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부모님께 효도하는 차원에서 길을 나선 나라는 답답한 한숨을 연달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서른셋,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닌데도 아무 남자한테나 가고 싶지 않은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약속 장소인 금홍 호텔 커피숍으로 들어선 나라는 웨이터의 물음에 찾는 사람의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딸랑거리는 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지자, 한 남자가 손을 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걸어간 나라는 중간쯤 오는 치마를 매만지면서 자리에 앉았다.'“처음 뵙겠습니다. 박찬입니다.”'당당한 몸짓으로 손을 쭉 내미는 남자의 힘찬 동작에 그녀의 한쪽 입가가 스르륵 위로 올라갔다.'“네, 주나라라고 해요.”'“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정말 미인이시네요.”'얼굴이 뚫어질 듯 강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이 못내 부담스러워진 나라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주문은?”'“아, 키위주스 주세요.”'“전, 헤이즐넛.”'웨이터가 주문한 내용을 적고 가자, 박찬의 눈빛이 느끼하게 반짝거렸다.'“현재 저는 36살이고요, 제 이름 정도는 한번쯤 들어 보셨죠?”'잘난 체하는 그의 말투와 모습에 기분이 상한 나라는 씰룩거려지는 입가를 다스리며 어색하게 웃었다.'“잘 모르겠는데요?”'“이런, 뉴스 보시지 않으세요?”'“뉴스요? 자주 보는데요.”'“자주 이름 나오는데…….”'자신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안색이 조금씩 변해 가는 그를 보면서 고소함에 속으로 키득거렸다.'‘잘난 척은!’'“흠, 나라 씨는 의사라면서요?”'“네.”'“음, 부친께서도 병원 원장이라는 소릴 들었습니다.”'그의 말에 찡그러진 미간으로 쳐다보자, 그도 조금은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연방 했다.'“그래서요?”'덤비듯 쏘아대자, 박찬의 얼굴도 일그러졌다.'“흠, 전공이 뭔가요?”'“무슨 전공 했을 것 같으세요?”'입가에 조소 어린 미소를 띤 나라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물었다. 그런 그녀의 질문에 박찬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나더니 이제는 노골적으로 훑어보는 것이었다. 그런 그의 느끼한 시선에 몸서리가 쳐진 나라는 팔뚝에 솔솔 솟아난 닭살들을 문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