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그녀의 말에 창백한 낯빛의 천사가 허공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순간 허공에서 강렬한 빛이 내려왔다. 수는 눈이 시리도록 강렬한 그 빛에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그럼 다시 태어나겠느냐?”'부드럽지만 웅장한 음색에 수는 실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숨이 막히도록 잘생긴 천사였다. 게다가 하얀 얼굴에서는 윤이 반질반질 흘렀고 온몸에서는 빛이 나 수는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그에게 반문했다.'“다시?”'“그래. 다시 태어나겠느냐?”'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수는 미심쩍은 듯 고개를 갸웃했다.'“무슨 소리죠? 그냥 내 몸으로 들어가면 되지.”'“현세의 시간으로 이미 4개월이 지났단다.”'“헉, 그게 무슨 소리예요? 4개월이 지났다니?”'“네 몸은 이미 없다는 소리지.”'“말도 안 돼!”'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창백한 남자가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젓자 또 다른 풍경이 보였다.'“엄마!”'어머니가 검은 상복을 입고 오열하는 것이 보였다. 깊숙하게 파놓은 짙은 고동색 땅 속으로 관이 들어가자 재민이 무릎을 꿇었다. 비참할 만큼 서럽게 우는 재민의 모습에 수는 참지 못하고 허공을 향해 달려갔다.'“재민 씨!”'그녀가 재민을 향해 손을 내밀자 허공에 보였던 풍경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가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돌렸다.'“이제 알겠지? 네 몸으론 들어갈 수 없다.”'“그럼요?”'“다시 태어나는 거지.”'“애기로 다시?”'잘생긴 천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수는 고개를 저었다.'“난 재민 씨랑 결혼하고 싶어요. 근데 갓난아기로 태어나면 어떻게 재민 씨랑 결혼해요? 서른 살도 더 넘게 차이 나는데. 절대 그렇게는 못해요!”'“그러면 다른 여인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나는 건 어떠냐? 만일 네가 남자로 살고 싶다면 남자의 몸을 빌릴 수도 있단다.”'남자로 태어난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이 여사는 수를 낳은 후 아이를 더 낳을 수가 없었다. 아들을 무척 바랐던 사람들은 실망을 했고 현 회장은 결국 다른 여인에게서 아들을 얻었다. 이 여사는 그것에 대해 슬퍼했고 늘 악에 받쳐 살았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수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사특하게도 엄마보단 재민이 더 그리웠다. 이래서 자식 낳아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말이 나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수는 재민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냥 여자로 태어날게요.”'“음…… 거기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살아가는 것에는.”'조건? 수는 미심쩍은 듯 인상을 쓰며 잘생긴 천사의 말을 경청했다.'“세상의 규율을 교란시키면 안 된다.”'그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다. 수는 세상의 규율을 어겨본 적이 없었다. 아니, 아주 조금 어기긴 했다. 무단횡단을 한다거나 쓰레기를 길거리에 버린 적은 있었지만 그 외에 큰 죄는 지은 적이 없었다.'“당연하죠.”'그녀의 생각을 읽은 천사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그런 단순한 게 아니야. 네가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나면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수는 눈을 깜박이며 천사의 말뜻을 곰곰이 생각했다.'“그렇다면 내가 새 몸을 가지고 우리 집에 가면 안 된다는 뜻인가요?”'“그렇지. 만일 네가 현수라는 것을 발설하면 세상의 규율을 어그러트리는 것이라 넌 하루 만에 죽는다.”'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다. 협상에 있어 조건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토시 하나 허투루 보면 안 되었기에 수는 잘생긴 천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기 위해 바싹 긴장을 했다.'“새로 태어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지.”'양날의 검이었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여자로 태어난다면 재민과 다시 사랑을 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자신이 현수라는 것을 밝히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이다. 재민은 쉽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남자가 절대 아니니까.'“그건 받아들일 수 없어요. 난 재민 씨와 못다 이룬 사랑을 하고 싶어요.”'“네 개인적인 소망 때문에 세상의 규율을 어겨선 안 된다, 절대!”'“내가 현수라는 것을 말하지만 않으면 되는 거죠? 현수로서 전에 누렸던 권리를 포기하고 살면.”'잘생긴 천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음, 아무튼 난 손해를 막심하게 봤으니까…….”'그러자 고압적인 태도의 창백한 천사가 미간을 좁히며 협상에 끼어들었다.'“손해를 막심하게 보다니? 넌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다.”'“아무튼 아직 때도 되지 않았는데 당신들 실수로 죽은 거니까 내 손해죠. 그러니까 재민 씨한테는 내가 현수라는 거 말할 수 있게 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