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이 실내에 자욱한 담배연기를 밀어내는 것으로 보아 새벽이 다 되었음을 알려주었다. 해규는 손안의 카드를 미련 없이 내리고 포도주를 비웠다. 곁에 서있던 예쁘장한 여자가 그의 잔을 채우려하자 작은 움직임으로 거절을 표했다.' 이런 장소에 있는 해규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루했다. 하지만 딜러가 카드 돌리고 있는 상대, 강 제국이란 남자라면 그에게 있어 개인적인 목적이 있었다. ' 강 제국, 그는 한국에서 어느 정도 명망 있는 예술가이지만 그보다는 도박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이미 K호텔 카지노의 단골손님이었다. 오랜 도박생활로 가산까지 탕진한 상태이지만 그의 유명인사 흉내를 내는 모습은 가히 연예인 뺨 칠 정도였다. 오히려 그의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닮고 싶어서 그가 있는 예술계에 몸담는가 하면, 그의 예술적인 옷차림새는 한 때 유행을 부르기도 했었다. 그런 그에게 겨우 작은 미술학원 하나가 남아있었지만 운영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 카드가 새롭게 손에 잡히자 해규의 얼굴에 나른하고 지루한 표정이 지나갔다. 지금 카드에 참가한 사람은 두 사람뿐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뜨지 않았다. 이제 곧 두 사람 중 한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될 터였다.' 해규가 꾸준하게 판을 따는 바람에 그의 앞에 지폐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반면 강 제국 앞에 쌓인 지폐는 점점 줄어들어 눈어림으로도 얼마가 남았는지 알 수 있었다. ' “30포인트”' 해규가 입을 열었다.' “내가 이긴 것 같군요.”' 해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 제국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잃은 돈의 액수가 커지자 성미가 곤두서 있음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오고 간 액수가 워낙 엄청났다. ' 해규는 게임마다 배팅금액을 올렸던 것이었다. 강 제국은 많은 돈을 잃고도 화난 기색을 보이지 않았지만 해규가 느긋하게 자신 앞의 돈을 놓는 모습에 오기가 생겨 주저함도 없이 입술에 힘주었다.' “한 판 더 합시다.”' 강 제국은 카지노에서 빌린 돈 마저 다 잃은 상태였고 부동산도 일체 없는 그에게 더 이상 카지노에서 무턱대고 돈을 빌려줄리 만무했다. 해규는 그가 어찌 하는지 침묵을 지키다가 물었다. ' “판돈에 대해 의논해야 할 듯한데, 무엇을 걸 생각입니까?”' 해규는 주위 사람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었다. 국회의원도 있고 군 수뇌부도 있고 기업가도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는 정치나 사회, 경제적인 면에서 거리낌 없는 화제로 풍성하게 흘러나오는 자리이기도 했다.