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게 환한 햇살이 자꾸만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있었다. 꿀맛 같은 단잠을 자고 난 후엔 원래 기분이 상쾌하고 그래야 정상 아닌가? 꿈속에서도 아주 아주 커다란 돌덩이에 몸을 내리눌린 것 같더니만, 그래서일까 이상하게 몸도 무거운 게. 무거운 게? '순간 반사적으로 눈을 번쩍 뜬 은세는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어제의 기억을 더듬으며 눈만 끔뻑끔뻑 거리고 있었다. 망할 서인후의 푸념을 들어주다 밤새 술을 같이한 거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다음이 뭐지? 잠시 머리를 정리하며 생각 중이던 그때 쌕쌕거리는 고른 숨소리가 그녀의 귀를 묘하게 간질이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당장 안 일어나?”'그리고 그 숨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를 확인한 순간 은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자신의 위에 올려 있는 묵직한 다리와 팔을 단번에 걷어 치워내 버렸다.'“아!”'같이 밤새도록 술을 먹으며 토론을 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도대체 왜 자신이 이 망할 놈과 같이. 그것도 은세 자신의 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가 말인가. 자신은 필름이 끊겨 버렸으니 아마도 인후가 그녀를 이곳까지 데리고 온 것일 테지만 문제는 그는 왜 이곳에 있느냐는 것이다.'“일어났니? 밥 먹어라.”'“엄마! 뭐야 서인후 이 자식이 왜 여깄는 건데?”'“술이 떡이 돼서 들어온 널 업고 들어온 애야. 한두 번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얘는. 얼른 인후도 깨워서 같이 밥 먹으러 나와.”'그녀의 엄마가 방문을 열어 놓은 채로 다시 밖으로 나가 버리고 은세는 뒤에서 머리를 문지르고 있는 인후를 잽싸게 쳐다보았다. 은세의 돌발스런 행동에 침대 위에서 쿵 떨어져 머리를 부딪쳐 인상을 찌푸릴 대로 찌푸리고 있는 그는 그녀가 노려보자 느긋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아프잖아. 무슨 여자애가 힘이 그렇게 세.”'“너 왜 여깄냐? 아니 왜 여기서 자고 있어 집에 안 가고?”'“가려고 했는데 졸려서 나도 모르게 그만 자 버렸네. 참 나 아줌마 말대로 한두 번도 아니고 뭘 그렇게 흥분하고 그러냐.”'뻔뻔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기지개를 켜는 인후를 바라보며 은세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사실 얼마 전에 맡았던 프로젝트에 인후가 초를 쳐서 일을 망치고 난 이후로 평소보다 그에게 많이 까칠해져 있던 상태였다. 그나마 어제 오랜만에 가진 술자리로 조금 풀어졌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아, 배고프다 밥 먹어야지.”'기가 찬 듯 가만 바라보고 있는 은세를 뒤로하고 인후는 유유히 방문을 나섰다.'곧장 그를 뒤따라 나선 은세는 부엌에서 아침상을 준비하고 있는 엄마를 보고 걸어가 씩씩댔다.'“엄마는 다 큰 딸이 저렇게 다 큰 사내놈이랑 같이 한방에서 자고 있는데 가만 놔둬?”'“너 오늘 왜 그러니?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 와서 그러기는. 잔말 말고 아빠랑 세혁이하고 인후 불러와. 밥 먹게.”'은세는 태연해 보이는 엄마 소현을 바라보며 또다시 말을 이으려다 이내 뒤돌아섰다. 정말 문제지 문제. 물론 그녀와 인후 말대로 뭐 이런 일이 없던 일도 아니긴 하지만 문제는 그거였다. 보통의 동성 친구보다 더 친근해 보이는 둘 때문에 오해 아닌 오해를 자주 받는다는 것. 직업이 커플 매니저여서 그런가 안 그래도 요즘 잘 이어지는 커플들만 보면 씁쓸하고 그러던데, 이날 이때껏 번번한 남자 친구도 제대로 못 사귀어 보는 게 어쩌면 자신의 옆에 찰싹 붙어 있는 서인후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다는 생각에 은세는 요즘 들어 주의 또 주의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렇게 니 옆에 서인후 그 자식이 찰싹 붙어 있는데 남자가 생기겠니? 내가 보기엔 인후가 여자를 만들지 않고서야 난 니가 남자 친구를 만들지 못 할 거라고 본다. 맹꽁이 친구야!’'얼마 전 또 한 건을 해결하고 우울함에 젖어 있는 은세에게 충고라면 충고로 이런 말을 속삭였던 지나의 말에 은세는 무척이나 신경을 쓰고 있던 터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스물일곱이나 먹은 이때까지. 총 15년이란 세월 동안 지지고 볶고 같이 자란 놈이라 사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해할 정도로 둘은 너무 친했다. 어떻게 된 운명인지 직업까지 같으니 할 말 다했지 않나.'“아저씨 있다가 저랑 한 판 붙으실래요? 제가 요즘 컴퓨터로 장기 엄청 연습해 놨거든요. 아저씨 이길라구요.”'“그럼 이제 인후 니가 한 수 위려나? 그래 밥 먹고 있다가 한 판 붙자.”'그새 화장실까지 다녀와 씻고 나온 인후는 거실에서 아빠와 이야기 중이었다. '“아침 드세요 아빠. 서인후 너도.”'은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재신과 인후를 뒤로하고, 그녀는 지금쯤 일어나서 모닝커피를 한 잔 마시고 컴퓨터를 두들기고 있을 오빠 세혁의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그는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일어나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오빠 밥 먹어.”'방문을 열고 들어온 은세를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난 세혁은 그녀의 뒤를 따라 방문 밖으로 나섰다. 아침부터 인후의 존재로 식사 분위기는 한층 부풀어 올라 있었다. '“역시 아주머니 음식 솜씨는 끝내주네요.”'“그러니? 나도 우리 인후가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정말 좋아.”'어이고야 딸은 옆에 있는데 가족도 아니고 남인 인후에게 계란말이며 오징어 젓갈 등을 밀어 주는 소현을 보며 은세는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잘못돼도 뭐가 한참 잘못된 게 틀림없어! 지나의 말을 듣고 나서 보니 인후는 어느새 자신의 가족이자 친구처럼 그녀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다. 그렇게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데 하기야 남자가 생길 리가 있나. '“그거 아세요? 아줌마? 어제 제가 잠을 한숨도 못 잤거든요. 요즘 송은세한테 하도 시달려서 악몽이라도 꿀까 두려워서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요. 지금도 보세요. 가재 눈 송은세.”'인후의 말에 가족들의 눈이 모두 은세에게로 쏠렸다. 지난번 지나가 했던 말 때문에 자꾸만 인후를 자신도 모르게 째려보게 되었다. 언제 그걸 또 다 보고 있었는지 씨익 웃으며 말을 내뱉는 인후를 보며 은세는 한 대 쥐어박고 싶던 걸 참고 또 참았다.'“송은세의 저 강렬한 시선 때문에 요즘 살 수가 없어요. 제가. 이러다 얼굴 닳으면 큰일 나는데 말이죠.”'“이해해라 인후야. 원래 은세가 요즘 좀 까칠하잖니?＂'“그죠? 저니까 참고 다 받아 주는 거죠 누가 저 날뛰는 성격을 받아 주겠어요.”'“서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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