 단둘이 떠난 여행이 단 한 번도 없지 않는가?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시킨 하유미가 다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지금 당장 그 여자 신원 파악해 줘요. 그리고 우혁 씨 주위에 적당한 사람을 심어 놔요. 아주 실력 있는 사람으로 해야 되는 거 아시죠? 조심하지 않으면 역으로 당하는 수가 있어요. 그 사람 옆에 잘 훈련된 맹견이 지키고 있다는 사실 늘 염두 해 두시고요.”'윤원철은 항상 하유미가 신경 쓰이는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전화를 끊은 후에도 치달아 오르는 분을 삭이지 못해 유미가 집안을 한참동안 서성였다. 이건 정말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강우혁의 옆자리는 누가 뭐래도 당연히 하유미 자신 거였다. 10년 넘게 강우혁 주위를 맴돌고 지켜낸 자리였다. 이제 와서 감히 누가 그 자리를 넘본단 말인가? 그게 그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분노를 삭이며 서성이던 하유미가 부엌 옆에 자신의 취향대로 화사하게 꾸며 놓은 미니바로 걸음을 옮겼다. 진열장에서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독한 양주 한 병을 꺼내 얼음을 채운 글라스에 부은 다음 그것을 단숨에 들이켰다. 하유미의 얼굴이 단번에 구겨졌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불길과 가슴에 솟구치는 분노의 불길이 어우러져 유미를 미치기 직전까지 몰고 갔다. 그렇게 서너 번 더 잔을 비워낸 유미의 아름다운 얼굴은 이제 보기 흉할 정도로 지독히 일그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