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당!'“풋! 큭큭큭.”'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던 그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속의 커피를 뿜으며 박장대소했다. 그렇게 볼썽사납게 넘어지는 여자를 그는 본 적이 없었다. '“대단하다, 대단해! 큭큭큭.”'그의 병원 바로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려고 달려오던 여자가 얼음이 언 땅을 밟고 미끄러져 그야말로 큰 대자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벌러덩 나가떨어지는 장면은 만화영화에나 나올 법한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었다. 게다가 넘어질 때의 충격 여파로 치마가 위로 완전히 걷혀져 야실한 망사 팬티까지 만천하에 공개되었으니 어찌 그가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저 정도 충격이면 뱃속의 태아에게도 영향이 미치겠는걸.’'직업 정신이 발동한 그는 커피 잔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 몇이 여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워낙 육중한 몸무게 탓에 사내 둘이 낑낑대며 그녀를 안아 일으키는 게 보였다. 부축을 받으며 정류소의 의자에 앉은 여자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빨갛다. '“아이고, 새댁! 몸도 무거운데 조심해야지!”'“이런 날씨에 조심조심 걸어야지 큰일 날 뻔 했네.”'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둘의 설교에 여자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죄송해요, 고맙습니다!”'부축해 준 30대 회사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여자의 목소리가 맑고 청아했다. 육중한 몸매와는 겉도는 아름다운 목소리에 사내 둘의 시선이 여자의 얼굴로 향했다가 이내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외면했다. 그들의 시선을 알아차린 여자가 고개를 땅으로 떨어뜨렸다.'“괜찮아요?”'다정하고 허스키한 남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여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잘생긴 남자의 모습에 입을 딱 벌렸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자는 희미한 버스 정류장의 가로등 불빛 아래서 환하게 빛을 뿜고 있었다.'‘우와, 대박이다!’'바람에 살짝 흐트러진 머리 아래 쌍꺼풀 없는 눈과 얼굴의 중심을 잡아 주는 듯 우뚝 솟은 콧날, 살짝 미소를 머금은 섹시한 입술까지 그녀가 이제껏 본 남자들 중 최상급의 대어였다. 게다가 의사 가운을 최고급 양복 재킷처럼 소화하는 훤칠한 저 몸매……절로 침이 꿀꺽 삼켜졌다.'“네, 괜 괜찮아요.”'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까이서 그녀를 살펴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이 엄동설한에 얼어 죽으려는지 팔랑이는 원피스 플레어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어울리지도 않게 화장을 한 꼬락서니라니……. 틀어 올린 머리는 여기저기 삐죽이며 튀어나온 머리카락들로 산발이었고, 스타킹도 코가 나가서 줄이 좍좍 생겨 있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얼굴은 언젠가 본 애들용 만화에 나오는 호빵맨을 닮았다.'‘임산부라는 자각도 없군. 이 꼴로 나오다니……. 완전 미친년이네, 미친년! 쯧쯧!’'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그는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최대한 상냥하게 다시 물었다.'“어디 다친 덴 없나 한 번 서 봐요.”'“네? 네. 악!”'얼이 빠진 듯 그의 지시에 따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던 여자가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휘청했다. 그는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여자의 몸을 받쳐 안았다. 여자의 무게에 순간 휘청했지만 허리와 다리에 힘을 꽉 주고 버텨서 간신히 함께 넘어지는 볼썽사나운 꼴은 면할 수 있었다.'‘이씨, 뭐가 이렇게 무거워? 젠장!’'“고, 고맙습니다.”'“다리를 삔 것 같은데 저희 한의원이 바로 코앞이니 잠시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이리로.”'“네? 네.”'‘잘생긴데다 매너도 짱이네.’'“아이고, 새댁! 운이 좋네. 이렇게 잘생긴 의사 선생님이 도와주시고.”'“그러게요. 훤칠하니 잘도 생겼네.”'좀 전에 여자를 나무라던 아주머니 두 명이 그의 얼굴을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한우는 여자의 어깨를 부축하려다 감탄 어린 아주머니들의 칭찬 공세에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이럴 땐 좀 더 강하게 어필하는 게…….’'그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여자를 번쩍 안아들었다. 운동으로 매일 트레이닝을 하는 그였지만 여자를 안아든 순간 휘청거리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켁! 하마다, 하마!’'“걷기 힘드실 테니 잠시 무례를 저지르겠습니다.”'“어머, 어머! 힘도 장사네.”'“그러게. 딸만 있으면 사윗감 삼고 싶네!”'‘됐거든, 아줌마! 아줌마 얼굴 보니 딸은 보고 싶지도 않아.’'“저기가 의사 선생님 병원이유?”'“네. 제가 원장입니다.”'한우는 존경과 동경의 눈초리로 자신을 우러러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뼛속까지 짜릿한 그 감각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렇다. 경희한의원 원장인 한의사 최한우! 방년 36세의 그는 사람들의 칭찬으로 희열을 느끼는 이중인격의 소유자였다. 싸가지 없고, 이기적인 자기중심적 사고의 소유자였지만, 남 앞에서는 다정다감하고 모두가 동경하는 왕자님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하며 지금껏 순탄하게 살아 온 인물이었다.'“헉, 헉. 진찰 좀 하게 스타킹 좀 벗어 봐요.”'사람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여자를 안고 병원으로 돌아온 그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여자를 진료 침대에 앉혔다. 너무 힘을 썼는지 숨이 찼다.''‘아무리 2인분이라지만 너무 무겁네. 이건 돼지가 아니라 하마다, 하마!’'“저기 팬티스타킹이라서 고개 좀…….”'“아, 예!”'‘지랄을 해라, 지랄을 해! 니 살덩어리를 누가 본다고.’'여자에게서 몸을 돌려 침통을 찾으러 가는 한우의 얼굴에 짜증이 묻어났다. 한참을 혼자 꼼지락대던 여자가 그를 불렀다.'“저기요, 선생님! 스타킹 다 벗었어요.”'‘목소리는 진짜 죽여주네. 그 덩치에 아깝다, 아까워!’'“아, 예. 갑니다.”'여자에게 다가가는 성욱의 얼굴에 가식적인 웃음이 떠올랐다. 여자가 내민 오른발은 척 보기에도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푸르뎅뎅한 멍과 함께 혹부리 영감의 혹처럼 부풀어 오른 여자의 발목을 손으로 가볍게 만지며 그는 가볍게 이맛살을 찌푸렸다.'“이거 심하게 접질렸는데요. 여기 아프시죠? 여기도…….”'“저…….”'그의 손길에 바르르 여자의 몸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손을 대고 있는 여자의 하얀 다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리가 붉게 물들자 고개를 들어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전신이 빨갛게 물든 여자가 난처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지랄! 지금 이 순간에 느끼냐?’'그는 왜 그러냐는 듯 순진한 얼굴로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아기 때문에 걱정하시나 보군요. 괜찮습니다. 아기에겐 아무런 해가…….”'“저 아기 안 가졌는데요.”'“네?”'‘그럼 그게 전부 니 살이란 말이야?’'벙찐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한우의 얼굴을 보며 여자의 얼굴이 조금 더 빨개졌다.'“아, 실례했습니다. 전 그저 아까 아주머님들 얘기를 듣고……. 그럼 침을 맞는 게 빠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