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400년. 묘국(嫹國)의 연호로는 월14년 9월. 가을바람이 화창하게 부는 날이다. 황제 진의 처소인 백호전(㓦虎殿. 황제의 처소) 내 욕탕이 여인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로 흥청거린다. 황제 진이 후궁들에게 둘러싸여 난잡한 놀이를 즐기고 있다. 실 오르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서로 엉켜 있는 황제와 후궁들. 후궁들을 희롱하는 진의 모습이 심히 음탕하다. 후궁들은 진의 손길을 한번이라도 더 받으려 갖은 교태를 부린다. 후궁들이 교태를 부릴수록 진의 손길이 더욱 농후해진다. 진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후궁들의 간교한 웃음소리가 욕탕을 넘어 궁궐 전체로 퍼져간다. 진과 후궁들의 난자한 놀이가 계속되는 가운데 복면대신(어전 내관 중 최고 윗자리) 선우가 욕탕 문을 열고 들어와 조심스럽게 진에게로 다가간다. 진이 날카로운 눈매로 선우의 뒤를 살핀다. 혼자 들어오고 있는 선우를 보고 양 미간 사이가 일그러진다. 난설을 불러오라 사람을 보낸 지 벌써 열 번이다. ' “난설은?”' “그……그것이…….”' 선우가 섣불리 아뢰지 못하고 진의 시선을 피한다.' “오지 않겠다 하더냐?”' 진이 진노하여 소리를 버럭 지른다. 선우가 더욱 난처해하며 머리를 깊게 조아린다.' “폐하. 오지 않겠다 하시는데 어찌 그리 애를 태우시는 겝니까?” ' 후궁 중 하나가 눈썹을 파르르 떨며 아양을 떤다. 진의 팔에 음탕하게 휘감기며 놀이를 계속하자 재촉한다.' “옷을 가져오라.”' 팔에 매달린 후궁을 가차 없이 떨어내고 일어선다. 후궁들의 웃음소리로 흥청거리던 욕탕 안이 금세 차갑게 얼어붙었다. 저들이 난설만 못한 것이 무엇이라고, 아리따운 후궁들 십수 명을 거느리고도 난설만을 애타게 찾는 진이 서운하였다. 후궁들이 앞 다투어 정빈마마(난설의 후궁 작호)는 오지 않겠다 하시는데 그냥 두고 하던 놀이나 계속 하자 성화다. 매달리는 후궁들을 귀찮은 듯 털어내며 다들 나가라 소리친다. ' “폐하. 정빈 마마만 그리 감싸고도시면 소첩들이 섭섭하옵니다. 저희들을 두고 어찌…….”' “네깟 계집들을 어디 난설에 비한단 말이냐? 어서 옷을 가져오라 하지 않느냐. 어서!”' 진의 불호령에 선우가 나인들을 돌아본다. 나인들이 바삐 움직이며 진과 후궁들의 옷을 대령한다. 옷을 챙겨 입은 진이 못마땅한 듯 토라져 있는 후궁들을 팽개쳐두고 욕탕을 나가버린다.' 백호전을 나선 진이 빠른 걸음으로 해화전(邂花殿, 난설의 처소)을 향한다. 해화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서러운 울음소리가 귓전을 어지럽힌다. 놀란 진이 처소 앞에 늘어서 있는 나인들을 돌아보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하문한다. 나인들이 쉬이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처소 안으로 들어간다. 진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도 난설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상석에 그대로 앉은 채 울음소리만 더욱 서럽게 높인다. 울음소리 더욱 격해지니 진의 수심 또한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