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주가 4년에 걸친 고시생을 가장한 백수 신세를 털어낼 수 있었던 것은 소꿉친구인 현기와 미애의 혁혁한 공 덕분이었다.'사범대를 졸업하는 동시에 시작된 임용고시 전쟁. 이미 세 번의 고배를 마셨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시작한 네 번째의 막바지에 두 사람이 도발을 해왔다. 이번에 합격하면 무려 ‘해외여행’을 시켜주겠노라고 살살 꼬드겼던 것이다. 결혼을 얼마 앞두지 않은 그들이 한 달 남짓한 사이를 두고 두 번의 해외여행을 감수한 것은, 뭔가 특별히 원하는 게 생기면 놀라운 승부근성을 발휘하는 산주의 성격을 지극히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매우 기발한 자극이었다.'“넌 그냥 몸만 가면 된다. 여행 일정, 경비 일체는 우리가 다 준비할 테니까 넌 아무것도 걱정 말고 공부나 해. 막판 스피치 확실히 올려서 이번엔 합격 좀 해라. 그래서 마음 편하게 실컷 놀고 오는 거야. 넌 백수로서의 마지막을, 우린 미혼자로서의 마지막을 끝내주게 보내는 거지. 어때, 멋지지 않냐? 생애 첫 해외여행, 우리끼리 화끈하게 다녀오자.”'“이번엔 꼭 붙는 거다? 또 미끄러지면 절교야. 결혼식 때 부케는커녕 들어오지도 못하게 할 테니 각오 단단히 다져.”'산주는 그들의 격려와 상품을 등에 업고 피눈물 나도록 공부했다. 그리고 결국 공부한답시고 집에 틀어박힌 4년의 세월을 정리할 수 있었다.'ARS를 통해 합격 여부를 확인하던 날. '“짐 싸자, 지이이이이임!”'산주의 집에 모인 세 사람에게서 환호성이 길게도 터져 나왔다.''티켓팅을 끝내고 온 현기가 여권과 티켓을 나눠주었다. 인천공항까지 오느라 꼭두새벽부터 설친 덕분으로 아직 잠이 덜 깬 산주는 손가락만 잠깐 꿈지럭거렸을 뿐이다. 혀를 차며 미애가 대신 챙겼다.'“출발까진 아직 한 시간도 넘게 남았고 짐도 미리 다 들여보냈으니까 조금 더 앉아 있어도 돼.”'“산주 얘가 아주 정신을 못 차리는 거 보니 그래야겠어.”'미애가 어깨를 조금 틀어서 산주의 머리 밑에 받쳤다. 이내 고른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완전히 잠들어버린 걸 확인한 두 사람은 못 말리겠다는 듯 킥킥 웃었다. '“여행 갈 생각에 들떠서 잠을 설쳤나 보네.”'“새벽 3시 다 돼서 겨우 잤어. 다 싼 짐을 풀었다가 다시 쌌다가 또 풀고 싸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어. 어제, 우리 집에서 같이 잤거든.”'“이제 마음 푹 놓고 신나게 놀아도 되니까 더 들뜨는 거겠지.”'“안 그래도 그런 얘기 했어. 고작 6박7일이냐고 얼마나 구박을 주는지 말이야.”'여행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느라 매일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산주의 모습이 그들의 눈엔 그저 귀여워 보일 따름이었다. 아열대 기후인 덕분에 한국의 춘삼월처럼 따사로운 마카오의 겨울 햇살아래 나설 때까지, 그녀는 계속 비몽사몽 잠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